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이, 민족의 시인이자 국가 정체성

15세기 시인이 21세기 우즈베키스탄을 지배하는 방법

by Miracle Park

■ 핵심 요약

알리셔 나보이(1441-1501)는 차가타이 튀르크어로 시를 쓴 최초의 대문호로, 우즈베크 문학과 언어 발전에 결정적인 이바지를 하였다. 그의 대표 저작 『함사(Khamsa, 다섯 가지 보물)』는 중앙아시아 고전 문학의 정수로 평가받으며, 인류 보편의 사랑과 정의를 노래하였다. 2026년 현재 우즈베키스탄 전역의 화폐·거리명·대학명에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미르지요예프 정부는 나보이를 국가 정체성의 핵심 상징으로 적극 활용하며, 매년 2월 9일을 '나보이 탄생일'로 기념한다. 2026년 2월에는 탄생 585주년을 맞아 우즈베키스탄 전역과 한국·일본·터키·러시아·벨라루스 등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동시 기념 행사가 열렸다. UNESCO는 2021년 나보이 580주년을 세계 기념일로 지정한 바 있다.


1. 들어가며: 500년을 넘어 살아있는 이름

2026년 2월 9일, 타슈켄트 나보이 국립공원 광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국립 오페라 발레 극장 앞에 세워진 시인의 동상 앞에는 꽃다발이 쌓이기 시작하였고, 대학생부터 노인까지 각계각층이 자리를 메웠다. 같은 날 오전, 타슈켄트 동방학 국립대학교(TSUOS)에서는 '알리셔 나보이와 동방의 르네상스'를 주제로 한 제5회 국제 학술 심포지엄이 개막하였다. 우즈베키스탄·터키·아제르바이잔·파키스탄 등에서 모인 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 학술대회는, 나보이 탄생 585주년을 기리는 수백 개의 행사 중 하나에 불과하였다.


멀리 일본 도쿄 소카 대학교 캠퍼스에서도, 벨라루스 민스크의 문학 살롱에서도,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시베리아 과학기술도서관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나보이를 기리는 행사가 열렸다. 15세기의 시인이 21세기의 세계에서 이처럼 동시적으로, 다층적으로 기억되는 현상은 단순한 문화적 향수를 넘어선다. 나보이는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이라는 국가가 스스로를 정의하는 방식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


이 글은 알리셔 나보이가 어떻게 한 시인의 이름에서 한 민족의 정체성으로 변환되었는지, 그 역사적 과정과 현재적 의미를 분석한다. 또한 2026년의 현실 속에서 이 '신성화된 시인'이 우즈베키스탄 사회·정치에 어떤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향후 전망을 제시한다.


2. 나보이는 누구인가: 시인, 사상가, 그리고 정치인

2-1. 생애와 배경

알리셔 나보이(Alisher Navoi, 1441~1501)의 본명은 니잠 앗딘 알리 쉬르(Nizam al-Din Ali-Sher)이며,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영토인 헤라트(Herat)에서 태어났다. 헤라트는 티무르 제국(Timurid Empire)의 수도이자 당시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학문·예술의 중심지였다. 그의 가문은 투르크계 궁정 서기 집안으로, 어린 시절부터 페르시아어와 차가타이 튀르크어를 함께 익혔다.


나보이는 유년기부터 문학적 재능이 탁월하였다. 당시 저명한 시인 루트피(Lutfi)는 나보이의 가잘 한 편이 자신의 수천 편보다 낫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할 만큼 그 재능은 이른 나이에 세상에 알려졌다. 마샤드와 사마르칸트에서 수학한 뒤, 술탄 후사인 바이카라(Sultan Husayn Bayqara)의 치세 아래 재상(vazir)으로 임명되어 헤라트의 정치·문화 전반을 관장하였다.


나보이는 시인이기 이전에 행정가이자 건축 후원자였다. 그가 지원한 교육기관·병원·모스크·캐러밴사라이는 기록에만 70개 이상이다. 그러나 후세의 역사에서 그는 무엇보다 '차가타이 튀르크어로 시를 쓴 최초의 위대한 문인'으로 기억된다. 1501년 1월 3일 헤라트에서 생을 마감할 때, 군주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2-2. 언어 혁명: 차가타이어의 격상

나보이 이전 중앙아시아의 궁정 문학은 페르시아어가 지배하였다. 학식 있는 자라면 페르시아어로 시를 써야 하였고, 차가타이 튀르크어는 '시를 쓰기에는 너무 거친 언어'로 여겨졌다. 나보이는 이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나는 페르시아어와 차가타이어 두 언어를 모두 마스터하였다. 투르크어는 페르시아어보다 어휘가 풍부하고 더 섬세하게 인간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 나보이, 『무하카마트 알 루가타인(Muhakamat al-Lughatayn, 두 언어의 판결)』, 1499


그의 걸작 『함사(Khamsa, 다섯 가지 보물)』는 페르시아 시인 니자미 간자비의 형식을 차가타이어로 재현한 서사시 모음집으로, 5편의 장편 서사시를 포함한다. 「파르하드와 쉬린」「레일리와 마즈눈」「일곱 혹성」「스칸다르의 성벽」「의인들의 혼란」이 그것이다. 나보이가 생산한 시 구절은 약 50,000행(bayt)에 달하며, 시론 저작 『미잔 알 아우잔(Mizan al-Awzan)』, 동시대 시인 450명 이상의 전기를 담은 『마잘리스 알 나파이스(Majalis al-Nafais)』 등 30여 편의 저작이 현존한다.


이 언어적 전환은 단순한 문학 실험이 아니었다. 차가타이어는 나보이의 작품을 통해 '고급 문화의 매체'로 공인되었고, 이것이 현대 우즈베크어의 직접적 뿌리가 되었다.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나보이를 '우즈베크어의 아버지'로 칭하는 근거이다.


3. 나보이 신화의 형성: 소비에트 시대부터 독립 이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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