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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리 Mar 17. 2024

아가야, 엄마 네 밤만 자고 올게

아이에게 충실하지도, 공부에 충실하지도 못하는 반 쪽 이야기

 로스쿨 학기가 시작한 지도 2주가 지나고 3주 차에 접어들었다. 12월 합격 소식 이후 합격의 기쁨이 아니라 앞으로의 산재한 허들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는데 어떻게든 약 3개월의 시간을 준비해서 입학할 수 있었다. 당시 6개월이었던 둘째는 아이 돌봄 서비스를 통하여 운이 좋게 너무 좋은 돌봄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고, 나는 그 시간 동안 육아와 민법 선행학습을 병행할 수 있었다. 양가의 도움은 어려운 실정이라 내가 집을 떠나는 3월부터는 남편이 휴직을 하기로 결심하였고, 남편은 집에서 애 둘, 개 하나의 스파르타 육아라이프가 시작되었다.

1주차를 마치고 '아 못하겠다.'라는 말이 턱 끝까지 올라왔지만 아이 하원 길에 만난 어머니 헌장을 우연히 읽고 다시 마음을 다스렸다.

 

 시대가 아무리 변했다고는 하지만 남편의 진정 육아를 위한 목적의 휴직은 (의외로 남성의 육아 휴직은 진정 육아 목적인가에 대한 주위의 의심이 있으며 휴식이나 전역 준비? 등의 다른 이유를 찾으시는 분들이 많더라. 융통성 없는 우리 부부는 생각보다 요령 피우며 사는 것을 못하는 답답한 부류이다.) 많은 센세이션을 주위에 남겼으며, 현재 첫째의 씽씽이를 들고 둘째를 업고 각종 육아용품이 넘치도록 담긴 기저귀가방을 들고 다니는 남편의 모습은 교회에서 많은 짠함을 남겼다고 한다.


 남편의 발령, 복직 및 이사 등의 어려움으로 완전히 학교가 있는 지역으로 옮기지 못하여 혼자 기숙사 생활을 하기로 하였다. 얼마만의 단체 생활에 준한 개인 생활인지 중앙난방의 추운 방에서의 첫날밤은 마치 육사 가입교 후 인헌관에서의 추운 시멘트 바닥 냄새가 다시금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혹은 장성 보병학교에서 초군, 고군을 보냈던 그 당시의 기억들, 횡성, 화천 등 새로운 부임지에 혼자 뚝 떨어져 외롭게 살림을 꾸리고 적응하던 때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했다. 시설은 현재의 기숙사가 월등히 좋을지언정 낯선 곳에서의 긴장된 첫날이라는 공통점 아래 하나로 묶이는 낯설고도 불편한 기분이었다. 스스로 참 씩씩하다고 자평해 왔었는데 사실 이러한 긴장된 상황들이 온몸으로 기억하는 것을 보면 참 예민한 사람이 무던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려고 애쓴다고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처음 해본 많은 과정들이 낯설고 어려웠다. 수강 신청은 원하는 대로 잘 되지 않았고, 수업 15분 전에는 강의실에 가려고 미리 준비해 가면 깜깜한 강의실을 불 켜고 혼자 오래 앉아 있었다. 법학 공부가 쉽지 않고, 다들 훌륭한 학생들 사이에서 내가 가장 못할 것 같은 이 초라한 느낌, 그리고 특정 학부, 연령대가 다수이다 보니 동문도 없고, 군 출신도 없고, 결혼하신 분도 소수이고, 애 엄마도 안 보이고 어느 새로운 집단에 나를 다시금 적응시키는 주파수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대학원 생활 자체는 나에게만 집중하고 스스로 운용해야 하는 시간이기에 육아보다 오히려 여유로운 것 같았다. 확실히 말하면 스파르타의 아이 둘 육아에서 벗어나 오니 나만의 시간이 늘어 훨씬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었다. (아직 학업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는 증거일 수도.. )


윗니가 한 번에 나고있는 우리집 귀염둥이 뱃살 공주 둘째


 그런데 아이가 너무 보고 싶다. 사실 남편에게 나는 언제나 혼자 어디든 떨어져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내 곁에 누가 있던 없던 상관없다고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가족들이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 큰 행복 속에서 빠져나와 허술해진 일상을 다시 혼자 채우려니 참 어렵고 불편하다. 우리 큰 아이의 볼뽀뽀가 주는 심장 저 끝에서 차오르는 벅참과, 둘째 아이의 배에 코를 파묻고 냄새를 맡을 때 느껴지는 그 안락함은 그 무엇에도 비견할 바가 되지 못한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주말을 보낸 후 큰 아이에게 엄마 두 밤만 자고 올게 그동안 아빠하고, 돌봄 선생님, 어린이집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잘 먹고 재미있게 놀고 있어라고 인사를 했다. 눈물이 차오르고 울컥하는 마음이 드는 나와는 달리 우리 큰 아이는 엄마 두 밤 아니야. 네 밤이야라고 정정해 주며 아주 의연하다. 2주 만에 너무 씩씩하게 적응을 잘하는 중인 아이들이 미안하고 고맙고 대견해 또 울컥한다.


 많은 변화를 앞두고 도와주시고 격려해 주신 주위의 모든 분들, 가족들,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 더욱 나의 학업에 몰두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아이에게도, 학업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반쪽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그 순간순간에 집중을 다 해 모두의 노력이 아깝지 않은 시간으로 만들어야겠다. 모든 여건과 환경에 변명하지 않으며 감사한 생활을 다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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