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공중화장실 변기에는 왜 뚜껑이 없을까?
35. 공중화장실 변기에는 왜 뚜껑이 없을까?
급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며 겨우 찾은 공중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문을 잠그고, 굳게 닫힌 변기 뚜껑을 열면서 바지를 내리려던 그 찰나. 구리구리한 냄새가 나는 것이 공중화장실의 특징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차마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 절로 으악 소리가 나오는 순간이 아닐 수가 없다. 화를 감추지 못하고 다시 칸을 나와 다른 칸을 살피면, 이젠 변기 뚜껑이 닫혀 있는지 열려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게 된다. 닫힌 뚜껑을 다시 열어 다른 사람의 과오를 확인하고 싶지 않으니까.
아마 살면서 한 번쯤은 겪어본 일이 아닐까 싶다. 평생 겪어본 적이 없다면 변소의 신이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하자.
캐나다에서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면서는 이런 경험을 전혀 해본 적이 없다면 믿겠는가? 그렇다, 누군가가 오래도록 간직한 어두운 잔여물을 감추고 있는 변기를 본 적이 없다. 변소 칸에 발을 하나 들이면 바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뚜껑 없이 활짝 열려 있는 변기가.
그래서 문을 닫고 마음의 준비를 끝낸 다음 확인하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는다. 이미 한 발만 걸치고서도 다른 이의 배설물을 품고 있는 변기인지 아니면 이미 다 흘려보내 다음 사람을 맞이할 준비가 된 변기인지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도 그냥 느낌적 느낌으로, 볼일을 본 후에 변기 뚜껑을 닫지 않고 물을 내리면, 어쩐지 그 미세한 입자가 내 손에, 몸에, 얼굴에 튈 것만 같다는 본능적 공포가 있었다. 그래서 꼬박꼬박 뚜껑을 닫고 물을 내리곤 했고, 그럴 수 없는 푸세식 화장실에서는 물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재빨리 그 자그마한 사각형의 지옥에서 몸을 쏙 빼냈다.
이제는 변기 뚜껑을 닫고 물을 내리는 것이 상식이 된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과학적으로도 물을 내리는 순간 튀는 오물의 미세한 입자가 칫솔꽂이에 얌전히 잠들어 있는 칫솔에까지 퐁당 튄다는 것이 이미 증명이 된 지 오래가 아닌가.
그래서 매우 당혹스러웠다. 뚜껑이 없는 공중화장실 변기라니! 그것도 캐나다에서? 캐나다 정도면 선진국이니까 이런 정도의 위생 수준은 좀 맞춰줘야 하지 않니?
엄마와 세부 패키지 여행을 갔을 때, 마지막 날 시내 투어를 하다가 다시 버스에 오르기 전, 가이드가 맥도날드를 가리키며, 볼일을 볼 사람은 어서 다녀오시란 말을 했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려드릴까요? 라며 운을 뗐다.
필리핀의 공중 화장실에는 변기 뚜껑이 없습니다. 뚜껑만 없는 게 아니라 가끔은 엉덩이가 닿는 그 부분도 없을 때가 있어요. 왜 그럴까요? 그걸 팔면 돈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꾸 훔쳐 가서 그렇답니다, 하하.
가이드는 아마 웃으라고 한 소리였겠지만, 나는 이미 세부에 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느낀 아주 선명한 빈부의 격차에 너무도 날이 선 상태였기 때문에 결코 웃을 수가 없었다. 관광객들이 호화스럽게 머무는 호텔이 모여있는 공간은 마치 금칠이라도 된 듯 번쩍번쩍했고, 그곳에서 차를 타고 조금만 나오면 이내 나무판자를 얼기설기 덧대어 만든 허름한 집이 즐비하게 나타난다. 신발도 없이 걸어 다니는 아이들이 꼬물거리는 손으로 만든 악세서리를 들이밀며 원달라, 원달라 하는 풍경을 보는 것이 썩 즐겁지만은 않았다.
그런 나라에서 가난을 비웃다니. 나는 결코 웃을 수도 없었고 재미있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그때 그 맥도날드 화장실에는 변기 뚜껑은 없었지만, 엉덩이 닿는 부분은 확실히 있었다. 물을 내리며 가난한 인간의 존엄은 변기 뚜껑보다 못한 건가, 뭐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래, 필리핀은 가난한 사람이 변기 뚜껑을 자꾸 훔쳐 가서 공중화장실에 뚜껑이 없는 거라고 하자. 그렇다면 캐나다의 공중화장실은 대체 왜 변기 뚜껑이 없는 걸까?
너무 궁금해서 구글링까지 해봤지만, 속 시원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피앙세에게도 물어봤다. 그의 답은 '돈'이었다. 그 답은 구글링에서 찾은 그 찝찌름한 답과도 같았다.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락거리며 사용하는 공중화장실이고, 그 사람들이 매번 사용할 때마다 변기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만으로도 고장이 쉽게 난다. 그렇지 않더라도 술이나 약에 취한 사람들, 공공 물품을 험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혹은 단순한 부주의로 쉽게 부서지기 마련이다. 그걸 매번 돈을 들여 보수하고 유지하느니 차라리 없애 버리는 게 낫겠다는 것이 아마 결론이리라. (어라, 어째서 기시감이?)
어쩐지 자본주의 앞에서 최소한의 공중위생을 빼앗긴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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