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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장 Jun 09. 2023

프로젝트 안암(安岩)

#26. 산군(山君)

가게를 2년남짓 운영하며 겪은 별의별 일중 제일 난처한 일을 꼽아보면 분명 생명체와 관련된 일이다. 음식점 하나를 운영하는 게 다인데, 고민에 끝에 서면 지구가 인간의 것도 아닌데 어째서 우리는 우리의 이익에 반하는 생명체를 배제하는가 라는 대의제에 다가서있다. 그런 이유로 채식을 하는 것도 아닌 내가 그런 고민을 한다는 게 우스울 수 있지만, 지구는 누구의 것도 아닌 것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인간의 이기심을 정당화하는 논리에다가설 수밖에 없고, 그걸 원하지도 않는다.


국밥집 사장이 이런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는 건 사실, 고양이 가족 때문이다.


5월의 마지막 휴무일, 가게에 들어서보니.

 

첫번째 떨어진 날.


당황스러움이 잔뜩 담긴 CCTV속 내 모습은 차치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판단은 사람의 냄새가 묻지 않도록 조심하며 혹시 어미가 찾는 공간이라 생각되는 곳으로 안내하는 것. 가게 문이 닫힌 시간이 있어 이틀 정도 굶었을 것으로 예상, 아기 고양이용 간식을 구비해 챙겨놓고 그날 저녁 확인해 보니 아기고양이가 닿지 않을 곳에 올려둔 간식 팩에 있는 이빨자국과, 없어진 물의 흔적으로 어미와 함께 있는 걸 확인했다.


오죽했을까, 안쓰러운 마음에 지켜보기로 했더니 가족 전체가 이사를 왔지 뭔가.



위생에 관한 문제에 고민이 큰데, 나가라니 죽으라는 것 같고, 아이들이 좀 클 때까지만 기다릴 순 없을까 고민하던 6월 첫 월요일, 옆의 프루 매니저에게 전화가 왔다. 가게 안에 고양이 들어왔다고.


두 번째 떨어진 날.

고양이를 키우는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아이들이 머리 비율이 커 원래 잘 떨어진다고.

어미에게 또다시 돌려주다 보니 어미가 내 얼굴을 기억하기 시작했고, 경계조차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손톱이 자라면서 간지럽고, 벅벅 긁는 벽과 천장에 끊어지는 조명, 다양한 문제가 생겨

어미를 찾아 아이들이 조심하도록 할 순 없겠느냐, 내 입장도 생각해 달라 부탁했지만 허사.


그러다 3일 전에, 새끼 한 마리가 벽 사이에 떨어져 끼었다.

요 며칠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듯했던 어미가 어느 시간이 되면 꼭 와서 벽에 낀 아이를 확인하고 갔고,  결국 난 목수반장님을 불러 벽을 뜯기로 했다. 인간의 스케줄이란 게 시간이 필요하다 보니, 급하게 했지만 그게 6월 8일. 어제저녁이었고 그날 점심엔 어미가 새끼들까지 데리고 와 엄청 가까이 와서 날 보고 울었다. 그간 한 번도 그런 적 없던 그 가족이 말이다.

나도, 우리 직원들도 어미와 함께 울며 우리를 바라보는 고양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어째선지 알 것 같았고, 절박해 보여 괜히 미안하기도 했다. 내보내야 하는 입장과 안타까운 입장이 겹쳐 마음이 복잡하기만 했다.

일단 구해놓고 다음을 생각하자 싶어 영업을 포기하고 뜯은 벽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어느 쪽 벽인지 알 수 없어 우리 가게 아니면 옆집에 새로 들어오신 액세서리집 사장님이 벽을 뜯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옆집 사장님 역시 구하고 보자는 생각에 기다리고 계셨던 터라, 옆집도 벽을 뚫었더니 그곳에 있었다.


목이 쉬어 제대로 울지 못해서 속상하기도 했다.


아이는 겁이 났겠지만, 좋은 사장님들 덕분에 다시 엄마 곁으로 돌아갔다.

밤새 엄마 찾아 울던 아이는 엄마의 곁으로 돌아갔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와 날 보며 울던 어미 얼굴을 잊지 못한다. 어미는 이제 잘 움직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생존훈련을 시키는 듯했다(새끼가 3마리였다.)

옆집 사장님들과 우리는 그다음은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돌려보낸 것에 만족했다.


사실 2주사이 버림받을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준비했다. 길고양이가 사람 손을 탄 자식을 냉정히 버린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냉정할 줄 알았던 길고양이 어미는 끝까지 아이들을 책임지려 했고, 어미는 우리에게 와 자신이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온 힘을 다해 부탁을 했으며, 나는 그 생명체의 메시지를 내 의지대로 해석했다. 나와 내 옆 사장님들은 금전적 손해를 입었고,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우리가 생명체로써 모른 척할 수 없는 일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는 게 의미가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우리는 사람으로서 올바로 살기 위한 과정을 걸어가고 있고, 안암을 운영하는 것은 그 일부이기에 어느 것보다 우선일 수 없다. 나는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생명체에 대한 이타심 역시 그 과정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적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그런 게 아니라 사실, 모른 척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안암이 음식점으로서 이 상황에 불리할 너무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해야 할 진 잘 모르겠다.

인간과 다른 생명체 사이의 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많은 문제들이, 어미가 아이를 안전하게 보살피고 싶은 마음보다 정말 우선일 수 있을까?

인간이 만든 시스템 안에서 인간은 강자일 수밖에 없다.

절대다수의 우위에서 다른 생명체를 죄인양 박해하고, 정의인 양 이야기하는 것도 좀 불편하다.

그 아이들도 우리가 만든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으려는 시도를 할 뿐이고, 우리는 그저 같은 시간대에 지구를 공유하고 있는 생명체일 뿐이다.

지금은 고양이 가족의 절박함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고개를 빼꼼히 내민 아이의 다행스러움에 기뻐하는 것에 만족하고 싶다. 나는 그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자신의 안전을 담보로 우리에게 부탁했던 어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물론 우리 옆집 사장님들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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