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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Jan 28. 2023

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37. 나는야 베스트 드라이버

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37. 나는야 베스트 드라이버.


면허를 따야겠다고 생각 한 건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와서, 고향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결혼을 약속한 친구와의 관계가 지저분하게 끝이 나고, 무기력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던 시점이다. 새로운 연애가 막 시작했을 때였고, 고향인 거제는 차가 없으면 어디든 다니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매일같이 실감하던 차였다. 캐나다든 호주든 한국을 벗어나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고, 호주 워킹홀리데이 때 면허가 없어 곤욕을 치렀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제라도 면허를 따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부산으로 기능 시험과 필기시험을 치러 한 번 다녀오고, 동네 운전면허 학원에서 운전 연수를 받으며 성희롱에 시달리기를 수 차례. 2016년 4월 4일, 드디어 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면허를 딴다고 해서 곧바로 운전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나에게는 차가 없었고, 아빠가 타던 오래된 SM5에 눈독을 들였지만 내가 몰기에 너무 큰 차라는 이유로 기회를 주지 않았다. 면허가 있어도 1년 동안은 차를 렌트할 수도 없어서 그대로 1년을 묵혀둘 수밖에 없었다.


아빠가 운전 연수를 시켜준 덕분에 거가대교 전망대를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그렇게 묵혔던 면허를 처음으로 제대로 사용한 건 2017년 2월, 일본 여행을 갔을 때였다. 국제면허증을 발급받아서 일본 오키나와 여행을 가게 됐는데, 오키나와는 지역 특성상 차가 없으면 다니기가 불편하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차 렌트를 했다. 겨우 3박 4일이었지만 주변에서는 근심과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 운전 경력이 1년도 채 안 된 상태로, 차선도 반대 방향인 일본에서 차를 렌트한다? 호들갑을 보태서 자살행위처럼 보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차선이 반대인 게 아무런 문제가 안 되었다. 면허를 따고서도 운전을 안 하고 다녔기 때문인지 한국 도로에도 익숙한 상태가 아니었어서, 전혀 헷갈리지 않았다. 그리고 관광지라고는 해도 여행 비수기였는지 전반적으로 도로에 차량이 많지 않아서 운전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오키나와에서 운전석이 반대인데도 멋있게 운전하는 나.

다른 사람의 여행 후기에서 "렌터카들은 험하게 운전하고 현지 차량은 살살 운전하더라고요." 라느니 "다들 시속 80km 이하로 천천히 달려서 안전합니다." 등의 말을 많이 읽어서인지, 운전하는 데도 걱정이 전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이 후기와 현실이 너무 달랐다는 것뿐이었다. 렌터카든 현지인의 차량이든, 고속도로에서는 다들 험하게 운전하던데요? 다들 시속 120km 이상으로 달리던데요? 웃으면서 후기들에게 성토하고 싶었던 순간이 여러 번 있었지만, 위험한 일도 생긴 적이 없었고, 무사히 3박 4일의 여행을 마쳤다.


그 뒤로는 자신감이 잔뜩 붙었다. 아빠의 차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팔렸기에 나에게는 기회가 없었지만, 거제를 벗어나 서울로 오니 '쏘카'라던가 '그린카' 같은 공유 자동차가 지천에 널려 있었다. 하지만 장거리 운전을 할 일이 없고,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는 서울에 살다 보니 공유 자동차를 이용할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원래 교통량이 많은 서울에서 운전하는 건 또 다른 용기가 필요했다.

될 사람은 어떻게든 된다고, 밤늦게 다니는 일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공유 자동차를 이용하는 빈도도 늘어났다. 밤새도록 빌려도 한낮에 두 시간 이용하는 것에 비해 훨씬 저렴하기도 했다. 한밤중에 도로를 가로지르는 택시기사들만 조심하면 서울의 밤거리 운전은 오키나와에서의 운전보다 더 쉬웠다.


친구들과 제주 여행을 갔을 때 홀로 3박 4일 운전을 책임졌던 멋진 나.


운전하는 건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아서 몸이 기억을 하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서울에서 쫌쫌따리 운전을 하고 다니면서 운전 자체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캐나다를 왔다.

한국의 운전 면허증으로는 캐나다에서 쉽게 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다. 별도의 시험도 필요 없고 시력 검사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물론 영사관에서 면허증 공증을 받아야 하는 절차가 있지만, 실기 시험을 다시 쳐야 하는 멕시코 운전면허증보다는 훨씬 나았다. 물론 한국에서 면허를 딴 지 1년이 지나야 아무런 제약이 없는 면허로 변경할 수 있고, 1년 미만이라면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의 면허로 나오기 때문에 가급적 캐나다 오기 1년 전에 면허를 따 두는 게 좋다.

원래는 곧바로 바꿀 생각이 없었지만, 캐나다에서의 운전 경력이 캐나다 운전 면허증 최초 발급일부터 카운트된다며, 경력이 길수록 보험료가 저렴해지니 최대한 빨리 발급받는 게 이득이라는 조언에 따라 2020년 2월에 캐나다 온타리오 면허증으로 변경을 해뒀다.


캐나다에서 처음 운전을 할 기회는 학교를 다니던 중에 같은 수업을 듣는 한국인 친구들과 놀러 갔을 때 찾아왔다. 한국에서 쫌쫌따리 운전을 하고 다니긴 했어도, 캐나다에서의 운전 경력이 좀 있는 친구와 한국에서 자가용이 있던 친구에 비할 바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주 운전자가 되는 일은 없었다. 목적지 숙소에 도착해서, 숙소부터 편의점까지의 짧은 거리만을 운전해 봤을 뿐이었는데 한국에서 운전했던 기억이 그대로 몸에서 구현되는 것 같았다.

두 번째는 피앙세와 연애하던 시절에 함께 여행 갔을 때였다. 여행 관광지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일직선으로 뻗은 길이었고 신호도 없고, 규정 속도가 시속 60km 구간인 시골길이었기 때문에 피앙세는 나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조수석에서 코를 골며 잠들기까지 했다. 밤길 운전인 데다가 비바람이 몰아치던 탓에 잔뜩 긴장한 채로 운전을 했는데 결국 숙소까지 운전해 오지는 못하고 중간에 휴게실에서 운전대를 다시 넘겨줬다. 밤눈이 어둡다는 것이 내 핑계였다.


여름날 퇴근길. 이젠 빨간불 앞에서 여유를 부리는 멋진 나.


이제는 핑계를 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출퇴근을 위해 운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와버렸기 때문이다.

첫 직장은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다닐 수 있는 곳에 있었고, 두 번째 직장도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야 하는 거리가 있긴 했어도 대중교통이 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물론 두 번째 직장에 다닐 때도 피앙세가 차를 사용하지 않는 날이면 내가 운전해서 출퇴근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대중교통으로 다닐 수 없는 세 번째 직장으로 이직을 하면서, 나에게 운전은 이제 필수가 되어버렸다. 그 사이 피앙세의 직급은 대부분을 재택으로 커버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나에게 운전은 곧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두 번째 직장도 운전해서 가면 20분 남짓 걸리는 곳에 있었고, 세 번째 직장이자 현재 직장 역시 운전해서 가면 20분가량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다른 점은, 이제는 고속도로를 타고 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운전에 미숙했을 땐 고속도로에 올라가는 것만큼 겁이 나는 것도 없었다. 오키나와에서 첫 운전을 했을 때도, 장소가 장소다 보니 고속도로를 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관광지가 많았는데 어쩐지 '일본인들은 운전을 얌전하게 하니까'하는 착각에 빠져서 겁먹지 않고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었다. 앞에도 언급했듯 그 착각은 곧바로 깨지긴 했지만.

한국에서도 고속도로 운전을 해본 적은 없었다. 기껏 해봐야 서울 시내 운전 내지는 제주도에 놀러 갔을 때 제주도의 시골길 운전이 전부였다. 물론 제주도에도 고속도로가 있긴 했지만 왕복 4-5차선의 넓은 고속도로 운전은 경험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고속도로 운전만큼 쉬운 게 없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규정 속도는 시속 100km지만 규정 속도를 지키며 달리는 차량이 별로 없는 만큼 나도 흐름에 맡겨 달리는 과감함을 장착하게 된 것도 금방이었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속이 뻥 뚫린 듯 시원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짙은 안개가 껴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무사히 출근한 멋진 나.


캐나다에서 본격적으로 운전을 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2년 정도쯤 된 것 같다. 강한 비바람이 불어도 사고 없이 운전을 했고, 짙은 안개도 뚫고 출근을 하기도 했으며, 스노우스톰(눈 폭풍)이 휘몰아쳐도 무사히 집까지 귀가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이제 그 어떤 날씨에도, 그 어떤 돌발 상황에도 잘 대처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잔뜩 붙었다.

지난 화요일, 그러니까 1월 24일, 무려 15센티미터의 폭설이 예보되었을 때도, "난 스노우스톰도 뚫고 운전한 사람인데 뭐!"하는 자신감에 전혀 걱정을 하지 않고 운전해서 출근을 했다. 점심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바깥이 온통 하얗게 변하고, 그것도 모자라 하늘에서 끊임없이 퐁퐁 흰 눈이 쏟아져내리는 것을 보며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회사 주차장, 퇴근해야 하는데 눈 속에 차가 푹 파묻혔다.


스노우스톰이 왔던 때에는 퇴근 즈음에 고속도로 정도는 눈이 다 치워진 상태였다. 계속해서 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도로 위에 닿자마자 빠르게 녹아 사라졌기 때문에 차량 정체도 별로 없었다. 곳곳에 겨울용 타이어를 미처 바꿔 끼지 못한 차량 혹은 실수든지 간에 미끄러진 차량이 도로 한쪽 구석에 서 비스듬히 서 있는 광경을 보고 웃으며 지나갈 수 있을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폭설은 달랐다. 설마 하니 고속도로 정도는 다 치워주지 않을까?라는 작은 희망을 비웃듯이, 퇴근할 시간이 다 되어서까지도 회사 주차장은 물론이고 도로로 나가는 그 어떤 길도 제설이 되어있지 않았다.

점점 더 불안해졌다. 이대로는 고속도로도 눈길일 게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살금살금 가속 페달을 밞으며 올라가야 할 고속도로 초입에서도 다들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갔다. 평소였다면 신나게 차선을 바꿔 1차선이나 2차선에서 씽씽 달렸을 차들도, 3차선과 4차선에 기차놀이하듯 꼭 붙어서 슬금슬금 흘러가고 있었다.

고속도로도 온통 하얗기만 했다. 1차선과 2차선엔 작은 설원이 펼쳐져 있었고, 3, 4차선에서도 차선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앞 차가 지나간 타이어 자국만이 도로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쯤 되면 차선을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것을 다년간 조수석에서 눈길을 봐온 사람으로서도 충분히 판단할 수 있었다. 나도 앞차의 타이어자국을 조심스럽게 따라가며 가속페달보다는 브레이크 쪽에 발을 더 오래 두고 있었다.

평소라면 20분 걸리는 거리를, 1시간이 걸려 무사히 귀가를 마쳤다. 아직 눈이 채 다 치워지지 않은 집 앞 주차장 자리에 거대한 차로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고 올라서며 전에 없던 희열을 느꼈다.


성취감에 쩔어서 집 앞 풍경을 찍으며 스스로에게 감탄했다.


해냈다.

눈이 채 없어지지 않은 고속도로도 무사히 운전해서 돌아왔다. 사고도 안 났고, 안 냈고, 미끄러지지도 않았고, 그렇지만 또 너무 느리게 달리지도 않았는데. 물론 잔뜩 긴장해서 날이 선 채로 운전을 하긴 했지만, 이런 눈길 운전이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테니까.

이렇게 내 운전 경험치가 또 늘어나는구나. 캐나다 생활에서 또 새로운 것을 성취해 내는구나. 이제 곧 서른네 살이 되는데도 이렇게 새로운 것을 배운다.


본문 내용과는 상관없이 우리 차를 점령한 귀여운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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