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연 Sep 12. 2022

그냥 사람이니까, 그저 사랑하니까

내가 그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하는 이유




  혹독한 날들이 지나갔다. 그런 날이 오고 지나야 나는 비로소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마치 어릴 적, 우울한 일이 없으면 일기도 쓰지 않았던 것처럼. 그래, 너무 슬픈 며칠을 보내고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대학생 때, 잠시 섹스 칼럼니스트를 꿈꾼 적이 있다. 심지어 첫 경험도 안 했을 때니 얼마나 우스운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달리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사랑에 목을 매달았고 진정한 사랑을 꿈꾸며 그 환상에 푹 빠져있었다. 어린아이들의 발달 과정을 알게 되었을 때도, 로맨스 영화를 볼 때도,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사랑이라 생각했다.


  얼마 전, 사랑하던 사람이 떠났다. (죽은 건 아니다) 언제나 느끼지만 사랑이란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던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미운 사람이 되어 버린다. 이번에는 너무 비참한 이별을 겪고 "그럼에도 사랑이 필요하다"라고 외치던 나도 조금은 휘청이며 울었다.


  처음 알았던  사람은 너무도 다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끔 나는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면을 쓴다는 느낌을 지울  없었다. 아무리 다가가도 그의 어두운 면을 훔쳐볼  조차 없었다. 그가 나에게 자신을  좋아하냐고 질문했을 , 나는 "그냥  좋아하니까"라고 대답했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할 , " 사람은 너무 다정하고 사랑스럽고 외모도 잘생겼고 목소리도 좋아"라고 답한다면 그건 귀찮아서 대충 둘러댄 거짓말일 것이다. 나는 그런 이유로 누군가를 사랑해  적이 없다. 나는 그냥  사람이 좋다.


  그는 나를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답을 들은 나는 불안했다. 언젠가 그 '존경심'이 흔들린다면 그가 나를 떠나버릴 것 같았다. 그는 아무 걱정 말라며 나를 껴안았고 1년도 지나지 않아 내 곁을 떠났다. 나를 전부터 좋아하지 않았다면서.


  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특히 인생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즐겁다.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T가 내게 말했다. "난 내 곁에 어떤 사람들을 둬야 할지 모르겠어. 누가 나한테 이익이 되는 사람인지 파악하는 게 어려워." 얼떨떨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꽤 듣는다. 그래서인지 이런 상담에 응할 때도 많다. 하지만 살면서 "누가 나한테 이익이 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라는 말은 처음이었고 너무 충격적이었다.


  나는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사랑한다. 만약 그 사람이 예의가 없다거나,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다거나, 너무 부정적이라 기가 빨린다거나. 그런 유쾌하지 못한 단점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들을 사랑할 수 없다. 하지만 맹세코 "이 사람은 내게 도움이 될 거야. 내게 어떤 이점을 가져다 줄 거야"라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그런 생각을 비난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는 그런 사고방식 자체를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그렇기에 내가 T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그냥 "사람을 있는 그대로 좋아해 봐. 이해관계 같은 건 접고 그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려봐. 그 사람들이 너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할지 상상해봐"라고 조언했지만 글쎄, 그렇게 명답은 아니었던 것 같다.


   확실히 나에게는 나쁜 습관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 내게 원하는 행동을 캐치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다. 가끔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행동할 때가 있다. 불필요한 트러블을 일으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정신병원의 문을 두드렸을 때, 의사 선생님은 그런 내 이야기를 한참 듣다가 "배려라는 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죠"라고 말했다. 나만 배려하고 있다면 그 관계는 멈춰야 한다. 그게 그때 내가 배운 교훈이다.


  그 후로도 나를 상처 준 사람들은 꽤 많았다. 배려가 배려로 돌아오지 않고 배신당하는 일도 있었다. 내게 가식적으로 혹은 자신이 취하고 싶은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사람을 미워하지 못하겠다. 사람에 대한 희망을 놓지 못하고 아직도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다. 배려가 없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할지, 남보다 나만을 중요시한다면 진정한 사랑은 가능한 게 맞는지. 아직도 내 머릿속은 사랑이란 이름의 테마 아래에서 어지러움을 느낀다.


  내게 타인이란, 나를 위한 사물이 아니라 독자적인 한 사람이다. 나는 오늘도 사랑하는 그들을 만난다. 그리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한다.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 사람을 발견하기 위해 나는 괴로움에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걸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그대라는 방 안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