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리 Oct 29. 2017

개와 늑대의 시간을 견디는 법

한강 <채식주의자> 깊고 넓게 읽어보기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육식을 거부한 채 '나무'가 되려는 영혜의 이야기를 다룬다. 3부작으로 구성된 연작소설 형태로, 영혜를 둘러싼 '남편', '형부', '언니'의 입장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보여준다. 첫 번째 '채식주의자'에서는 남편이, 두 번째 '몽고반점'에서는 형부가, 마지막 '나무 불꽃'에서는 언니가 화자로 등장하면서 주인공 영혜의 변화를 서술한다. 딱히 매력도, 단점도 없던 평범한 영혜가 왜 육식을 거부하게 되는지, 그 후 어떻게 자신과 언니의 가정이 파멸되고, 결국 사회와 격리된 정신병원에 갇히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렇듯 장마다 서로 다른 관찰자를 화자로 내세움으로써 타인의 시선으로 재단되고 타자화되는 영혜의 처지는 극대화 된다. 관찰자들이 가장 먼저 느낀 영혜의 변화는 채식과 언어의 실종이다. 물론 영혜가 처음부터 입을 닫아버린 것은 아니다. 그녀는 소설 도입부에 꾸준히 '꿈' 이야기를 하는데 이마저도 쉽게 무시당한다. 모두가 영혜의 극단적인 채식의 이유를 묻지만, 이것이 진정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타인을 비난하고 재단하기 위한 사유인 것이다. 남편에게도 영혜는 그저 무난하게 아내의 역할을 수행해야하는 타자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영혜의 변화로 자신의 출세와 안위에 차질이 생기는 게 짜증 날 뿐이다. 

영혜에게 일상은 과거에도, 현재도 폭력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선택한 방식은 말로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보다는 육식을 끊는 것으로 폭력적인 현실과의 거리를 두는 것이다. 하지만 이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국 딸의 입에 억지로 고기를 욱여넣는 것도 모자라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이를 보고만 있는 가족들 앞에서 그녀는 자기 파괴를 선택한다. 그래서 그녀가 쥔 칼은 다른 이를 해치는 방향이 아닌, 자신을 향했다. 

이후 영혜는 카프카의 <변신>에서 바퀴벌레로 변한 그레고리와 마찬가지로 가족에 의해 격리된다. 하나의 인격체라는 실존 대신 자식의 역할, 아내의 역할만을 강요당하고 이를 수행하지 못하면 버려지는 폭력을 마주하는 셈이다. 하지만 영혜는 보다 주체적으로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택한다. 그레고리가 바퀴벌레가 된 것은 본인의 의지와 관련이 없는 것과 달리, 영혜는 스스로 동물이기를 거부하고 누구도 해치지 않는 나무가 되기로 결심하고 이를 실천한다. 인간이 동물이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죽음의 과정은 동물적 몸의 죽음일 뿐, 영혜는 누구도 해치지 않는 식물로 다시 태어나는 셈이다. 

<채식주의자>는 단순히 섭식장애를 갖은 한 여성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폭력에 대한 강렬한 저항기이자,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에 맞서는 방식으로 누구도 해치지 않는 태초의 몸으로 가고자 하는 선언이다.






한강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함께 꺼내본 책


1) 카프카 <변신>

: 카프카의 변신에서 바퀴벌레로 변한 그레고리 때문에 자신들에게 피해가 돌아오자, 가족들은 급기야 그를 없애버리기로 한다. 가족들이 영혜를 이해하기는 커녕, 영혜의 채식을 극도로 반대하고, 교정하려고 폭행을 휘두르는 장면에서 이 대목이 떠올랐다.


“내쫓아 버리는 거예요." 하고 누이동생이 말했다.

“그 방법밖에는 없어요. 저것이 그레고르 오빠라는 생각은 버리셔야 해요. 우리가 지금까지 그렇게 믿어 온 것이 사실은 우리들 자신의 불행이었어요. 어떻게 저것이 그레고르란 말인가요? 만일 저것이 정말 그레고르였다면, 인간이 자기와 같은 짐승과는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쯤은 벌써 알아차리고 틀림없이 스스로 나가 버렸을 거예요.

그렇게만 되었다면 오빠는 없어졌어도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아서 오빠를 존경하며, 오빠에 대한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며 지낼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저 짐승은 우리들을 희롱하고, 하숙인들을 내쫓고, 급기야는 이 집 전체를 점령하고 우리들을 길거리로 몰아낼 거예요.  네, 저것 좀 보세요, 아버지!"


2) 양자오 <꿈의 해석을 읽다 - 프로이트를 읽기 위한 첫걸음>

: 양자오는 <꿈을 해석을 읽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꿈'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의 자아를 결정하는 것을 무의식인데, 이것은 평소에는 억눌려있지만 꿈을 통해 분출되기 때문이다. 


영혜가 어린시절 겪었던 아버지의 폭력과 개 죽음으로 악몽을 시달리고, 트라우마를 겪는다. 이러한 <채식주의자>에서 영혜의 꿈 내용은 이태릭체로 강조되어 독백형식으로 쓰여있는데, 영혜의 꿈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갑자기 돌변한 그녀의 행동변화를 보면서 유년기의 트라우마와 무의식의 발현을 설명했던 이 책이 떠올라서 다시 찾아봤다.


p. 123
'어두운 내면이 당신이 누구인지 결정한다' 中

의식과 인격의 어두운 감옥 한 칸에는 문명사화의 표준에 적절하지 않다고 간주한 것들이 갇혀 있고, 다른 한칸에는 당신이 싫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경험, 당신의 트라우마가 갇혀있다. 그리고 또 한 칸에는 당신의 트라우마를 연상시키는 것들이 갇혀 있다. 인간 내면의 크고 어두운 감옥에는 적어도 이 세 가지가 갇혀있다. 


p. 127
'꿈의 정보도 위장된다' 中

억압된 정보는 인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일단 억압되면 원래 상태로 돌아올 수 없다. 문지기인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언제 비로소 인격의 개성을 결정하는 어두운 면을 볼 수 있는가? 꿈은 왜 중요한가? 꿈은 문지기가 가장 허술한 시간이다. 꿈은 우리가 정신적 에너지를 배출할 수 있도록 돕는 특수한 상황이다. 꿈은 억압된 것들이 빠져나와 다리 쭉 뻗고 내달릴 수 있도록 해준다.


p. 176
 '유년기의 트라우마는 성인의 악몽으로 변한다' 中

유년기의 경험이 소환되었다면 이는 그냥 꿈이 아니다. 꿈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며 우리는 꿈을 통해 삶의 근원, 곧 무의식의 근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유년기와 연관된 일은 무엇이든 중요하다.



한강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함께 떠오른 노래


1) 박지윤 '그대는 나무 같아'


: 숲에서 발견된 영혜의 소식을 들은 인혜는 영혜의 모습을 상상하는 부분이 기억에 남았다. 꼿꼿하게 물구나무서 있던 영혜의 모습을,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영혜의 몸을 통과해 나가는 모습을 생각하는 인혜. 소설의 후반으로 가면서 인혜는 영혜의 고통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때 인혜의 입장에서 영혜의 모습을 생각했을때, 어쩐지 평화로운 이미지가 연상되었다. 박지윤의 노래에서는 '든든한 연인'의 의미로 나무가 쓰였지만, 제일 먼저 이 노래가 떠올랐다.


그대는 나무 같아
그대는 나무 같아
조용히 그 자리에 서서
햇살을 머금고 노래해


2) 루시드폴 '물이 되는 꿈'


: 한강 작가의 소설을 보고 나면 머리가 띵해진다. 유려한 문장때문인지 잔상도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나름의 힐링을 하고자 책을 덮으며 루시드폴의 노래를 들었다. 영혜의 길고 긴 악몽 끝에는 '나무'가 되는 꿈이 남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물. 비가 되는 꿈.
내가 되는 꿈. 강이 되는 꿈. 
다시, 바다. 바다가 되는 꿈.
하늘이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2017.10.29

트레바리 씀씀 화이트 준비를 위한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