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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Oct 18. 2020

반지하 일기

우리 결혼했어요

결혼하고 나서의 첫 신혼집은 내가 직장 생활하며 살고 있던 반지하 자취방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둘 다 부모님 손 빌리지 않고 스스로 개척해 나가자 했던 의지에서 시작된 단출한 살림이었다. 당시 가지고 있던 가전제품들도 다 그대로 사용하게 되면서 남편은 그야말로 몸 그대로 들어와 살게 된 것이다. 새로운 집이 아닌 내가 살고 있던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게 되는 걸 알게 된 신랑의 부모님은 내게 고마워했고, 우리 집 부모님은 조금은 속상하면서도 아쉬워했다.(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 이런 관습이 오래도록 지속되었기 때문에..)


결혼식 하고 나서 신랑과 함께 집을 셀프로 꾸미기 시작했다. 반지하였지만 방 2, 화장실 1, 주방 1 나름 괜찮은 구성이어서 큰 방은 한쪽 면을 핑크색 페인트로 포인트 벽을 만들어 주었고, 작은 방은 드레스룸 겸 게스트룸으로 쓸 용도로 민트색 페인트로 포인트 벽을 색칠했다. 싱크대 맞은편으로 빈 벽에는 나무 선반 몇 개를 달아두었고, 각 방문도 칙칙한 나무색이었지만 흰 페인트로 깨끗하게 칠해주었다. 입구 앞 현관에는 시멘트 바닥이었는데 이것도 신랑의 지인이 사용하다 남은 타일을 얻어다가 타일공사를 직접 해서 현관도 멋지게 변신시켜놓았다. 현관 옆 공간에는 신랑이 사용하는 공구들을 담아놓는 창고로 사용하게 되어 지저분하게 보이지 않게 작은 커튼을 달아 보이지 않게 장식했다. 어둑어둑한 느낌의 반지하 자취방이 이제는 제법 사랑스럽고 편안한 느낌으로 누가 보아도 신혼부부가 사는 집으로 변신했다. 이 모든 게 작은 평수여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큰 평수였다면 셀프 인테리어는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알콩달콩 좋은 추억만 쌓고 살자 했던 우리의 약속은 결혼을 한 지 2주 만에 크나큰 시련을 맞이하게 되었다. 신랑이 참여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참여한 인원 모두 회사에서 퇴사 통보를 받게 되었다.(당시 게임회사에 근무하고 있었고, 회사 특성상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한다고 했다.) 신랑은 나에게 엄청 미안해하며 곧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겠다 약속해 주는 모습이 안쓰럽고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백수였던 나에게 신랑과 하루 종일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에 더 기뻤었다.(참 철없던 신혼 때의 나.. 아이가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생긴 일이라면 엄청 걱정하고 불안해했을 것이다..) 실망하거나 걱정하지 않는 내 모습에 오히려 고마워했던 신랑이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가장의 무게에 항상 고민되고 생계에 대한 부담이 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양가 부모님에게는 걱정하실 거 같으니 지금 상황을 비밀로 하기로 하고,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퇴사였기에 실업급여 신청으로 일단 급한 생계는 유지하기로 했다. 그리고 신랑은 다시 일자리를 구하는 시간 동안 임시로라도 일용직으로 나가서 일하겠다고 했다. 다행히 시아버지 지인 분 가게에 들어가서 저녁 시간에 일하는 걸로 임시로 하게 되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일하러 나가는 저녁 되기 전까진 함께 집에서 밥도 먹고, 청소도 같이 하고, 동네를 살펴볼 겸 한 바퀴 둘러보는 산책도 하고, 보고 싶었던 영화가 개봉하면 근처 영화관 가서 영화도 보며, 가고 싶었던 동물원도 사람들이 많이 없는 평일에 언제든 갈 수 있었다. 신혼 때 이런 추억을 쌓기란 쉽지 않은데 우연한 기회로 특별한 추억을 쌓는 거 같아 참 행복했고, 즐거웠다. 이런 즐거움도 잠시 신랑은 곧 일자리를 구하게 되어 정식 출근하는 날이 다가왔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반지하라고는 하지만 땅과 불과 몇 센티 정도 차이밖에 나지 않아서 거의 지상과 같은 느낌인 이 곳에서의 생활은 다른 불편함은 없었으나 여름이나 겨울엔 땅의 영향으로 엄청 더워지거나 엄청 춥기도 추웠다. 오래된 집이라 그런지 샷시도 이중창이 아니어서 외풍도 심했고 보일러를 가동해도 크게 나아지지 않아서 고생은 좀 했다. 여름에 윗집에서 누수가 되어 큰 방 천장과 포인트 벽지가 축축하게 젖었는데도 주인집이 미적거리는 바람에 몇 번이나 가서 누수공사와 벽지 교체해야 한다는 말을 해야 했고, 폭염이던 어느 여름엔 에어컨 설치를 하겠다고 말하니 건물에 구멍을 뚫는 건 안된다고 반대해서 선풍기와 아이스팩으로 더위를 가시게 해야 했다. 지금은 반지하가 아닌 지상으로 집을 옮기며 더위도 문제없고 추위도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지만, 신혼 때의 그 집을 생각하면 주인을 생각했을 땐 부정적이기도 하지만 그 집 안에서 같이 만들었던 일상들은 다른 이들에게서 들을 수 없는 소소한 특별함이 있기에 기억에 많이 남는다. 바쁜 일상에 지칠 쯤이면 가끔 둘 다 백수였던 신혼 때의 그 시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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