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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Sep 30. 2023

암컷들 - 루시 쿡

암컷들

루시 쿡


참 이상한 심보인데, 사람들이 재밌다고 하고 유명해진 책들은 어쩐지 잘 안 읽게 된다. 이 책도 트위터에서 입소문을 탔고, 궁금은 했지만 유교걸인 나에게는 제목이 퍽 발칙해보여서(?) 이상한 반감이 있었다. 그리고 어쩐지 대충 예상할 만한 내용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동물의 세계에서 우리가 알던 알파 수컷 한 마리가 무리를 지배하고 여러 암컷이 알파 수컷 하나를 따르는 구조가 보편적일 것이다라는 상식을 뒤엎는, 수컷을 지배하는 동물 암컷들의 이야기.

이미 읽기도 전에 다 읽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 궁금하기는 했는데) 친구가 강력 추천을 하며 실물 책을 빌려주기까지 해서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영어 원문으로 된 책을 사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책 속에는 다양한 동물 암컷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펼쳐졌다. 그리고 예상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동물의 세계를 탐색하는 재미도 선사해주었다. 게다가 먼저 읽은 친구의 메모가 틈틈이 있어 더욱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로 열심히 읽었냐면, 읽으면서 메모한 것들을 촘촘히 모아보니 독서기록장 6페이지를 채웠을 정도다.


오래도록 동물적 본능이라고 사람들이 맹신했던 모델, '바람기 많은 남성 - 씨를 많이 뿌려야 하기때문 & 수줍고 신중한 여성 - 아이를 보호해야하기 때문에'의 성별 구도가 산산이 깨어지는 지점도 퍽 흥미로웠다. 다양한 종의 암컷에서 수컷보다도 더 '난잡한' 성생활이 목격되었는데, 사회적으로도 일부일처제를 고수한다고 알려진 많은 종의 새 중에서 뒤로 호박씨를 까는(?) 암컷 새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언급한 부분도 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인간종 여성의 바람기 역시 '자연의 법칙'이니 '동물의 본능'이니에 빗대어 설명하면 남자들이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또한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긴 했지만, 오래도록 신화처럼 받아들여졌던, '남성형이 성별의 기본값'이라는 환상도, 포유류의 배아를 관찰하면서 깨졌다는 지점도 언급되었다.


P. 47. 포유류의 배아는 암컷이든 수컷이든 처음에는 단일 성별 키트로 시작한다. 키트 안에는 난소와 정소 어느 쪽으로도 발달할 수 있는 다양한 관과 미발달 생식샘이 들어 있다. 따라서 난소로 가든 정소로 가든 본격적인 노선을 정할 때까지, 발생 중인 태아는 성적으로 '중성'이다.
P. 75. 여성의 성은 시조이다. 이 원시적 난자 제조기의 유물은 우리 모두 안에 존재한다.


인류의 DNA를 분석해 조상을 타고 올라가다보면 결국 한 명의 여자, 최초의 인간 '루시'로 귀결된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인류의 조상인 여성 '루시'가 난잡하게 굴었기 때문에 유전자가 더 멀리 많이 퍼져 나가 온 인류의 기원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치면 여성은 필연적으로(?) 난잡하게 굴어야 하는 게 아닐까.


책에는 정말 다양하고 많은 동물종이 소개된다. 이 책을 읽으며 속도가 잘 붙지 않았던 이유 중에 하나는, 생소한 동물이 소개될 때마다 사진, 영상 자료를 검색해보면서 읽어서다. 덕분에 산쑥들꿩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게 되었고, 짝짓기 철에 수컷 산쑥들꿩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암컷 거미가 짝짓기 직후에 수컷 거미를 잡아먹는 영상을 보면서는 어쩐지 전율이 일기까지 했다. 그리고 책에서도 추천하지 않는, 타조의 음경도 검색을 해서 찾아봤고, '이빨 달린 음경'이라는 표현으로 묘사된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생김새도 모두 구글에 나왔다.

평소라면 책을 읽을 때 미디어 기기를 멀리하는 편인데, 글자로만 모든 것이 전해지지 않는 책은 인터넷을 검색해보며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에 새삼 좋은 세상에 살고 있구나 실감하게 된다.


P. 306. 줄리는 100편이 넘는 논문을 썼지만 그런 대단한 학문적 성과에도 다이앤 포시나 제인 구달 같은 동시대 여성 과학자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고 과학에 대한 기여도 역시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아마도 그것은 졸리의 연구가 지닌 이단적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포시와 구달은 아프리카 본토에서 실버백 고릴라와 침팬지 수컷처럼 권력을 잡은 수컷의 서열을 묘사했다. 하지만 졸리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조용히 전혀 다른 현상을 기록했다. 적대적인 알파 암컷 말이다.


동물의 암컷들에 대해 이제야 조명이 되기 시작한 건 보수적인 다윈 시절부터 내려오던 보수적이고 다분히 남성주의적인 학계 탓이다. 다윈은 동물, 유전학계의 전설이자 신화처럼 받아들여져서 그의 학설에 상반되는 연구, 실험 결과가 나오더라도 무시하거나 도외시 당하기 일쑤였고, 오히려 그의 학설에 결과를 끼워맞추기까지 했다. 이는 책에 소개된 초파리 실험을 봐도 알 수 있는데, 그렇게 '사실'과 '검증'을 중요하게 여기는 과학계에서 그동안 이전 이론들을 다시 검증할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얼마나 이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굳어있나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주류'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연구들이 조명받지 못한 것은 너무 당연했던 것이다. 단순히 예외로 여겨지고, 혹은 부족하다고 여겨지고, 제대로 된 실험 연구가 아니라는 비난을 받고, 다윈을 부정하냐며 원색적인 비난을 받으면서도 꾿꾿이 '검증된 사실'을 논문으로 써냈던 앞서간 과학자들이 있기 때문에 후대의 우리들이 좀 더 유연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P. 437. 성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정적이지도 고정되지도 아니하며, 역동적이고 유동적인 형질로서 유전자와 환경의 특별한 상호작용으로 형성되고 동물의 발달 과정과 생활사에서 형성되며, 여기에 약간의 우연이 더해진다. 자웅을 전혀 별개의 생물학적 실체로 생각하는 대신 동일 종의 일원으로서, 번식과 관련된 특정한 생물학적 생리적 과정에서만 유동적이고 상보적으로 차이가 날 뿐, 그 외에는 거의 같은 존재로 보아야 한다. 이제는 유해하며 공공연하게 우리를 속이는 이원적 기대를 버려야 할 때가 되었다.


책에서는 그동안 학계에서 소외되어 연구하지 않았던 암컷들의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결국 책의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마지막 장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성별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을 버리고 세상을 바라보면 다원화되어 훨씬 다채롭고 다양하고 멋진 세계가 드러난다. 이는 비단 동물의 세계뿐만이 아니라 인간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훨씬 확장시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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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1 : 산쑥들꿩의 짝짓기 https://youtu.be/CeI8gLMl9Vs?si=Knps5ODZN-8iBYmn


참고 자료 2 : 거미의 짝짓기 https://youtu.be/Bazbo6TyHTc?si=0a38nCNhIrMHyGZ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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