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광해는 폭군으로 기억된다. 자신을 위협하는 많은 인물들을 정적으로 배척시켰다. 그의 뒤에 늘 있었던 문신 이이첨은 이를 주도했다. 광해군의 형을 역모로 몰아 제거했고 이복동생은 7서자의 난에 연루시켜 살해했다. 선조 말 세자로 이복동생을 지지했던 세력들과 수많은 왕위 위협 존재들은 모두 제거되었다. 이 모든 과정을 광해는 묵인 또는 주관했고 조정은 피로 물들었다.
그럼에도 그를 성군으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그런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준다. 아픈 광해를 대신해 왕 노릇을 하는 천민 하선은 궁녀 사월이의 사연에 진심으로 가슴아파한다. 지주와 조정의 반대에도 대동법을 밀어붙이고 명과 후금 사이에서 정략적 줄타기를 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는 임진왜란 당시 궁을 버리고 도망을 간 선조와는 달리, 의병을 모으고 군량미를 나눠주는 등 백성을 향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오직 실을 염색하는 것만이 아니라 나라도 역시 물든다. 순임금은 허유와 백양에게 물들었고, 우임금은 고요와 백익에게 물들었고, 탕임금은 이윤과 중훼에게 물들었고, 무왕은 태공망과 주공단에게 물들었다. 이 임금들은 물든 것이 올바른 것이었으므로 천자가 되어 하늘과 땅을 뒤엎을 만한 공로와 명성을 이루었다."
-묵자 <소염>-
물감이 천을 물들이듯 사람은 사람을 물들이고 나라를 변화시킨다. 누구든 무릇 붉은 색을 가까이 하면 붉어지고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 리더에게 있어 사람의 의미가 특히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건 이 때문이다. 신념을 합리적으로 구체화할 다양한 전문가가 함께 할 때 리더는 성장하고 사회는 발전한다. 리더에게, 사람을 바로 볼 줄 아는 능력이 그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이유이다.
국민들의 삶과 공동체의 방향을 올바르게 변화시킬 수 있는 가치관을 가져야함은 물론이다. 사회 구성원 저마다 갖는 서로 다른 이익을 어떻게 하나로 조정해나갈 것인가는 리더가 가진 대의가 무엇인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애민정신을 가졌지만 왕위를 위협하고 권력을 흔들어대는 세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던 광해에 대한 후세의 기억이 결코 긍정적일 수만은 없다.
백성이 왕의 다스림을 받던 시대는 지났다. 현명한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막연하게 기다리던 때와는 다르다. 국민 스스로가 합당한 지도자를 판단하고 공공의 문제 해결을 위임한다. 권력 다툼이 난무하던 때 나라는 종종 전쟁의 위기를 맞았고 성군이라 기록된 왕들의 집권 시기에 백성들은 예컨대 글을 깨우칠 수 있었다. 어떤 지도자와 함께 하느냐는 지도자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이 시대에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의 선택은 늘 귀중하다.
영화는 거짓 왕임이 발각될 위기에 놓인 하선을 도승지 허균이 몰래 떠나게 해주며 예를 갖춰 배웅을 하는 엔딩을 그렸다.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그의 오롯한 정신과 행동이 지도자로서 인정받는, 개봉한 지 5년이 다 되어가는 이 판타지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자극한다. 다시 선 민주주의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행복을 직접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