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화 나라가 실리콘밸리를 꿈꾼다고요?
잠깐, 진지하게 물어보겠다. "우즈베키스탄"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사마르칸트의 실크로드, 면화밭, 아니면 영어로 스펠링 외우기 어려운 나라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타슈켄트에서는 한국·미국·일본 IT 기업들이 세금 한 푼 안 내도 되는 파크에 줄을 서고 있고, 이 나라 스타트업 하나가 유니콘이 돼서 글로벌 투자자들 입이 쩍 벌어지게 만들었다.
2020년엔 스타트업 투자 규모가 고작 30만 달러였다. 그게 2024년엔 6,950만 달러가 됐다. 4년 만에 230배다. 이 속도면 '가능성 있는 시장'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늦은 말이다.
# IT파크: 3,000개 기업이 모여든 이유가 있다
우즈베키스탄 디지털 혁명의 진짜 진원지는 IT파크 우즈베키스탄(IT Park Uzbekistan)이다. 2019년 7월, 정부가 설립한 이 국가 혁신 허브에 지금은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몰려들고 있다.
숫자부터 보자. 2025년 1월부터 5월까지 단 5개월 동안 636개 기업이 신규 입주했고, 5월 기준 총 입주사 수는 2,846개에 달했다. 그것도 수도 타슈켄트에만 집중된 게 아니다. 타슈켄트 등록이 369개, 지방 등록이 267개로 전국적으로 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2025년 가을(9~11월) 석 달 동안에만 470개 기업이 회원 자격을 취득했는데, 그중 267개가 수출 지향 기업이었다. 특히 158개 외국 기업은 미국, 캐나다,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 한국, 싱가포르 등에서 왔으며, 이들은 2026년 말까지 7,000만 달러 이상의 수출 서비스를 창출하고 6,500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들이 몰려오는 건 이유가 있다. IT파크 입주 기업은 2040년까지 법인세, 개인소득세, 부가가치세, 관세를 모두 면제받는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세금 걱정 없이 사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사실상 꿈의 환경이다.
고용 효과도 폭발적이다. 2024년 말 기준 IT파크 고용 인원은 3만 8,600명으로, 2023년 말 대비 146% 증가했고 지방 고용은 무려 240% 급증해 9,000개 이상의 새 일자리가 생겨났다.
한국도 이 생태계에 깊이 발을 담그고 있다. KOICA는 경북테크노파크 컨소시엄을 통해 '우즈베키스탄 IT파크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기반조성·역량강화사업(2021~2025년)'을 수행하며 한국형 테크노파크 모델을 전수해왔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2026년 4월, KOICA는 총 1,400만 달러 규모의 IT 교육 생태계 발전 프로젝트를 새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인공지능,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IoT, 온라인 마케팅 등 최신 분야를 아우르는 이 사업은 IT 전문가 및 교원 500명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으며, 인프라 구축은 2026년부터 2032년까지 이어진다.
# 유니콘의 탄생, 그리고 폭발하는 스타트업 생태계
우즈베키스탄 IT 생태계의 성숙도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Uzum**이다. 온라인 쇼핑·핀테크·음식 배달을 통합한 이 플랫폼은 1억 1,4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며 우즈베키스탄 최초의 유니콘 기업으로 등장했다. 2022년 10월 출시 이후 800만 명 이상의 월간 활성 사용자를 확보했고, 9,000개 이상의 판매자가 60만 개 이상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Uzum은 단순한 이커머스 기업이 아니다. 투자 유치 자금의 3분의 2를 핀테크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혔으며, BNPL(선구매 후결제) 서비스 확대와 중소기업 대상 무담보 대출 상품 출시를 예고했다. 쇼핑 플랫폼이 금융 인프라로 진화하는 전형적인 슈퍼앱 전략이다.
우즈베키스탄 스타트업 생태계의 성장 속도는 놀랍다. 초기 단계 투자 규모가 2020년 30만 달러에서 2024년 6,950만 달러로 230배 이상 폭증했다. 이 나라가 '중앙아시아의 실리콘밸리'라는 별명을 얻는 건 과장이 아니다.
# 핀테크: 현금이 사라지는 속도
우즈베키스탄의 핀테크 성장은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일상을 바꾸고 있다. 현재 가장 활발하게 쓰이는 디지털 결제 플랫폼은 Payme, Click, Uzum 뱅크다.
전체 인구의 59%가 30세 미만인 이 초젊은 나라에서, 디지털 금융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자연적으로 폭발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탈현금 정책이 기름을 부었다. 현금 거래를 줄이려는 정부 정책에 따라 근로자 다수가 급여의 상당 부분을 직불카드로 지급받도록 돼 있어 카드 발급이 빠르게 늘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Click, Payme, Uzcard 등 자국 전자결제 플랫폼을 일상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모바일 전용 은행도 등장했다. TBC 뱅크 그룹의 우즈베키스탄 법인은 TBC 뱅크 우즈베키스탄, Payme, Payme 나시야(할부 신용)를 아우르는 생태계를 운영하며, 24시간 결제 서비스와 공과금·정부 서비스 원클릭 결제, 즉시 이체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2025년에는 카자흐스탄의 핼리크 은행이 Click 지분 49%를 인수하는 굵직한 핀테크 딜도 성사되며 외국 자본의 관심이 핀테크 분야로도 확장되고 있다는 게 확인됐다.
# 전자정부와 스마트시티: 국가가 직접 디지털로 뛰어들다
핀테크만 달리는 게 아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 자체가 디지털 전환의 가장 큰 드라이버다.
우즈베키스탄의 ICT 산업은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2020년 10월 승인한 '디지털 우즈베키스탄 2030' 전략에 의해 국가적 지원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정부는 전자정부 시스템 구축과 산업·교육·인프라 디지털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이 과정의 핵심 파트너였다. 한-우즈벡 전자정부협력센터는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설립됐으며, 전자정부 컨설팅, 시스템 구축 등 공동협력사업과 인적역량 강화 교육, 전자정부 관련 기업의 해외진출 지원 등의 역할을 수행했다.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도 눈에 띈다. 우즈베키스탄은 타슈켄트 신도시 개발을 위한 스마트시티를 약 300만㎡ 규모로 조성하고 있으며, 프로젝트 예산은 약 15억 달러(약 2조 원)에 달한다. 이는 대통령령에 따라 지정된 개발 사업으로 강한 추진 동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디지털 트윈 기업 이에이트는 IT파크와 협력해 이 사업에서 건물 에너지 관리 시스템 구축을 맡고 있다.
2025년 ICT 위크 우즈베키스탄에는 전 세계 20개 이상의 공식 대표단, 300개 이상의 기업, 2만 명의 참가자가 모였다. 이 행사는 AI, 핀테크, 전자정부 분야에서 세계와 경쟁할 준비가 됐다는 우즈베키스탄의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준 자리였다.
# 2026년 과제: 달리다 보면 넘어지는 돌도 있다
여기까지 읽으면 "그럼 당장 진출해야 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맞다. 그런데 속도가 빠를수록 보이지 않는 돌부리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첫 번째 돌부리: 디지털 주권이냐, 글로벌 연결이냐
가장 날카로운 딜레마다. 빠르게 디지털화하면 할수록, 인프라를 누가 통제하느냐는 질문이 무거워진다. 경제와 정부를 빠르게 디지털화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국가 안보를 보호하고 시민 데이터를 보호하며 기술 개발이 외세의 정치적 의제에 좌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디지털 주권은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됐다.
디지털 기술부 장관은 "현재의 목표는 데이터 보호, 사이버보안, 디지털 주권의 원칙과 불가분하게 연결된 디지털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외국 기업 진출에도 양날의 칼이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외국 기업의 기술과 자본은 원하지만, 데이터와 인프라의 주도권은 놓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진출 기업 입장에선 현지 데이터 처리 방식과 서버 위치에 대한 규정을 꼼꼼하게 챙겨야 하는 이유다.
두 번째 돌부리: 사이버보안이라는 숙제
디지털이 빠르게 확산될수록 공격 표면도 넓어진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글로벌 사이버보안 아웃룩 2026' 보고서는 2026년을 '사이버 위험이 가속화되는 해'로 규정하며, AI의 급속한 확산, 지정학적 분열, 공급망 복잡성이 동시에 심화돼 전통적인 보안 모델이 구조적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비단 선진국 얘기가 아니다. 급속도로 디지털화하는 우즈베키스탄 역시 같은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핀테크와 전자정부 시스템이 빠르게 확장될수록 사이버 공격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커진다. 여기서 한국의 사이버보안 기술과 경험이 실질적인 진출 기회가 된다.
세 번째 돌부리: 인재는 충분한가?
우즈베키스탄은 2,100만 명의 생산가능인구와 평균 연령 29세의 젊은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년 12만 5,000명의 대학 졸업생을 배출하는데 그중 6만 명 이상이 ICT·비즈니스 서비스 전공자다. 숫자만 보면 인력 걱정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AI, 빅데이터, 사이버보안 분야의 고급 인력은 여전히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IT파크 입주 기업들이 가장 자주 토로하는 불만이 바로 고급 인력 부족이다. KOICA의 1,400만 달러 IT 교육 투자가 이 공백을 채우는 데 기여하겠지만, 산업 성장 속도를 따라잡기까진 시간이 더 필요하다.
네 번째 돌부리: 타슈켄트 집중 현상
2025년 상반기 신규 입주 기업 중 타슈켄트 등록이 369개, 지방이 267개로, 수도 집중 현상이 여전히 뚜렷하다. IT파크가 전국 각지에 거점을 확장하고 있지만, 실제 고급 인프라와 네트워킹 기회는 타슈켄트에 집중돼 있다. 우즈베키스탄 전체를 시장으로 보는 기업이라면 지방 진출의 어려움도 함께 감안해야 한다.
# 전망: 2026년 이후, 이 나라는 어디로 가는가
이 모든 과제에도 불구하고, 방향성은 명확하다.
우즈베키스탄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2024년 119억 달러로 2017년 대비 세 배 수준으로 늘었고, 경제 규모 자체도 같은 기간 46% 성장했다. 이미 달리고 있는 기차를 멈추기는 어렵다.
IT파크 수출 기업들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는 2025년에만 11개국이 추가돼 현재 전 세계 90개국 이상으로 확장됐다. 우즈베키스탄이 단순한 내수 시장이 아니라 중앙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IT 아웃소싱 허브로 도약하고 있다는 신호다.
IT파크는 2026년 이후 인공지능, 국제 기업 유치, 스타트업 생태계 육성, 지역 거점 개발, 글로벌 통합을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 결론: 지금 탑승하지 않으면 다음 열차는 더 비싸다
우즈베키스탄의 IT·핀테크·디지털 시장은 이미 '잠재력' 단계를 졌다. 유니콘이 나왔고, 2,800개 이상의 기업이 IT파크에 집결했으며, 정부는 수조 원을 쏟아붓고 있다. 230배 성장한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가 그 증거다.
한국 기업에게 우즈베키스탄은 단순한 신흥 시장 이상이다. 전자정부, 스마트시티, 핀테크, 사이버보안 등 한국이 실전에서 쌓아온 노하우가 이 나라가 가장 목말라하는 영역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정부 간 협력 네트워크도 탄탄하게 깔려 있다.
물론 진출 전략은 섬세해야 한다. 디지털 주권에 민감한 정부와의 신뢰 구축, IT파크를 통한 생태계 네트워크 활용, 현지 인력과의 실질적 협업 모델 설계가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다. 면화 나라가 디지털 실크로드의 허브가 되는 이 전환점에서, 먼저 탑승한 기업이 더 큰 몫을 가져간다는 건 역사가 이미 증명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