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우당탕탕 영주권 신청기 (2)
5. 우당탕탕 영주권 신청기 (2) - 부랴부랴, 허겁지겁, 우당탕탕 서류 접수
2023년 11월 말, 인사팀의 A가 개인적인 이메일을 (물론 직장 이메일로) 보냈다. 인사팀에서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보내는 일은 평소에 잘 없기에 사뭇 긴장하며 열었는데, 단 두 문장에 심장이 철렁했다.
"PGWP랑 SIN넘버가 내년 2월에 만료된대. 업데이트된 서류 있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분명 처음 영주권에 접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영어 점수를 준비하고 그 외 다른 서류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던 게 어제 같은데, 이미 벌써 거의 2년 가까이가 훌쩍 지나가버린 것이다. 아니 시간 왜 이렇게 순삭이지, 나 그동안 뭐 했지?
아, 맞다, 나 결혼을 했었지, 참!
2022년 5월에 프로포즈를 받고 약혼을 하고, 이듬해인 2023년 9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캐나다에 온 지 햇수로 오 년 만에 가족을 만들어버렸다. 영주권을 따기도 전에. (약혼했을 당시 올렸던 브런치 글: https://brunch.co.kr/@kimraina/489 / 결혼식 브런치 글: https://brunch.co.kr/@kimraina/552 )
그리고 내 워크퍼밋이 만료가 3개월이 남아버렸다. 더 이상 영주권 신청을 미룰 수가 없었다.
영주권 역시 유학 비자와 졸업 후 취업 비자에 도움을 준 같은 에이전시를 통해 진행할 예정이었고, 에이전시에서는 내 결혼식 시점에서부터 간간히 내가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연락을 하며 “이제 정말 영주권 접수 하셔야 됩니다.”를 어필해줬다. 그래서 머릿속 깊은 어딘가에서는 '영주권 서류를 준비해서 신청을 해야해.'를 새겨두었었다. 분명 그랬었는데 어째서 나는 이렇게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허둥대게 되었을까.
변명을 하자면 EE 커트라인 점수가 고공행진을 하는 와중에, 영어 공부를 더 해서 시험을 쳐야하는데 그게 정말 귀찮고(또 영어 시험비용도 고려해야했고), 그러게 시험을 다시 쳐서 영어 점수를 만점으로 만들어도 커트라인이 간당간당하니까 '해야지, 해야지.' 상태로 영원히 미루던 차에, 아 어차피 캐나다인이랑 결혼할 거니까 결혼 영주권으로 쉽게 가자는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려두었고, 결혼식을 올린다고 곧바로 영주권 신청이 되는 것은 또 아니라서 때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밍기적대다 보니 이지경까지 와버린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경까지.
그리하여 에이전시의 도움으로 필요한 서류 목록이 정리된 엑셀 파일을 받아 하나하나 퀘스트 깨어나가듯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혼인 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혼인 증명서를 받아야하는데 결혼식을 두 달 후에야 증명서를 신청할 수 있었고, 그러고도 20일 후에야 우편으로 증명서를 받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벌써 11월 중순이 되었고, 혼인 증명서를 가지고 12월 14일에 휴가를 내고 토론토에 있는 영사관으로 가서 혼인 신고를 완료했다. 열흘 후, 크리스마스 이브에 온라인으로 가족관계 증명서에 배우자 이름이 기재된 것을 확인했다. 결혼 관련 서류는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지 준비하는 데 큰 장애물은 없었다.
대부분의 서류는 준비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캐나다 범죄 기록 (Canadian Police Certificate or Canadian Criminal Record) 이었는데, 사실상 이 서류가 ‘반드시’ 필요한 서류는 아니지만, 영주권을 접수했다가 서류 미비로 빠꾸를 먹게 되면 추가로 준비해야할 지도 모르는 서류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준비하는 게 좋다는 에이전시의 조언에 따라 준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서류 하나를 위해서 험난한 산을 너무 많이 넘어야 했다.
산 1. 정보의 바다에서도 찾을 수 없는 정보.
온라인에서 열심히 뒤져봤는데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는 곳이 어디에도 없었다. 캐나다 이민성 사이트에서도, 경찰청 사이트에서도, 그리고 레딧에서도, 모두가 하는 말이 다 달랐다. 누구는 근처 아무 경찰서에 가면 받을 수 있다고 하고, 또 누구는 지정된 지점에서만 가능하다고 하고. 또 다른 데에서는 경찰서말고 사설 기관을 가야 한다고 하고, 어디서는 영주권 신청에 필요한 서류가 아니니까 발급 받으려 할 필요 없다고 하면서도 만약 필요하다고 판명이 나면 그때 안내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하고. 정말이지 도무지 답을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일단 행동하고 보는 나의 답은 '가까운 경찰서 지점에 가본다'였다. 거기서 해주면 하고, 아니라면 다른 곳을 안내해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래서 퇴근길에 가장 가까운 경찰서로 향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괜히 경찰서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두렵고 떨렸지만, 다행히 나같은 이민자들이 많은 모양인지 그곳에서는 안내 종이가 비치되어 있었다. 친절한 경찰관이 "이곳은 해당 업무를 보는 곳이 아니니 안내 종이를 보고 찾아가라."고도 전해주었다.
산 2. 오늘 영업 안 합니다.
안내 종이에는 해당 업무를 관장하는 지점 주소와 업무 시간이 적혀있었다. 매주 월, 화, 금요일은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 반까지, 수요일과 목요일은 오전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말하자면 평일은 내내 운영한다는 것이었는데, 해당 지점에 온라인으로 확인해보니 또 다른 정보가 있었다. 매주 수요일 휴무라는. (혹은 안내 종이에 매주 수요일 휴무라고 적혀있고 온라인에는 매일 운영한다고 적혀있었던가, 아무튼 두 곳의 안내가 달랐다.)
두 번 걸음 하고 싶지 않아서 전화로 해당 지점에 확인까지 거쳤다. 전화 통화로는 "매일 운영합니다."하는 확답을 들을 수 있었다.
다음 날인 수요일, 재택 근무를 하다가 8시 오픈 시간에 맞춰 해당 지점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게 웬 날벼락. 해당 업무를 보는 부서는 매주 수요일 휴무라는 황당한 소식을 도착 해서야 듣게 된 것이다. 그것도 불과 며칠 전에 변경된 운영 시간이었다. 얼마나 새로운 스케쥴이냐면, 현장에서조차도 상충되는 안내문이 옆에 나란히 붙어있을 정도였다.
황당함과 허탈함, 분노를 삭이고 결국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 죽치고 있다고 휴무날이 휴무가 아니게 되는 게 아니었으니까.
산 3. 여기서는 해당 업무를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다음 날, 목요일 아침, 다시 한번 같은 지점을 방문했다. 오픈 시간에 맞춰 갔더니 대기 없이 해당 부서 사람과 대면할 수 있었다.
"범죄기록 증명서 떼려고 하는데요, 영주권 용으로요."
지친 기색이 역력했을까, 담당자는 나를 흘긋 보더니 특유의 무뚝뚝한 말씨로 대답했다.
"그건 여기서 하시는 게 아니고 사설 기관에서 하셔야 합니다."
청천벽력같은 소리. 내가 이거 때문에 경찰서만 지금 세 번째 오는 건데요? 너무 황당하고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담당자는 친절히 구글지도에서 사설 기관 몇 군데를 보여주면서 이곳 중에 하나 예약하고 가셔서 진행하시라고 안내해주었다.
어이가 없다는 말로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애초에 온라인에서 정확한 정보를 찾을 수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뺑이를 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좌절감과 허탈함, 분노와 짜증,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한데 모여서 안내 종이를 마구 구기고 짓이겼고, 운전해서 돌아오는 길에 전재준처럼 악쓰고 욕을 하고서야 조금 풀어질 수 있었다.
회사 가는 길목에 있는 사설 기관에 부랴부랴 예약을 하고, 출근길에 들러서 지문을 찍고 사진도 찍고 비용을 지불했다. 이 과정은 넋을 놓은 채 했던 것 같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서 일주일만에 관련 서류를 우편으로 받을 수 있었다.
다가오는 워크퍼밋 만료
서류가 얼추 준비된 시점에서, 그러니까 영주권 서류 접수 직전에 알게된 또다른 난관이 있었다. 바로 PGWP 기간 만료가 코앞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만료 시점 3개월을 앞두고서는 카운트다운 하던 차였으니까 새로운 정보는 아니었는데, 이 상황을 '문제'로 인식한 시점은 비자 만료 일주일 전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막연히 '영주권을 신청하면 영주권 나오기 전까지는 기존 비자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에이전시에서 'PGWP 만료 전에 오픈 워크퍼밋을 신청하셔야지 계속 일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결혼 영주권을 신청하면서 브릿지 비자(Bridging Open Work Permit)을 함께 신청하면 기존의 기존의 워크퍼밋이 자동으로 연장되었는데, 또 하필이면 내가 신청하기 얼마 전부터 결혼 영주권 신청자는 브릿지 비자 대상에서 제외가 되어버린 것이다. 즉, 오픈 워크 퍼밋을 새로 신청을 해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내가 맡아서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서 회사도 비상사태가 되었다. 유효한 워크퍼밋이 없는 상태로는 고용을 유지할 수 없으니까 여러가지 제안들이 제시되었는데, 1. 유효한 새 워크퍼밋을 받을 때까지 무급 휴직을 한다, 2. 퇴사 처리를 한 후 유효한 워크퍼밋을 받은 다음 재입사를 한다. 등등이 있었다.
사실 회사 입장으로는 나를 해고하고 내 업무를 다른 사람에게 인계시켜버리면 오히려 더 번잡하지 않고 쉬울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를 놓치고 싶지 않은 인재로 여기는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인계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인지, 그것도 아니면 원래 회사가 한 번 고용한 사람을 이렇게까지 책임져주는 게 보통인 건지, 어쨌든 해줄 수 있는 도움을 모두 주겠다는 적극적인 의사를 내비쳐 준 것이 퍽 감동이었다. 이 지경까지 온 건 온전히 내가 게으름을 부려 미룰 수 있는 만큼 모든 걸 미루었던 탓인데도. 결코 '왜 아직까지 아무것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느냐'는 질책 없이 그저 묵묵히 회사가 할 수 있는 방향성을 물색해주니, 나로서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도 브릿지 비자와 상관 없이 오픈 워크퍼밋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일단 신청만 하면 새 워크퍼밋이 나오기 전까지 기존의 워크퍼밋이 만료되어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확답을 이민성과 전화 통화로도, 그리고 이메일 공식 문서로도 받았다. 이 이메일을 회사 인사팀에 전달한 후에야 겨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2월 2일, 영주권 서류 접수가 완료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2월 3일, 오픈 워크퍼밋 신청도 완료했다.
PGWP 만료 일주일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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