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두근두근 집 구매의 대장정
하우스 헌팅 레이드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은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K의 합류 이후였다. 바로 나의 집 구매 뽐뿌를 불어 넣어준 동네 친구의 남편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집을 매매하는 것으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우리가 그의 실질적인 첫 고객이 되었다. 친구 부부는 자신이 집을 샀던 경험을 토대로 우리에게 귀중한 팁을 마구마구 쏟아주었고, 그 덕분에 아무런 생각 없이 '일단 집을 보러 다니자'는 내 생각에 체계를 잡아주었다.
그리하여 우선은 지금 살고 있는 미시사가 인근을 중심으로, 통근 시간이 편도 1시간을 넘지 않는 곳에서 몇몇 다른 도시들의 매물도 함께 살펴보기로 했다. 직장과 거리가 먼 곳이더라도 그곳의 집을 당장 산다는 생각 보다는 그 동네의 분위기는 어떤지, 살만 한 곳인지, 정말로 직장 출퇴근이 체력적으로 부칠 만큼 먼 곳인지를 살펴보자는 심산이었다.
하우스시그마라는 웹사이트에 올라온 매물 정보를 중심으로 어떤 집을 보러 다닐지를 정했다. 오픈 하우스를 하는 매물은 부동산 중개업자를 끼지 않고 우리끼리만 가서 구경하듯 보고 올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매물은 구매자측 중개업자가 판매자측 중개업자에게 연락을 해서 집을 보러 가겠다는 약속을 잡아야만 볼 수 있었다. K의 활약이 여기서 빛을 발했다.
집을 보러 다니는 동시에 해야할 일은 또 있었다. 바로 가계의 재정을 점검하는 일, 은행과 연락하여 주택담보대출 심사를 받아야 했다. 우리가 집을 구매하는 데 은행에서 얼만큼의 대출을 해줄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승인 받은 금액이 우리의 매매 예산이 된다.
미시사가의 반지하 렌트에 4년 가까이 살며 배우자와 함께 알뜰살뜰 돈을 모은 건 아니지만, 버는 것에 비해 씀씀이가 크진 않았던 덕분인지 적당한 저축액이 우리를 반겼다. 거기다가 당장 현금화 할 수 있는 현물 자산이나, 주식, 가상화폐 등등까지 다 끌어 모으면 다운페이먼트, 즉 집값의 자기자본금을 어느 정도 마련할 수 있었다. 다만 이렇게 소위 '영끌'을 해서 집을 사게 되면 위급한 상황에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돈이 남아나질 않게 된다는 위험이 도사렸다.
게다가 집을 사는 과정에서 짒값만 지불하면 끝이 아니라, 집 계약에 필요한 변호사 비용과 이사 비용, 급하게 보수해야할 곳에 들어갈 비용들도 폭넓게 고려해야 했다. (부동산 중개비용은 판매자만 지불하는 것으로 구매자는 이 부담을 덜 수 있다.)
어디선가 없는 도움이라도 끌어와야했는데, 다행히도 한국에 계신 내 부모님이 선뜻 얼마간의 자본금을 지원해주시기로 하셨다. 이렇게까지 손을 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받기로 했다. 덕분에 우리의 저축액을 건드리지 않고, 영끌을 하지 않고서도 집값의 20%에 해당하는 자본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예산의 윤곽이 잡히자 집을 보러 다니는 눈이 조금 더 구체화가 되었다. 콘도는 절대 안 된다는 배우자의 고집에, 타운 하우스나 디태치, 세미 디태치를 위주로 보러 다녔는데, 그리하여 선정된 지역은 KW라고 불리는 키치너-워털루 지역, 그보다 남쪽에 있는 케임브릿지, 그리고 인근의 궬프(구엘프)였다. 이 세 도시를 합쳐 트라이-시티(Tri-City) 라고 불렀는데, 과포화 상태인 GTA를 대체하는 도시로 주목받고 있었다.
집값이 오를 만한 곳에 살아야 한다는 욕심이 있던 건 아니었지만, 기왕 사는 김에 적어도 내가 산 값보다 떨어지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도시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집값이 오르기야 하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최소 5년에서 10년 후에나 가늠해볼 일이었다.
어느 덧 계절은 여름이 되었고, 중개업자 K와 함께 하는 하우스 투어 여정은 지칠 줄을 몰랐다.
딱, 이거다! 하는 매물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저렴하게 나온 집은 어딘가 하자가 있었고, 그렇지 않은 집이라면 구매 희망자가 몰려 경매처럼 가격 경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KW 지역에서 마음에 쏙 드는 집을 하나 발견했다. 평일에 오픈 하우스를 하는 집이었기에 중개업자 없이 급하게 보고 왔는데, 2층짜리 디태치 하우스였다. 넓은 마당에 관리가 잘 된 집이라 당장 입주해도 손색이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고속도로가 출입구와 가까워 통근하기에 용이해 보였다.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았고, 이 정도면 해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퍼를 써보면 좋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하지만 의외의 복병이 등장했다.
동네 분위기가 어떤지 살펴보기 위해 차로 한 바퀴 둘러 보다가, 집 인근에 대규모 공사를 예고하는 안내 표지판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가 마음에 들어했던 바로 그 집의 뒤편으로 300가구가 넘는 커다란 타운하우스 콘도 단지가 들어서는 공사였다. 설상가상으로 우리가 오퍼를 해보자 마음먹었던 바로 집 옆에, 현재 버젓이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허물고 콘도 단지의 출입구로 개발될 예정이었다. 콘도 공사를 주도하는 기업의 안내 웹사이트에 청사진이 올라온 것을 보고서 배우자의 실망감이 땅을 뚫을 기세로 깊어졌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공사 소음을 견디고, 이후에는 300가구가 넘는 새 이웃 주민들의 차량이 수시로 오가는 도로를 옆에 끼고 살아야 한다. 이것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마음에 들어서 두 번이나 보러 다녀온 집이었는데, 결심을 고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내 집이 된 듯 마음을 쏟았던 집을 떠나보내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첫 오퍼에서 바로 받아들여지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던 K의 조언도 도움이 됐다. 어차피 안 될거라면 그냥 연습하는 마음으로 오퍼를 써보자.
그렇게 두 번째로 마음에 드는 집을 만났다.
행정구역상을 케임브릿지에 속했지만, 미시사가로 향하는 고속도로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세미 디태치 하우스였다. 조용한 동네였고, 인근에 높은 건물이 없어 풍경을 가리는 것도 없었다. 주인이 공들여 집을 가꾸었다는 것이 태가 났다. 무엇보다도 근처에 공동묘지가 있어서 앞으로도 콘도나 복합쇼핑몰 같은 대형 건물이 들어올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배우자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안 될 걸 알면서도 허튼 희망을 품고 '이 가격에 집을 사겠다'는 제안서를 보냈다. 의외로 설레면서 떨리는 일이었다. 혹시 모를 일이었다. 판매자가 가격보다는 집을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의 진정성을 더 높게 쳐줄 수도 있었다. 우리가 진정성의 정점에 있다고 자신할 순 없었지만, 우리에게도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희망 고문의 구렁텅이에 몸을 던지는 걸 멈출 수는 없었다.
결과는 빠르게 나왔다. 우리의 오퍼는 판매자의 눈길조차 끌지 못했고, 우리가 제시한 가격보다 11%센트나 높은 가격에, 판매자가 예상가보다도 15%가 높은 가격에 판매가 되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날에도 우리는 집을 보러 다녔다. "비 오는 날에 가야 오히려 집안의 누수나 곰팡이 문제를 빨리 알아차릴 수 있다"는 제법 그럴싸한 논리가 배우자의 입에서 우스갯소리처럼 튀어 나왔다. 그리고 반쯤은 맞는 말이기도 했다. 아무리 새 벽지로 꽁꽁 싸맸어도, 덥고 습한 여름은 무자비하게 벽지 뒤의 곰팡이를, 누수의 흔적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첫 오퍼가 거절된 상처가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다시 오퍼를 내고 싶은 집을 두 군데나 만나게 되었다. 세미 디태치 하우스 A와 디태치 하우스 B였다.
A는 제법 관리가 잘 된 2층짜리 집이었다. 지하의 한 구석을 얼추 마감해 두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두긴 했지만 난방설비나 물탱크가 있는 쪽은 깔끔히 정리된 건 아니었다. 간이 화장실 같은 시설도 있었으니 살면서 천천히 정비하면, 지하 방에 하숙생이라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이긴 했다. 화장실을 비교적 최근에 레노베이션한 흔적이 있었지만, 그 외에는 별달리 손본 구석은 없어 보였다. 특히나 주방은 처음 지어진 그대로의 모습이라 낡고 오래된 느낌이 가득했다. 당장 살기에 불편함은 없을지라도 살면서 반드시 여기저기 손을 봐야할 곳이 눈에 들어왔다.
반면에 B는 단층짜리 방갈로였는데, 1층에 방이 두 개 있었고, 1층만큼 넓은 지하에도 방이 세 개나 있었다. 주방도 화장실도 최근에 레노베이션을 한 모양인지 삐까번쩍했다. 특히 주방은 내가 원했던 넓은 오픈형인데다가, A에는 없던 식기세척기도 이미 들어가 있었다. 집에서 뒷마당으로 바로 연결되는 문을 따라 나무로 마루 데크가, 그리고 거기서 연결되는 예쁜 정자까지 갖추고 있었다.
두 집의 오퍼 마감 날짜가 달랐다면 아마 둘 다 도전을 해봤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어느 것 하나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 장단점이 뚜렷했다. 안타깝게도 오퍼 마감 시간은 두 집이 같은 날 시간 차를 두고 정해져 있었다.
선택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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