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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Mar 25. 2022

그대라는 방 안에서

좋은 공간을 찾는 이유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차가운 아메리카노와 이 공간이 주는 아늑함을 바탕 삼아서. 오랜 시간 글을 쓰지 못했다. 집에서는 글이 잘 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매일 카페에 가자니 개인 레슨을 나갈 때마다 카페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날이 많아 은근히 커피가 지겨워지기도 했다.


  지금 나는 카페를 겸한 작은 서점에 앉아 있다. 확실히 이곳의 공기는 프랜차이즈 커피숍과는 조금 다르다. 사진을 찍어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자 너네 동네에 그런 힙한 카페가 있었냐는 친구의 DM 날아든다.


  원래 카페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최근 마음먹은 것들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고 공부 계획을 새로 세우고 글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서점의 한쪽 책장에 빼곡하게 꽂혀있는 책들을 보고 있자니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아직은 두터운 외투를 벗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몇 장 읽어 내려간다. 요즘은 다시 책 읽는 게 즐거워졌다. 분위기 있는 장소에서는 꽤 진득한 독서를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집에서 공부를 하는 타입이었다. 카페에 가야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게으른 사람들의 핑계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나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자고 결심한 이후로, 나는 우울해지거나 기분이 처질 때마다 15분 정도를 걸어 평소에 가는 프랜차이즈 커피숍보다 예쁜 개인 카페에 가곤 한다. 가끔은 그런 경험이 우울증 약 한 봉지를 삼키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1월부터 쭉 데이트해 온 남자와 3월부터 사귀게 된 것이다. 며칠 전, 그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영화 <타락천사>를 다시 봤다. 왕가위 감독은 사람의 마음을 방에 비유하곤 하더라. 예전에는 항상 내가 타인에게 방 한 구석을 내준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 남자를 알게 되고 타인의 방에 들어간다는 게 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나보다 네 살이 어리다. 그런데도 나는 그에게 자주 응석을 부리곤 한다. 함께 침대 위에서 잠들 때, 그는 한쪽 팔로 나를 단단히 감싸고 잔다. 평생 그리 해 본 적 없다던 사랑한다는 말도 보고 싶다는 말도 자주 해준다. 그 사람은 내가 힘들다고 하거나 아주 조금이라도 아프다고 하면 1초 만에 전화를 걸어오거나, 당장이라도 내 얼굴을 보기 위해 찾아온다. 괜찮아, 라는 내 말을 무시하고선. (난 언제나 그런 걸 바라온 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서 연애를 하는  정말 최악이라고들 한다.  역시 항상 누군가를 곁에 두면서도 혼자 일어나 걸어보려 노력해왔다. 그래도 퍽퍽한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간절히 기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 그는 스스럼없이 내게 자신의  한편을 내주었다.


  친구는 연애를 시작하고 얼마  됐을  다들 그렇다고  환상에 너무 젖어있지는 말라고 했다. 하지만  누구도 내가 잠들고  때까지 나를  안아주진 않았던  같다.  어릴 적부터  막히는 포옹을 싫어했지만 - 아마 아빠가 술에 취하고 돌아와  그렇게 안았기 때문에 - 잠에서  때마다 나를 고쳐 안는  남자에게는  빠지게 되었다.


  그를 알게  후로 활기찬 에너지가  몸속에서 맴도는 기분을 자주 느낀다. 그는 "오늘은   볼까?"라는 나의 의미 없는 질문에 절대 "  생각해 "라고 답하지 않는다. 이건 어때? 저건 어때? 수다쟁이처럼 대답을 쏟아 내는  사람을 보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은  하라고 말해줄까?' 그의 이름을  방에서 나는 누구든   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나는 집 앞에 있는 카페에 갈지, 이곳에 올 지 꽤 오래 고민했었다. 그에게 서점은 조금 일찍 닫아서 그냥 집 앞 카페에 갈까 봐,라고 말했더니 그는 "시간이 좀 부족해도 나라면 그 서점에 갈 것 같아"라고 답했다. 그래, 찾아가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리거나 함께 할 시간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긍정적인 하루를 살게 해 줄 수 있는 곳, 그 공간에 다다를 수고를 아끼지 말자. 그러면 행복해질 거야. 아주 쉽게, 그냥 숨 한번 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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