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방이 두 개인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36. 방이 두 개인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캐나다에서의 주거 형태는 한국에서와 사뭇 다르다. 한국만큼 아파트를 사랑하는 나라도 없다던 그 명성처럼, 토론토에서는 단독 주택 형태의 주거가 일반적이다. 물론 토론토 시내 중심, 근교를 시작으로 점차 '콘도'가 늘어나서 단독 주택보다는 콘도에서 사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을 것이다. 콘도는 한국의 아파트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콘도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시설물이 있다는 게 아마 아파트와는 다른 지점일 것 같다.
간략하게 캐나다의 주거 형태를 짚고 넘어가자면 다음과 같다.
1. 주택
흔히 생각하는 단독 주택은 디태치드 하우스Detached House라고 불리며 당연히 가장 집값이 비싸다. 집이 단층인지 아닌지에 따라서 벙갈로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단독 주택 중에서 한쪽 벽면에 옆집과 붙어있고, 같은 번지수에 A와 B로 구분이 된다면 세미 디태치드 하우스Semi-Detached House다.
타운하우스를 주택이라는 카테고리에 넣기는 좀 애매한 구석이 있긴 한데, 일단 높은 빌딩에 있는 건물이 아니고 대략 3층 높이의 집들이 마당 없이 3채 이상 붙어있는 것을 타운하우스라고 부른다.
아마 좀 더 고상하고 건축학적인 구분법이 있겠지만 부동산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의 눈에서는 이정도로 구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2. 아파트
한국의 아파트같은 구조는 이 동네에서 콘도미니엄, 줄여서 콘도라고 부르는 빌딩형 주거다. 아파트라고 불리는 건 따로 있는데, 아파트와 콘도의 차이는 개인이 소유했냐 회사가 소유했냐에 달렸다고 한다. 빌딩 건물 하나를 통째로 회사/기업이 소유하고 있고 집을 각각 사람들에게 빌려주는 형식으로 거주하게 해주는 곳이 아파트인데, 각 집에 세탁기/건조기가 없는 경우가 많고 공용 세탁기/건조기를 지하실 같은 곳에 마련해 두었다. 콘도는 집 호수 하나하나를 개개인이 구입해서 살 수 있는 곳이다.
구입을 한다고 하면 당연히 단독 주택인 디태치드 하우스가 가장 비싸고, 콘도가 그나마 가장 저렴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최근에 어마무시하게 오른 토론토 집값을 보면 콘도조차도 내가 언제쯤에나 구입이 가능할지 가늠하기 어렵긴 하지만.
집을 당장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다음 선택지는 당연히 '렌트'다. 하우스나 콘도 내에서 방 하나를 렌트하는 '룸렌트'와 하우스든 콘도든 유닛 전체를 렌트하는 '전체 렌트'가 있다. 모르는 사람과 살 부대끼며 사는 것이 싫다면 당연히 전체 렌트를 하고 싶겠지만, 당연히 전체 렌트는 가격이 비싸다. 그래서 대게는 친한 친구끼리 혹은 연인끼리 유닛 하나를 렌트해서 함께 쉐어하며 사는 형태가 된다.
처음 전체 렌트를 알아볼 때는 단어 사용이 달라서였는지 '원베드룸'이라는 개념이 조금 낯설었다.
한국의 일반적인 1인 가구는 원룸, 즉 방 하나에 주방이 붙어있는 구조다. 물론 캐나다에서도 그와 같은 원룸형의 집이 없는 건 아닌데, 여기서는 원룸이 아니라 배출러 혹은 스튜디오라고 불린다. 가격은 한국 서울의 원룸 월세가 귀여워 보일 정도. 물론 보증금의 단위도 조금 색다르지만.
배출러/스튜디오의 다음 단계(?)는 원베드룸이다. 방이 하나가 있고 거실과 주방이 따로 있는 형태의 집.
원룸에 살 때는 잘 몰랐다, 방이 하나 따로 있는 것이 주는 쾌적함을. 생활 공간과 잠자는 공간의 분리가 일깨워주는 진정한 휴식의 의미와 여유의 의미를.
캐나다에서 가장 처음 지냈던 임시 숙소는 원베드룸의 거실이었다. 집주인이 한국에 가 있는 동안 머물기로 한 것이었고 집주인은 개인 물품을 방에 모두 몰아넣고 문을 잠가두었기 때문에 거실과 붙어있는 주방을 생활 공간으로 쓰면서 한국에서 원룸살이 하던 것과 비슷한 향수를 느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면서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은, 1인 가구의 임시 거주지. 나의 '집'이라고 부를 수 없는 불안정한 주거.
그다음으로는 타운하우스의 방 하나를 렌트하는 룸렌트로 옮겨갔다. 1층에 넓은 거실과 주방이 있고, 2층에 방이 세 개가 있는 집이었다. 2층의 화장실 딸린 가장 큰 방을 집주인 부부가 사용했고, 다른 두 방을 나와 다른 세입자가 나눠 썼다. 집주인의 딸이 지하에 창고 옆방을 쓰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방 한 칸도 나에게 안정적인 주거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첫 '전체 렌트'를 하게 되었다. 혼자 할 수는 없었고, 당시에 같은 학교에 다녔던 친구와 함께 원베드룸을 렌트하기로했다. 부지런한 그 친구 덕분에 좋은 원베드룸 콘도를 계약할 수 있었다. 탁 트인 거실과 거실만큼 넓은 방, 그리고 거실만큼 넓은 주방. 둘이 사는 공간이긴 했지만 충분했다.
우리는 방을 함께 썼고 거실과 주방을 함께 썼다. 그러다가 각자의 공간이 필요하면 한 사람은 거실에서, 다른 한 사람은 방에서 따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다.
원룸에서 혼자 살았던 것보다, 룸렌트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눈치 게임 하며 살았던 것보다는 확실히 쾌적하고 여유로운 환경이었다.
이런 것을 '우리 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부모님 집에서 나오고 나서는 그런 느낌을 처음 느껴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지금은 짝꿍과 함께 투베드룸 유닛에 함께 산다. 콘도는 아니고 주택에 딸린 반지하 유닛인데 벌써 2년을 꽉 채워 살았다.
한국에서도 방이 두 개짜리였던 월세방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열 평 조금 넘는 공간을 알뜰하게 쪼개서 두 개의 방을 만들고 한 사람이 서있으면 딱 알맞는 주방과 허리만큼 오는 작은 냉장고가 온통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실'이 있던 곳. 그곳에서 나를 포함해 여자 넷이 살았던 적도 있고 남동생과 둘이 살았던 적도 있다. 그 공간들을 상기해보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투베드룸의 주거 공간은 이따금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처음 이 반지하 투베드룸을 봤을 때는 한국에서 반지하에 살았던 악몽이 떠올라 거부감이 먼저 들었었다. 그래도 사람이 햇빛을 보며 살아야지, 안 그래도 겨울엔 해 보기가 어려운 동네인데. 그렇지만 일단 공간이 넓고 쾌적하니, 집안에만 있으면 반지하라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햇빛도 중요하지만, 공간이 얼마나 넓은지도 삶의 질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예산이 충분하면 더 좋은 조건의 주거 공간에서 거주할 수 있다.
처음 이사를 결정할 땐 내가 취직이 확정되기 이전이라, 만약을 대비해 짝꿍 혼자만의 수입으로도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 곳으로 골랐다. 이제 나도 벌이가 늘었고 짝꿍도 그 2년 사이에 두 번의 승진을 해 훨씬 삶이 나아졌다.
그래도 앞으로 1~2년은 더 진득하게 이곳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예정이다. 우리의 삶은 지금도 충분히 여유롭고 안정적이니, 다음 단계는 단순히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 이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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