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과 검정, 회색을 베이스로 한 무채색의 조합은 사물의 분간이 힘들 만큼의 눈의 뻑뻑함을 낳는다. 최소한의 옅은 정도의 화장과 깨끗한 차림새, 반듯하게 다듬어진 인물의 외관에 대한 익숙함은 오히려 당혹스러워진다.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써야 할 것 같은 목구멍의 답답함이 현실이 아닌 영화에서 느껴진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아!”
언뜻 떠오르는 대로 해석하면 적어도 지아 장 커 감독의 <스틸 라이프>에서는 틀린 말이다. 보통은 멋진 사람들, 근사한 장소, 화려한 이벤트를 영화에서 떠올리기 때문이다. (예외는 있지만 대체로) 비현실적으로 잘생기고 예쁜 인물이 가난하지만 값비싼 옷을 입고 고난과 역경을 (나름 어렵다고 묘사하지만 꽤) 쉽게 극복한다. 복수는 성공하고 결과는 달콤하다. 영화의 한 장면(은 현실과 달리 꿈과도) 같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아.”
문자 그대로를 찬찬히 뜯어보면 온전히 지아 장 커 감독의 <스틸 라이프>에서는 맞는 말이다. <스틸 라이프>는 기존의 영화적 문법과는 다르다. 극적인 사건도, 인물도 없다. 현실을 온전히 표현하고 싶었던 감독은 전문 배우가 아닌 현지 사람들을 전면에 등장시킨다. 지난날을 기억하고 싶다고 대화를 나누는 인물들 사이에서는 주제의식을 담은 벨소리만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된다. 현실에서 우리는 어딘가 조금씩 울퉁불퉁한 몸 위에 평범하고 부담 없는 옷을 걸친다. 행동, 사건마다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지 않는다. 영화가 곧 현실이고, 현실이 곧 영화다. 영화의 장면들(이 현실과 너무도) 같다.
포스터에도 나왔던, 주인공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남자를 보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친다. 줄타기를 하는 인생이란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일까. 유한한 삶을 살면서 우리는 그 주어진 시간 동안 각자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많은 갈등을 겪어낸다. 진학을 하고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족을 꾸려내면서 수없이 크고 작은 경쟁을 하고- 영화에서 주인공 산밍은 아내를 찾으러 가는 도중 배 안의 마술쇼를 구경하다 강제로 가방 수색을 당하고, 도착한 산샤에서는 다른 노동자들 사이에서 미묘한 긴장감을 느낀다. -낙오자(라는 말을 무척 싫어하지만)는 생겨난다. 신자유주의의 경제 시스템이 일상까지 파고드는 현재에, 신자유주의의 다음 형태는 변형된 사회주의가 될 것이란 일각의 의견은 저마다 위태로움을 안고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의미가 크다.
정지되었지만 여전히 삶을 살아갈 것이란 제목은 그래서 매우 인상적이다. 영화의 매력이 재미와 감각적 즐거움에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지독한 리얼리즘을 담아내려했던 감독의 의도가 간파되고 나면 답답함과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다양한 생각을 파생시키고 이것저것 여러 의미를 부여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도 충분히 영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