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게으른 사장놈의 계획이 진행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한 달에 두 번은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시간은 나의 성실함을 배려하며 흘러가지 않으므로 한 달 반이 흘러서야 기록을 남긴다.
여차저차 모두가 안 좋은 상황은 둘째로 하고, 시작하기로 한 몇몇 변화에 대해 기록하자면
1. 포장시작
2. 좌석수 늘림
3. 곁들임 메뉴
4. 맥주 등장
정도.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포장. 제품 퀄리티 유지에 확신이 없어 시작하지 못했던 포장은 가능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퀄리티를 적정 수준까지 유지할 방법을 찾아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듯 손님들의 반응을 확인하며 수정해 나갈 예정이지만, 할 거면 우리 기준대로 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을 바꾸지 못해 포장용기를 끝내 타협하질 못했다.
돼지고기가 가지는 한계가 분명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냄새가 생기기 쉬워 우리는 하루 양을 정해놓고 그 이상을 판매하지 않는다. 육수를 얼려 아이스팩 대신 사용하며, 그 낮은 온도로 다른 재료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사용하기 위해 보냉백을 사용한다. 그래서 쇼핑백은 길쭉한 모양으로 준비된다.
우리 가게는 2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던 바위가 있던 자리인 "안암동"지명의 유래에서 콘셉트를 가져온다.
해서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빠른 회전율에도 쉽지 않은 수의 손님이 특정시간에 몰려 들어오는 북촌 상권을 고려, 테이블 6자리 정도를 더 확보했다. 아직 조명이 준비되지 않아 완벽하다 할 수 없지만, 덕분에 밀리는 손님을 좀 덜한 컴플레인으로 유지할 수 있고, 또 술이나 안주에 대해 반응하기 쉬워졌으며, 아이를 동반한 손님에게 부담을 덜 줄 수 있게 되었다.
단점으로는 회전율이 너무 빨라져서 좀 벅차다. 마지막 팀 식사 나갈 때 첫 번째 팀이 결제하는 타이밍까지 올 때도 있는 정도. 국밥집에 손님이 줄어드는 날씨에 회전율까지 빠르니 웨이팅이 잘 안 찬다. 물론 상권의 변화, 경기침체등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래서 회전율을 낮추고 객단가를 높이며,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곁들임 메뉴를 시작한다. 저녁 메뉴를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저녁에 근무할 인원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점심 회전율을 떨어뜨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메뉴를 준비할 때 생각해야 할 것들이 여러 가지 있는데, 우리가 가진 인프라/플랫폼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가, 시도했을 때 우리의 타깃에게 영향이 있을까. 타깃이 소비할만한 적정가를 확보했는가.
음식이 나오는 타이밍을 조절할 수 있는가. 등이 있겠다.
처음 생각해볼 게 주방설비와 인력구조문제다. 우리가 가진 설비 안에서 만드는데 무리가 없어야 한다. 기존의 메뉴 퀄리티를 유지하는데 부담이 없어야 하고, 그걸 우리 인력이 처리하는데 무리가 없어야 한다.
또, 소비자들이 국밥을 소비하러 와서 소비할 수 있는 아이템이어야 하고, 가격 결정에 무리가 없어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 국밥이 나오는 시간에 늦지 않게 음식이 나와줘야 한다.
이렇게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메뉴가 새로 하기로 한 제육.
안암은 국밥에서 그랬듯 제육 역시 약간의 트위스트를 더해, 샬롯 샐러드 위에 올린 저온 조리해 그슬린 미박 등심, 그리고 산미를 더하기 위해 사용되는 라임과 레몬그라스 오일 등으로 향미를 입힌 제육을 준비했다.
반접시를 판매하기 위한 한 접시 설계로 기획하여, 반접시와 한접시로 준비되지만
역시나 한 접시는 안 나간다.(슬퍼)
라임의 향과 산미, 그리고 레몬그라스 향을 입혀 맛이 좋다.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 거 같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준비하고 있는 것들로 구운 항정살이나 등갈비 요리, 다른 가니쉬의 제육, 그리고 튀김 등이 있겠다.
다른 것도 할 예정은 무수히 많지만, 지금도 사실 6.5일 근무 중이라..
그런 계획에 따라 맥주가 들어왔다. 여름이 오고 있기도 하고, 술을 못하는 내가 좋아하는 맥주 몇 종류를 들여놓고, 그 반응을 확인한다. 실제로 주류의 판매가를 결정하는 방식이 있는데, 대체로 그 방식대로 가격을 결정하면 소비자는 비싸다고 생각한다. 해서 끼워 팔 든, 나눠 팔 든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가격을 결정하게 되는데,
그냥 맥주는 원래 가격결정방식대로 결정하기로 했다. 그러면 우리가 가진 전통주류들이 좀 더 싸게 보여 잘 팔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고.
최근 3개월 동안 안암 내부에서 진행된 변화들은 외부에서 보면 큰 일들이 아님에도 나한텐 버겁고 큰 변화다. 진행한다고 발버둥 쳐온 일들이 하나 둘 차곡차곡 시작되는 걸 봐선 뭔가 하고 있구나 싶으면서도, 그 변화의 폭이나 크기를 안암을 찾아주시는 분들도 긍정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남들은 자리 잡았다고, 안암이 자리 잡은 게 아니면 뭐냐 말하는 그 속내 역시 할 일이 태산이다.
훗날, 자영업자 말고 중소기업 하고 싶은 내 욕심이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