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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Oct 11. 2020

달콤 살벌한 재미

해방되거나 구속되거나

여름이 시작될 기미가 보이던 6월의 어느 날, 홍대의 몽마르트르 언덕 위 은하수 다방(지금은 이전하여 그 위치가 아닌 합정 근처로 새로 생겼지만.. 옛날엔 홍대 주차장거리 근처에 자리했던 카페..)이라는 곳에서 한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는 온 거리마다 10cm라는 가수의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라는 곡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여서 그랬던지 만남의 장소를 굳이 여기로 꼽았던 날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도착을 알리던 남자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도착을 했고, 내가 앉아 있던 자리로 온 후 그제야 첫인사를 건넸다. 각자 마실거리를 주문하고 서로를 찬찬히 보며 대화하는 시간을 나누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던 남자의 이마와 여자 못지않은 긴 속눈썹을 가진 눈, 덧니가 살짝 나온 미소에 약간의 호감을 느꼈고, 그의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나 그가 가장 좋아하는 관심 분야에 대해 말하는 걸 열심히 들어주며 대화 분위기도 어색하지 않게끔 많이 웃기도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남자의 다음 약속 시간이 다가오는 바람에 서둘러 헤어질 준비를 했다. 홍대는 처음이라 길을 잘 몰랐던 남자는 조금 쑥스러웠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자신의 차량이 어디에 주차되었는지 모른다는 사실과 길을 좀 찾아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홍대가 직장 근처였던 나는 그가 설명하는 위치를 듣고는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며 굿바이 인사를 건넸다. 남자도 꾸벅- 인사를 한 후 본인 스케줄대로 차를 타고 가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남자의 연락을 기다렸던 나는 무심한 듯 전화기를 보며 단순하게 그냥 만남운이 좋지 않아서 남자가 나를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집에 도착한 후, 하루의 일과를 다 마무리하고 잘 준비를 하는 도중에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집에는 잘 들어갔냐며 다시 한번 볼 수 있냐고 묻던 남자의 긴장된 목소리에 긍정적인 마음으로 응답했던 나는 달력을 보며 회사 업무 일정이 제일 적은 때로 골라 날짜를 맞추어 보았다. 그렇게 다음 약속을 정하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쑥쓰럼이 많았던 남자는 내게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찰나에 같이 있었던 형들의 권유로 용기 내어 연락했었다고 한다..)


첫 만남 이후로 두 번째 만남을 갖기까지는 여러 우여곡절이 많았다. 예상치 못한 프로젝트로 투입된 나는 약속했던 날의 만남을 취소해야 했고, 그 뒤로도 2~3번의 일정을 약속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남자는 그런 내 행동에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렇게 취소하는 건가 싶어 나와의 만남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다고 했다. 애석하게 시간만 흘러가던 중 밤샘 업무를 마치고 새벽까지 대기하고 있는데 팀장님이 당일 퇴근 후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특명(특별휴가!)을 내려준 덕분에 남자에게 급히 연락을 해서 다시 만남의 약속을 정했다. 남자의 동네 근처에 있는 영화관에서 보기로 약속하고, 약속시간보다는 조금 일찍 나가서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남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반갑게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남자가 미리 예매해 두었던 영화를 보기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고, 둘 다 배고픈 상태여서 같이 밥을 먹으러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 맞춰주며 남자는 매운 음식을 주문해 주었고, 그의 이마엔 땀이 뚝뚝 떨어지고, 입 안이 화끈거리는 모습이 보이는데도 맛있게 그릇을 다 비우는 기염을 토했다. 영화 시간이 가까워지자 식당을 나와 영화관으로 곧장 달려갔다. 좀비물의 영화였지만 무섭지 않은 편이어서 잘 보았던 기억이 난다. 영화가 끝난 후 늦은 시간이 된 바람에 남자는 우리 집까지 데려다준다고 했다. 감사한 마음에 커피 한 잔을 건넸고, 같이 차를 타고 가면서 적막하지 않게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시간들을 나열하며 대화를 이어가기도 했다. 집에 도착해 갈 때쯤 남자는 갑자기 자신을 남자 친구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다.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라는 엉뚱한 대답을 내놓자 남자는 웃음이 터지면서 한 손을 내밀었다. 그의 많은 생각과 용기를 더해서 뻗어낸 그 손을 나도 잡아줌으로써 그날부터 1일이 된 신생 커플이 되었다. 


알콩달콩 연애를 겪으면서 어찌 좋은 날만 있을 수 있으랴. 머리 쥐어터져라 서로에게 거친 말을 쏟아가며 싸워본 적도 있고, 다시는 보지 말자하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리며 거의 이별 직전까지 간 적도 있으며, 우리 두 사람을 제외한 또 다른 외적인 사안(예를 들면 친구들, 가족들..)으로 인해 충돌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2년간 사랑의 시간을 쌓고, 서로 더 튼튼하게 엮이는 결혼을 해서 지금은 5년간 믿음의 시간을 같이 쌓아가고 있는 부부가 되었다. 총 7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여전히 싸우고, 토라지며, 화해하고, 사랑하고 있지만 연애 때보다는 조금 더 성숙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단순히 콩닥콩닥 설레는 마음보다는 편안함과 인내, 이해, 배려, 믿음 등이 더해져서 같이 성장해 나가는 관계가 되었다. 가끔은 연애 때의 설렘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지금의 편안함도 나쁘지 않다. 어릴 때 결혼을 하지 않겠다 다짐했던 결심을 무너뜨릴(?) 정도의 재미가 있다는 교훈도 함께 얻으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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