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내집 마련의 대장정, 서막이 올랐다
10. 내집 마련의 대장정, 서막이 올랐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그랬던가. 내 경우에는 동네 친구가 집을 샀더니 나도 덩달아 집 뽐뿌(*무언가를 구매하고 싶은 감정 상태)가 왔다. 물론 이 친구와 나는 출발점이 달랐다. 친구는 캐나다에 오기 전에 이미 수 년간의 직장 생활 경력이 있었고, 그래서 모르긴 몰라도 나보다 모아둔 돈도 더 많았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서른이 되기 전까지 제대로 된 직장 생활 해 본 적 없이 이 알바 저 알바 전전하며 허송세월하다가 가까스로 돈을 모아서 캐나다로 유학을 왔고, 컬리지 2년을 마치고 이제 겨우 직장 생활 3년차에 접어들던 참이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친구가 집을 샀다고 해서 나도 곧바로 집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못했다.
게다가 배우자와 반지하 렌트에 살며 비용을 조금 아끼긴 했지만, 집을 사야겠다는 목적 의식을 갖고 악착같이 돈을 모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욜로처럼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며 지냈기 때문에 저축을 열심히 했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집을 살 준비는 안 되어 있는 상태.
과연 우리가 집을 살 수 있을까? 하지만 너무 사고 싶어졌다. 내 인생에 ‘집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이토록 강력하게 드는 날이 올 줄이야.
이전 편에서 썼듯이 나는 어릴 때부터 늘 주택에 사는 것이 꿈이었다. 바다가 굽어 보이는 곳에 있는 집. 토론토에 살면서도 집을 사야겠단 생각을 하지 않았던, 혹은 못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내륙에 있는 토론토에서는 바다가 보이는 집을 살 수가 없다. 그나마 비슷한 호숫가로 타협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집을 산다면 바닷가가 있는 도시로 이사를 간 다음일 것이라고 막연히 예상했다.
더군다다 아파트(콘도)와 주택(하우스)의 집값 차이를 생각하면 당장에 주택을 사는 것은 무리이니 한국인의 사랑, 아파트 정도도 괜찮을 것이라는 게 나의 타협점이었다. 나의 영원한 보금자리가 되는 건 아니고 그냥 이 척박한 도시에서 살아갈 만한 적당한 둥지로. 방 두 개 짜리 콘도에 살면서 돈을 좀 모으면, 언젠가는 하우스를 살 수 있는 날도 오겠지.
하지만 배우자의 생각은 달랐다. 콘도는 사 봐야 값이 떨어지기만 하고 또 매달 나가는 콘도 관리비는 순 낭비일 뿐이니 무조건 하우스를 사야 한다. 하우스를 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돈은 고스란히 집값에 보탬이 될 테고, 또 하우스 가격은 해가 갈수록 오르기만 하기 때문에 지금이 제일 빠른 시기다. 그의 주장이었지만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나라고 하우스를 안 사고 싶겠냐만은 현실적으로 통장에 모여있는 돈과, '영혼까지 끌어 모아' 받을 수 있는 은행 대출을 더해도 도무지 방법이 보이지를 않았다. 캐나다에서 평생 살아온 건 넌데 왜 너는 지금 캐나다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허황된 소리만 하며 타협하려 들지 않는 걸까. 나도 고집이 센 편이지만 내 배우자의 고집도 어마어마했다.
좁혀지지 않는 의견차를 그대로 둔 채, 우리는 일단 집을 보러다니기로 했다. 당장 사겠다는 마음가짐 보다는 여러 종류의 집을 구경하며, 우리가 타협할 수 있는 지점들,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의 리스트를 정리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마침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밖으로 돌아다니기 좋아지던 차였다. 여기저기서 ‘오픈 하우스’를 하고 있었다. 오픈 하우스는 매물로 나온 집들을 공짜로 구경하는 재미난 이벤트로, 판매자 쪽의 부동산 중개업자가 상주하며 어중이 떠중이로 구경온 잠재적 구매자들을 홀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집을 매우 잘 정리하고 꾸며둔 다음에 보여주는 것이라 누구든 구경하다보면 혹할 수밖에 없게 생겼다. 이런 눈속임에 놀아나지 않고 우리의 기준점을 세우는 것이 작은 목표였다.
첫 번째 오픈 하우스 투어는 당시 살고 있던 도시에서 예산 안에 드는 매물들을 중심으로 가볍게 시작했다. 도심 가까이에 있는 방 두 개짜리 콘도와 도심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당시 살던 집과는 가까운 곳에 있는 방 두 개짜리 타운하우스를 골랐다. 찬 바람의 기세가 꺾이지 않는 초봄, 두 종류의 오픈 하우스 구경으로 하우스 헌팅의 서막이 올랐다.
첫 번째, 콘도는 위치가 좋았다. 근처에 커다란 쇼핑몰이 있고, 교통편도 나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인근에 더 높은 건물이 없어서인지 채광이 환상적이었다. 북서향이라 저녁 늦게까지 오래도록 햇빛이 들어올 수 있는 구조였다. 다만 주방이 답답하고 방 하나는 너무 작았다. 넓은 거실과 그 옆에 딸린 베란다 아닌 썬룸으로 보완한다고 해도, 이 콘도의 한 달 관리비가 100만원이라는 건 큰 단점이었다.
두 번째, 타운 하우스도 위치가 나쁘지는 않았다. 콘도보다는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라 소음이 적은 것은 장점으로 작용했다. 관리비도 한 달에 60만원 가량으로 콘도보다는 저렴했으나, 채광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거실에 나 있는 커다란 창 하나만이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창이라, 집 안 전체가 햇빛으로 밝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가격도 콘도보다 비싼데다가 전체적으로 첫 번째 본 콘도 보다 좁아 보인 것도 (아마 실평수도 더 작지 않았을까) 감점 요인이었다.
두 군데를 가볍게 보고 와서는 본격적으로 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지, 있으면 좋고 없으면 좋은 것들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원하는 부동산의 형태는 어떤 것인지.
오래 전 에세이에서 캐나다의 주거 형태를 간략하게 설명한 적이 있는데 (https://brunch.co.kr/@kimraina/514) 단순 렌트가 아닌 매매로 넘어가니 조금 더 세분화 된 형태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우스와 콘도를 기본으로, 하우스는 디태치와 세미 디태치로 나뉘고 (물론 으리으리하게 크고 휘황찬란한 ‘맨션’이나 그보다는 조금 작지만 그래도 일반 하우스보다는 훨씬 럭셔리한 ’믹맨션‘ 같은 것들도 있지만 어차피 우리 예산을 훨씬 벗어나기도 하고, 그정도로 크고 번쩍거리는 집이 필요가 없기도 해서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았다.) 콘도와 하우스 중간 쯔음에 타운 하우스와 멀티플렉스가 있다. 타운 하우스도 실 소유주가 관리를 다 해야 하는 프리 홀드가 있는가 하면, 콘도처럼 관리회사를 고용하는 형태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 멀티플렉스와 타운 하우스에 유의미한 구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콘도보다 층수가 낮고 한 층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걸 멀티플렉스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 같았다. 흔히 본 유형은 아니었다.
가장 먼저 협의해야 할 점, 그리고 제일 협의하기 어려웠던 점은 위치 선정이었다.
당시에 살고 있던 도시는 광역 토론토로 묶여있는 ‘미시사가’라는 곳으로, 한국으로 치면 서울 옆에 붙어 있는 경기도 성남시 같은 느낌이 가까울까. 근 10년 사이에 인구가 많이 늘기도 했고 더불어 집값도 몇 배로 뛰었는데, 우리는 이걸 렌트비로써 체감했다. 처음 이 동네에 이사왔을 때와 비교했을 때, 이사온 지 4년차에 접어든 시점에서 주변 렌트비가 적게는 1.5배에서 많게는 두 배 가까이 뛰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우리의 집주인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법에서 정한 최대 인상률만 적용해서 렌트비를 올렸고, 덕분에 주변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거주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가진 예산으로는 미시사가에서 구매가 가능한 매물은 콘도 뿐이었고, 조금 무리를 해야만 타운 하우스에 비벼몰 만했다. 그 이상으로는 결코 넘볼 수준이 아니었다.
둘 다 직장이 미시사가에 있기도 했고, 익숙해진 도시를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어느 정도 있었던 탓에 나는 미시사가에 살 수 있다면 콘도도 괜찮다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배우자의 의지는 단호했다. 절대 No, 콘도를 사는 건 break my heart. 좀 어렵겠지만 시간을 들여서 잘 찾아보면 분명 우리 예산 안에서 미시사가의 세미 디태치나 프리 홀드 타운 하우스를 살 수 있을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두 번째로 내가 제안한 대안은 하우스를 사야 한다면 도심(=직장)과 조금 멀어지더라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토론토에서, 대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집값은 저렴해진다. 우리의 예산으로도 도전해볼 만한 매물이 곳곳에 보였다. 가장 큰 문제는 통근 시간이 늘어난다는 점이었는데, 주 2~3회 재택을 하니 너무 큰 무리는 아닐 것이라는 게 내 의견이었다.
그러나 이 고집불통의 배우자는 이 절충안에도 불만부터 던졌다. 후보지로 제안했던 도시에서 회사까지, 차가 막히지 않는 최상의 시나리오에서조차 편도 50분이 걸렸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기름값도 몇 배로 더 들테고, 우리의 낡은 차를 그렇게 혹사할 수 없을 것 같고, 그러다보면 자연히 유지 보수에 돈과 에너지가 많이 들게 되는데 그러면 집을 사는데 예산을 아낀 보람이 없을 것이라고. 무엇보다도 주 2~3회 뿐일지라도 통근 시간이 길어지면 체력적으로 무리가 갈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아니, X발 나보고 어쩌라고.
도무지 타협점을 찾을 수 없는 이 사람과 나, 과연 집을 잘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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