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영화가 개봉된다는 소식에, 어쩌면 조금은 부랴부랴 책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것도 같다. 박상영의 다른 작품 <1차원이 되고 싶어>를 생각하면 또 얼마만큼의 '나'를 까발려 놓았을까를 걱정하며 읽기 시작한 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조금은 질투심에, 게이 소설이 재밌어 봐야 게이 소설이지, 하는 마음에, 인기 많은 작가 작품이니 내가 안 읽어도 많이들 읽겠지, 하는 치졸한 마음에 내내 미루었다가 드디어 펼쳤다.
그리고 대단한 흡인력에 단단히 매료되며 책을 단번에 읽어 내려갔다.
네 개의 단편 같은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화자이자 주인공인 '영'의 20대 연애담과 성장담이다. 읽는 내내 '맞아 내가 그랬지, 맞아 나의 20대가 딱 저랬었어.' 하는 생각을 내내 놓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추억이 돋는 글을 잘 쓰는 박상영의 실력이 여기서도 탁월하게 드러났다.
P. 51 언제나 때에 맞춰 블루베리를 사다 놓던 재희. 내가 만났던 모든 남자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내 연애사의 외장하드 재희.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우며, 가당찮은 남자만 골라 만나는 재희.
모든 아름다움이라고 명명되는 시절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쳐준 재희는, 이제 이곳에 없다.
전체 에피소드를 크게 공감하며 읽긴 했지만, 특히 재희와의 에피소드는, 그리고 재희가 결혼을 하며 둘이 함께 사는 집을 떠나는 장면은 한 시대의 끝을 알리는 것 같은 느낌이라 느낌이 남달랐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아름다웠던, 아름다운 줄 몰랐던 그런 시절이.' 하고 아련함과 짠함, 그리고 그리움이 힘껏 밀려왔다.
사실 어쩌면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에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결국은 '지나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는 이야기였다. 연애를 통해 깊이 관계 맺은 이들과의 추억, 그리고 그로 인해 좌절하고 성장하는 이야기.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땐 그랬지'하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과거.
자연스럽게 나의 과거 연애담과 실수가 떠올랐다. 한밤의 이태원 거리의 불빛과 클럽의 조명과 음악, 바에서 친구들과 조용히 나누던 담소, 술, 담배, 진한 키스와 서로를 더듬던 시간. 이 모든 것들을 거쳐서 어떤 성장을 겪어낸 나. 그리고 재희와 영, 규호와 영. 그리고 성장통을 지독하게 겪고 한층 어른이 된 영.
<1차원이 되고 싶어>를 읽었을 때처럼 공감성 수치가 곳곳에서 느껴진 것은, 영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 내 친구들의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책을 모두 읽고, 드라마 버전의 <대도시의 사랑법>을 몰아서 봤다. 영상으로 재현된 대도시, 서울의 풍경은 책을 읽으며 그려냈던 그리운 풍경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었다. 영상이 재현해 내는 추억의 힘을 다시금 깨달았다.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다, 볼 기회를 놓쳤고 언제 볼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아마 영화를 보고 나서도 비슷한 감상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어쩐지 조금은 더 아껴뒀다 보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