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옆 작은 도시 오쓰에서
이틀 전만 해도 '오쓰'라는 일본 도시는 낯설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엔, 짙은 밤색 울타리 너머 흐드러진 잎사귀 하나까지 익숙해졌다.
편안함은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 허락하는 순간에
시작된다는 걸 그때 알게 됐다.
도망치듯 혼자 여행을 왔었다.
만날 사람이 있는 것도,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환전조차 하지 않아 동전이 없어서
전철의 추가 요금을 못내 쩔쩔 매고 있을 때
역무원은 도리어 불편드려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90도 인사에 엉거주춤 같이 머리를 숙이는 순간, 마음이 울렁였다
모든 게 내 탓 처럼 느껴지던 순간 속에도
누군가 이해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조용한 위로의 힘이라는걸 마음이 먼저 알았다.
마지막 날의 날씨는 여행 내내 비가 온 덕분인지
맑고 청아했다. 마치 내 마음처럼
여행 내내 실컷 운 덕분인지 돌아가는 발걸음이 제법 가볍다.
아니, 아니다. 이건 눈물 나게 고마운 이들 덕분이리라.
고기가 익으면 얼른 내 그릇에 소복이 쌓으며 웃어주던 마마짱
어두운 밤의 골목길을 혼자 가지 않게 데려다주겠다던 코토노
한국 노래를 가게가 떠나가도록 불러주던 요시다 상
일본어를 못하는 내 곁에서 소외감을 느낄 틈도 없게 영어로 옮겨주던 아이와
한국인이 반갑다며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네주던 재일교포까지.
좋은 순간이 쌓이고 쌓이면
슬픔의 농도조차 옅어진다는 걸 알았으니
다시 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
상실의 아픔은 여전히 성실하게 나를 찾아오겠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떠올릴 거니까.
나를 웃게 했던 순수한 친절들을.
그리고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오쓰'라는
마음속의 아지트를 가지고 있으니까
‘서로의 언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데 우정을 나누는 것이 가능할까?’
마음속의 떠다니던 그 질문을 이제는 고쳐 쓴다.
서로의 언어를 모르는 덕에 우정을 나누는 게 가능해졌다
설명할 수 없어서 보여줘야 했다. 마음을, 생각을.
비언어는 말보다 힘이 셌고,
매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상대의 본심을
아버지를 잃고 힘들어서 도망 왔어요라는 말을 일본어로 할 줄 몰랐기에 그들은 나에게서 아빠 잃은 딸이 아닌 본연의 나를 보았다.
나조차도 잊고 지낸 잘 웃던 나, 잘 먹던나, 잘 지내는
나의 원래의 모습을 꺼내주었다.
과거의 내가 결정해 놓은 시간표대로
몸은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마음은 아직 오쓰의 거리를 걷고 있다.
한참의 시차 끝에야
아마도 이 여행을 완전히 마주하게 되겠지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곳을 와야 할 이유가 있다.
넘치는 온기를 받고도 아무것도 갚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반드시 다시 가야만 한다
과거의 나와, 다시 인사하기 위해.
함께한 그들과 다시 인사하기 위해.
그리고 다시 돌아가기까지,
딱 1년이 걸렸다.
이 연재는 여행정보 보다 ‘마음의 결‘을 따라갑니다.
한 조각씩 읽어도 좋지만, 처음부터 함께 걸어주시면
슬픔이 희미해지고 다정함이 스며드는 흐름을
더 선명히 느끼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