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15,000원입니다.”
“왜 임마 자는 데 깨워?”
“방금 도착했습니다. 요금 주시면 됩니다.”
“뭐? 돈을 줘? 네가 한 게 뭔데 이 XX야?”
“그럼 상황실에 전화.....”
말을 하는 순간 ‘퍽’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에는 피가 흘렀다. 순간 정신이 아찔해서 머리 쪽을 쓰다듬었다. 땀에 젖은 줄 알았는데 ‘뻘건’ 케첩 같은 피가 줄줄 흘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단 돈 15,000원을 벌려고 하다가 인생 골로 가는 것은 아닌지.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이게 진정 피땀 흘려 번 돈인가?’
피에 흥건한 손으로 119 버튼을 눌렀다. 피도 액체인지라 스마트폰 화면이 인식이 안되었다. 방수폰이라고 해서 10만 원 더 주고 산 건데, 피 흘린 손으로 스마트폰을 누를 거라는 생각을 S회사에서는 못 했나 보다.
다음에는 제대로 S회사 고객센터에 가서 따져야겠다. 피도 액체인데 왜 방수가 안되냐고. 긴급전화 버튼을 어렵게 누르려는 순간 ‘그 녀석’이 분이 안 풀렸는지 사람 얼굴만 한 돌을 집어 들고 쫓아오는 것이었다.
다급하게 상황실에 전화를 했다.
“손님이 요금도 안 주시고, 돌을 들고 따라와요?”
“네에? 왜 돌을 들고 따라와요?”
“하아, 그게 아니고 손님한테 돌로 맞아서 지금 피가 난다고요.”
“피요? 그럼 빨리 병원에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아 됐습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콜 오더 종료 처리해주세요.”
이어서 119에 전화를 했다.
“돌에 맞아서 머리에 피가 나는데, 빨리 좀 와주세요.”
“네? 누가 피가 나요?”
“아 참, 제가 지금 머리에서 피가 난다니까요!”
“위치가 어디세요?”
“OO 장례식장 앞입니다.”
“네? 지금 장난 전화하시는 거 아니에요?”
“피. 가. 난. 다. 구. 욧!!! ”
119 직원의 말투에 또 한 번 화가 났다. 마치 새벽에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 왜 귀찮게 하느냐는 말투였다. 상대방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머리에서 피가 줄줄 새서 병원 가서 치료받겠다는 데, 정작 중요한 얘기는 빼고 자꾸 곁가지로 새는 것 같아 마음이 점점 답답해졌다
거의 고함에 가까운 목소리 톤으로 통화하니까 구급차를 겨우 보내주는 현실이 참 싫었다. 그렇다면 정말 위급한 순간에 119를 불러도 지금 같은 태도로 나올까.
119에서 응급구조사로 일하는 동창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친구야, 119도 당직 인원이 없으면 출동을 못해.”
“무슨 소리야? 그러면 근무 인원이 충분할 때 아파야 하는 거야?”
“노 코멘트할게. 그러니까 어쨌든 22시 이후에 아프면 안 된다, 알았지?”
“뭐어? 아픈 것도 미리 예약해야 되나?”
“암튼 현실이 그래.”
119에 접수하자마자 바로 112에 전화했다. 위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돌로 맞은 게 확실하냐는 둥, 왜 그런 일이 생긴 것 같냐는 둥, 위치가 어디인지 파악이 안 된다고 2~3번 전화를 해서 확인했다. 한 마디로 대리기사 보다 위치를 못 찾는 게 말이나 되는가.
이것이 대한민국의 안전 시스템의 현실인 것을 실감했다. 위급한 사람을 위해 만든 시스템인데, 정작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직원들의 업무 처리 태도가 굉장히 수동적이었다. 그래서 언론에 터뜨리나 보다. 그래야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우여곡절 끝에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바로 치료가 될 줄 알았는데,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라고 한 직원이 말했다. 지금 환자가 많아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한 마디 툭 던졌다.
“환자분, 머리에 피는 좀 나시는 데 의식은 있어 보이네요.”
“그래도 좀 어지러워서 빨리 조치해주세요.”
“일단 접수를 안 하셨네요?”
“네에? 방금 119 구급차 타고 온 거 못 보셨어요?”
“그건 모르겠고 여기에다가 인적사항 기입하셔야 접수됩니다.”
“네에? 지금 피나는 거 안 보여요?”
“대충 닦아 드릴 테니까, 일단 적어주세요.”
한 마디로 ‘가관’이었다. 112, 119 전화하느라 치이고, 결국 병원에서까지 찬밥 신세였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후배한테 도움을 요청했다.
“난데, 지금 머리 다쳐서 그러는데, 응급실로 와서 좀
접수만 해주면 안 될까?”
“형, 지금 시간이 몇 시야. 와이프도 밤늦게 나가는 거 싫어해요.”
“야, 급하니까 그러는 거 아냐? 30분만 시간 내서 접수만 해줘.”
“일단 알았어요.”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 후배는 나타나지 않았다. 심지어 그날 이후 그 후배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나는 물티슈로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인적사항을 적어서 창구에 직접 접수했다. 조금 어지럽다고 했더니, 휠체어 한 개를 생색내듯이 내주었다.
“환자분, 원래는 이런 거 잘 안 해주는데 특별히 해드리는 겁니다.”
‘그래. 나 정도 되니까 특별 대우해주는 거다’라고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었다. 모두 친절한 사람들인데, 바빠서 그럴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가슴속으로 불이 붙어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잠시 후 흰 가운을 입은 의사분이 들어왔다.
“아까, 머리에 피 나신 분 어디 있어요?”
‘머리에 피 나신 분? 그래도 ’분‘이라고 존대해주니까 얼마나 감사한가. 저 의사분은 오늘 만난 사람 중에 제일 친절하고 멀쩡했으면 좋겠다.
“왜 다치셨어요?”
“손님 모시고 가다가 돌에 맞았습니다.”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꼬매야 될 것 같네요.”
“아, 네에.”
“자,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세요.”
“선생님, 좀 아픕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참으세요.”
“......”
아프다고 말하면 무슨 적절한 조치가 있을 줄 알았는데, 되돌아오는 답은 그냥 참으란다. 속으로 ‘헐~이거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따라 제대로 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 다 이상해 보이지? 내가 이상한 건가?’
따끔거리는 ‘작은 수술’을 마치고 원무과에 갔다.
“치료비랑 해서 꽤 금액이 큰 데, 어떻게 결제하실 건가요?”
“일부는 지금 계산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그렇게 그는 생전 처음, 새벽녘 응급실에서 외상으로 치료를 받았다. 약 5년 동안 대리운전 업계에서 인정받는 ‘우수 사원’이었다. 매월 휴무 없이 풀로 출근하면 주는 ‘만근 수당’도 빠짐없이 받았다. 대기업 연봉에 가까운 매출을 올린 적도 있었다.
그런데, 피땀 흘려 열심히 일한 대가가 과연 이것인가. 아니면, 조금 쉬었다 가라는 하늘의 명령일지도 모른다. 돌에 맞은 왼쪽 뒷머리, 아직도 상처 자국이 남아있다.
손님에게 돌로 맞은 대리기사, 가장 슬픈 건 무엇보다도 당분간은 콜 업무를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실에서는 돌로 내리친 손님도 고객이니 놓칠 수 없다는 식의 말을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