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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장 Mar 23. 2023

프로젝트 안암(安岩)

#21. 나 없는 안암

1.3월


3월 목표는 다양하다.

1. 포장 준비

2. 저녁 메뉴 준비

3. 좌석 늘리기

4. 나 없는 안암


3월에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직원의 수가 늘었다는 것. 

요즘 같은 환경에 직원을 무리하게 늘리는 이유는 "나 없는 안암"을 만들기 위해.

나 없는 안암을 만들어야 할 이유는 기획과 콘텐츠 생성에 좀 더 힘을 싣기 위해.

그 외적요소 필요와 쓸모의 이유는 역시 생존이겠다. 사실 오늘 글의 내용이 이게 전부지만, 여러 가지 디테일을 나열한다. 


2. 나 없는 안암


최근 되도록 가게에 있지 않으려고 한다. 

나와 오래 일한 직원이 가지고 있는 판단의 기준을 신뢰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다.

 첫째로, 판단의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필요한 스탠더드는 이미 전달했다. 대체적으로 서비스 과정에서 생기는 사소한 기준이나 우선순위의 변동은 스스로 경험을 하면서 만들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을 기존의 직원들과 내가 현장에서 먼저 처리하는 게 익숙해지면 그 판단에 기대는 직원들만 많아질 뿐, 스스로 판단할 기준이나 고집이 생기지 않는다. 책임의 폭이 넓어지는 만큼 사람은 성장한다. 


 둘째로, 생산성이 떨어진다.

사장으로서 가게에 상주하는 게 좋을 때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장은 원하든 원치 안 든 직원들이 운신할 폭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해서 나는 사장의 역할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생산을 함께하는 동료로 직원형 사장, 그리고 생산력을 직원들에게 부여하고 외적활동을 통해 다른 생산성을 추구하는 사장. 현재의 내가 지향하려고 하는 사장은 후자이다. 물론 생산과정에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직원들이 있다는 전제에 가능한 거지만, 분명한 건 현재 가게에 있는 점장급 직원의 판단력을 나만큼이나 신뢰한다. 그 친구와 내가 다르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을지언정, 음식 퀄리티나 서비스 퀄리티, 직원 교육 수준에 대한 기준이 다르거나 틀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해서 나는 외부에서 만들 수 있는 생산력에 집중할 수 있다. 


 셋째로, 안암의 두 번째 아이덴티티를 생각한다.

북촌의 안암은 사실 프로토 타입(Proto-type)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 스스로의 아이덴티티가 많이 부여된, 내가 시장을 보는 시각, 그걸 판단하는 기준, 그에 따른 기획, 그 기획을 소비자가 얼마나 흡수하고 인지하게 되는지, 그리고 전달하고자 하는 것들을 해결하는 방식 등이 얼마나 시장이 요구하는 것들에 부합하는지, 또 그 플랫폼 내에 속하는 타깃들이 소비를 하는 방식과, 우리가 하게 될 음식에 대한 피드백(Feed-back)을 관찰하기 위해 생각한 플랫폼이다. 아무리 AI나 로봇이 빠르게 성장한다고 해도, (아직은 GPT가 서빙을 할 수 없으므로, 근데 그런 세상이 오면 서비스 에티켓이라는 게 존재할까?) 사람 중심의 동선과 구성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외식시장은, 현재 우리가 북촌의 안암에 자리 잡게 될 시스템의 안정성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겐 사장이 없는 가게에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에 대한 충분한 테스트가 필요하다. 


 넷째로, 상상할 수 없는 가게의 직원은 성장하지 못한다.

대체로 외식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자신의 브랜드를 꿈꾼다. 

사장들이야 안정적으로 일해줄 친구들이 필요하지만, 특히 이 업종에서 그냥 직업으로 시간이나 때우는 정도 가치판단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들만 엉켜있는 공간엔 성장 분위기가 없다.

그렇기에 자신의 가게를 상상한다는 건 꿈도 못 꿀뿐더러 디테일을 요구받지도 못한다. 지금까지 그 디테일을 상상해 본 적 없기 때문.  별거 아닌 리스크 하나가 큰 폭으로 사장들에게 치명타를 입히기 때문에 사장들은 직원들의 실수에 노심초사하고 생각 이상으로 제약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쉽게들 하는 이야기가 있잖나, 

그냥 내가 할게. 근데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실수 위에 살아야 한다.

단지 그 실수를 해결하는 방식이 양심을 던지는 방식이 아니라, 

번거로워도 인정하고 다시 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실수는 문제가 안된다. 

그리고 그런 생각하는 친구들은, 실수가 만드는 리스크에 대해 돈으로 치환해서 계산할 줄 알게 된다. 

자기 가게에 대한 간접경험을 소홀히 하지 않거든. 


사실 내게도 중요한 터닝포인트인게, 사람을 줄여도 모자란 시기에 사람을 늘렸다. 

우리가 성장할거라고 믿고, 앞으로 내가 하기 나름으로 우리가 자리잡을테니까. 

실패하면 안암은 없어지고, 개인적으로 빚과 새로운 기준들이 늘어나겠지만,

우리는 나 없는 안암으로서도 분명히 성장할 테다. 

쉬다니 형.... 같은 자영업자끼리 그게 무슨 말이야.. 

3. 소소한 변화-좌석 추가 


좌석수가 약간 늘어날 예정이다. 

창문 쪽에 의자가 네 개 정도 들어가고, 혼자 밥을 드시는 분이나 아이를 데리고 오신 분들이 식사를 하실 수 있게 하려고 한다. 얼마나 실용적 일진 모르겠으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덕분에 웨이팅에 관한 컴플레인이 좀 늘 수 있지만, 좌석이 늘어난다는 건 회전에 효과를 미친다는 이야기다. 효과 있을 진 지켜보자.

보고 싶었던 오랜 친구와. 내 뒤에 있는 창가 대기좌석 쪽으로 테이블을 준비 중이다. 

저녁메뉴를 준비한다. 

말한 대로, 꿈을 꾸고 상상하고 하는 것들은 우리 직원들을 포함해 손님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앞으로 해 갈것들을 기대하고, 상상하거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시도하려고 한다. 

근데 그게, 우리가 이렇습니다! 하는 거 말고, 이런 콘텐츠(음식)를 제공하는 음식점이라니, 메인 음식 역시 가치가 있어. 이런 사람들이라면 이 음식은 더 가치 있게 느껴져. 하는 뭐 그런 것들을 지속해보려고 한다.

그냥 맛있는 음식을 시도할 건데, 효과를 여러 개 생각하는 거다. 

분명 "우리"라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나라서 말고. 그런 걸 기대한다.





4. 포장준비



3월 안에 해결하려는 게 포장 준비다. 

생각보다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고, 생각보다 단가계산도 엄청 치열하다. 

무엇보다 계절에 상관없이 포장이 더 잘 준비되길 바라고, 

손님들이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직원들도 너무 힘들게 준비하지 않게 되면 좋겠고. 


디자이너가 없는 국밥집에서 결국 디자인은 내가 하는 것이겠다.

포장 용기를 고르는 것에 며칠, 포장 용기 구성 후 거기에 맞는 것들을 찾는 것에 며칠, 

단가에 맞게 브랜딩 할 요소를 구성하는 것에 며칠을 보낸다. 시간은 빠르고, 이게 맞나 싶게 의심되는 게 계속되다가도, 뭐 언젠 안 그랬나 싶어 저지르고 본다. 

세련되거나 깔끔하지 않아도, 진심은 전달된다는 걸 잘 알게 해 준 게 안암이 준 경험이다.

띠지를 만들 때 썼던 내용을 변경하여 디자인을 한다. 

마케팅 측면에서 안암국밥 글씨가 쓰여있는 쇼핑백을 들고 다녔을 때 생기는 홍보효과를 생각해 본다.

글씨가 빠진 로고만 있는 심플한 느낌이 주는 디자인 적 요소가 만들 효과도 생각해 본다.

팀원들의 의견을 물었더니 다들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다.

소위 로고 플레이라는 것에 거부감이 강한 가장 어린 친구를 제외하고 모두가 글자를 넣길 바랐다.

나는 심플한 것일수록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가치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자본을 상상한다.

아무것도 적지 않기 위해 필요했던 보이지 않는 마케팅 비용들, 

나이키의 스우시나, 애플의 사과가 가진 브랜드파워는 로고가 존재했기 때문에 강한 게 아니다.

브랜드 자체가 가진 메시지가 무의식적으로 로고에 투영될 수 있게 하는 메시지 전달과정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브랜드 파워가 있다는 것은 메시지 전달이 꾸준하다는 이야기일 테다. 

뻔뻔한 편이라 부끄러움이 잘 없다. 저 엉망진창인 글씨를 보라. 

주관적으로 체감하고 있는 안암의 브랜드 파워는 "미미하다"이다.

로고만 보고 떠오를 만큼 많은 노출도 없었거니와, 공간적 요소와 콘텐츠적 요소가 엄청 부합하여 연상적으로 떠오르지도 않기 때문. "녹색국밥"이라는 단어로 안암을 떠올리거나, 회색 바 테이블과 북촌의 국밥이라는 개념에서 떠오르는 공간일 수 있지만, 버건디색의 쇼핑백에 로고 하나만 가지고 누구나 아, 안암이 포장을 시작했구나를 알긴 힘들다. 

그래서 적어도 4-5회 차 정도의 쇼핑백 제작까지는 국밥이라는 글씨를 넣으려고 한다. 


촌스럽다는 게 디테일하게 보일 때쯤, 다시 변화를 시작해야지. 

그땐 해결해야 할 것들이 눈에 보일 테니까.

면밀히 확인하고, 다시 재구성하면 되지 뭐. 지금 좀 아쉬워도 2-3년 안엔 더 좋아지겠지. 

우리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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