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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by 희연

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Season 2

12. 집주인이 되었다!


2층짜리 세미 디태치 하우스 A와, 단층짜리 방갈로 디태치 하우스 B. 리스팅 되어서 올라온 가격은 같았지만 어느 모로 보나 구매자들의 가격 경쟁을 붙이기 위한 전략임에 틀림이 없었다. 즉 어느 쪽에 오퍼를 넣든 리스팅된 가격보다 웃돈을 더 얹어야했다.

장단점이 뚜렷하다고는 했지만, 사실상 우리의 마음에는 B가 더 들어왔다. 입주해서 살기만 하면 향후 5년 간은 집에 품을 들일 일이 없어 보였고, A에 비하면 훨씬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정도였다.


"사람들이 보는 눈은 다 똑같아. 우리는 전략적으로 접근해보자."


누구의 제안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나였던 건지, 배우자였던 건지. 하지만 어느 집에 오퍼를 넣을지 정하는 데에 두 사람의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확실했다.

정해진 예산에서 우리가 덤벼볼 수 있을 만한 곳. 많은 사람들이 눈독 들여서 가격 경쟁이 더 치열하게 붙는 곳이 아닌, 그래도 판매자가 우리의 오퍼에 눈길이라도 줄 수 있을만한 그런 곳.

우리는 A 하우스로 마음을 굳히고 오퍼를 넣기로 결정했다.

B와 비교가 되어서 그렇지, A라고 어딘가 빠지는 곳은 아니었다. 1960년대에 지어진 집이라 석면 문제도 피하고, 부실 공사 문제도 피한 건축물이었다. 확실히 뼈대가 괜찮았고, 살면서 고쳐나가는 재미가 있을 테였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오퍼가 B에 몰릴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서 우리의 예산보다 살짝 적은 금액을 써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8월 중순, 두 집의 오퍼 마감날이었다. A는 오후 2시, B는 오후 5시가 마감이었는데, 마음을 A로 정하긴 했어도 시간차가 있으니까 만약에 A 하우스 오퍼에 탈락하는 결과가 빨리 나오면 B 하우스에도 오퍼를 넣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사한 마음이 조금 남아 있었다. 오퍼에 사인을 해서 보내야 했기 때문에 배우자와 나 둘 다 재택근무를 했고, 부동산 중개업자 K의 지시대로 서명해야 할 서류에 하나하나 서명을 하기 시작했다. 2시 전까지 보내야 했으니 시간이 촉박하진 않았지만 어쩐지 마음이 다급해졌다.

오후 2시. 서명을 마친 서류가 K를 통해 판매자에게 당도했고, 약간의 기다림 끝에 곧바로 화답을 받았다. 가격을 조정할 수 있겠냐는 역제안이었다.


판매자에게서 역제안이 왔다는 것은 그들이 받은 오퍼 중에 우리가 보낸 오퍼가 그들 마음에 찼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이 역제안 한 가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고, 아니면 우리가 제안한 가격과 그들의 가격의 중간 정도 되는 가격으로 새로운 제안을 보낼 수도, 혹은 처음 제시한 가격을 그대로 고수하는 수도 있었다. 여기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기회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고 했고 우리의 결정을 한 시간 내로 결정해서 알려줘야 했다.

첫 오퍼의 고배를 마신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이번에는 같은 아픔을 겪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이 역제안한 가격 역시 우리의 예산 안쪽이었으니까, 나는 그냥 수락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배우자의 생각은 달랐다. 가격을 깎을 수 있다면 깎는 게 좋겠다고, 그러니 우리의 가격과 판매자들의 가격의 중간 정도 쯤으로 다시 제안을 넣어보자고 했다.

구매자인 우리는 모든 의사 결정을 K를 통해서 판매자측 중개업자에게 전달을 했고, 판매자측 중개업자는 그걸 판매자들에게 알려 새로운 의사 결정을 K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했다. 최소 네 사람이 의사 소통을 하는 거라 최종 결정이 나기까지는 한 나절 이상이 걸렸다.

그리고 저녁이 훌쩍 지나서 판매자측에서 최종 연락이 왔다. 우리의 오퍼를 받아들여 우리에게 집을 팔겠다는 것이었다.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긴 여정이 이어질 거라고 예상했던 집 구매 대장정의 막이 그렇게 4개월 만에 끝이 났다. (물론 이 뒤로 계약금을 넣고, 집에 하자는 없는지 전문 업자를 불러 사전 점검을 해야 하고, 은행에 모기지 서류를 보내서 확정 승인을 받아야 했지만, 일단 집을 새로 보러 다닐 필요는 없어졌으니까)

얼떨떨했다.

이게 이렇게 마무리 되어도 되나? 내 인생에 첫 집을 이렇게 덜컥 사버려도 되는 건가? 더 많은 심사와 숙고가 필요한 게 아닐까? 이거 지금 무를 수 없나? 이게 맞는 건가?

혼란이 스치는 시간은 짧았고, 계약금을 지불하고 잔금을 치르기 전까지 시간이 정신없이 흘렀다. 중간에 가족 행사가 있어 휴가차 밴프를 다녀왔고 (https://brunch.co.kr/@kimraina/558, 가족들에게 축하 인사도 받았지만 여전히 실감이 나질 않았다.) 10월 중순이 되어서 잔금을 치르고 열쇠를 받았다.

집주인이 되어버렸다.

새 집을 사면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이 쌀을 조금 담은 밥솥을 제일 먼저 집 안으로 들이는 것이라고 들었다. 이사 날짜는 집 계약 날짜 후 한 달 정도 여유롭게 잡아뒀기 때문에 이삿짐을 싸기도 전에 새 집에 밥솥을 먼저 들고 들어갔다. 거실 마루를 밟는 촉감이 서늘하고 낯설었다.

처음 집을 보러 들어왔을 땐 이전 집주인의 살림살이가 다 있어서 넓게 느껴지진 않았는데 그들이 이사를 나가고 휑한 집안을 둘러보니 기억보다 더 넓은 것 같았다. 황량하고 휑한, 그렇지만 이제는 '내 집'이 된 곳. 앞으로 이곳을 채워나갈 생각에 설렘이 끊이질 않았다.


2019년 8월에 캐나다에 학생 비자로 발을 들였고, 2021년 2월에 졸업 후 취업 비자를 받아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2024년 2월 우당탕탕 영주권을 신청해서 9월에 영주권 승인을 받고, 10월에는 집을 샀다. 5년의 캐나다 생활이 차곡차곡 진행되어 어떠한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 신기하면서 내 스스로가 퍽 장하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인생이 더 길겠지만, 이정도 해냈으면 앞으로의 장애물도 이렇게 얼레벌레 얼렁뚱땅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나 집도 샀는데?


이 글을 마지막으로 <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매거진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제는 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는 정도가 아니라, <캐나다에서 자리를 잘 잡았습니다>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혹은 제 3의 나라에 새롭게 둥지를 트는 도전을 하러 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향후 5년은 더 캐나다에 엉덩이 진득하게 붙이고 앉아있을 생각이다.

인생은 길고 새롭게 도전할 과제들도 널렸으니, 이제 다음 에세이 시리즈를 고안해볼까 한다.


그동안 <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를 구독해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며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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