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회사는 성폭력 등 예방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정기적으로 직원들을 교육시킬 책임이 있다. 군에서 군법무관은 교육을 듣는 사람 입장이 되기도 하고 교육을 하는 사람 입장이 되기도 한다.
교육을 듣는 사람 입장이면 편하다. 혹시 교육에서 공감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몇 마디 투덜거리거나 혼자 생각하다 말아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하는 사람의 입장이 참 어렵다. 양성평등교육원에서 마련해둔 표준적인 교안이 있지만, 그 교안 중 이해되지 않거나 내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부분은 교육을 하기 어렵다. 나조차 공감되지 않는 부분을 교육을 듣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주저하는 마음이 앞서 긴장도가 올라간다.
성폭력 예방을 위한 표준 교육안 중에 나조차 공감되지 않고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도 어려울 것 같은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성희롱의 개념이다. 성희롱은 피해자의 주관적인 감정을 개념요소로 하고 있는데, 그 주관적인 감정이 개인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사회적 경험에 따라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는 점이다.
그래도 교육은 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의 교육이 효과적일까.
대전제 : 성희롱인지 아닌지 기준이 필요하지만, 기준을 명확하게 정하기 어렵다
소전제 : 성희롱에 관한 재판, 징계 절차에서 게임의 룰은 가해자에게 불리하다(성희롱에 관한 재판이나 징계 절차에 아예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결론 : 그러므로 성에 관한 내 행위의 기준은 가장 보수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방법 : 나만의 대체어를 설정해두고 연습한다
우선 개념이 정리될 필요가 있다. 성희롱과 구분되는 성폭력의 개념부터 정리한다. 성폭력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등 현행법상 범죄로 형사처벌될 수 있는 강간, 강제추행 등의 행위를 말한다. 성희롱은 성폭력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성희롱에 대해 "업무, 고용, 그 밖의 관계에서 공공기관(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초ㆍ중등교육법」 제2조, 「고등교육법」 제2조와 그 밖의 다른 법률에 따라 설치된 각급 학교, 「공직자윤리법」 제3조의2제1항에 따른 공직유관단체를 말한다)의 종사자,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그 직위를 이용하여 또는 업무 등과 관련하여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상 정의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성희롱은 업무, 고용, 기타 관계에서 성적 언동 등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굴육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그로 인해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그래서 길가던 모르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성희롱을 하더라도 어떤 법적인 조치를 하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공공연하게 성희롱을 했다면 성폭력 범죄가 아닌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는 경우는 예외로 하고, 성희롱에 대해서는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그 내부의 규율에 따라 징계를 하게 된다.
성희롱의 개념 중 "성적 언동"에 대해 개념 정의가 있다. 대법원은 "남녀 간의 육체적 관계나 남성 또는 여성의 신체적 특징과 관련된 육체적, 언어적, 시각적 행위로서 사회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추어 볼 때, 객관적으로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행위"를 "성적 언동"이라 말한다(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등 참조). 가끔 성희롱은 언어적인 것으로만 한정해서 이해하는 경우가 있지만, 불필요한 신체접촉, 음흉한 시선 처리 등도 성희롱에 해당될 수 있다.
성희롱을 판단하기 가장 어렵게 하는 부분이, "성적 굴육감이나 혐오감"이다. 그나마 대법원은 주관적인 성적 굴육감이나 혐오감으로는 부족하고,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도 객관적으로 성적 굴육감이나 혐오감을 느낄만한 표현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렇게 보아도 쉽지는 않다. 우리 각자를 포함해 우리 주변의 사람들 모두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들인데, 그 사이에서도 성희롱이다, 아니다의 판단에 차이에 생기기 때문이다.
사례를 한 번 살펴보자.
1. 남자 상급자가 사무실 에어컨을 끄고 자리로 돌아오다가 남자 하급자에게 "너는 안 춥냐"라고 말하면서 그 사람 목덜미에 손등을 갔다 댔다. 성희롱으로 감봉 1월의 징계처분을 받았는데, 행정소송 1심에서 징계가 취소되었다. 법원은 성희롱까지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2. 여자 하급자가 운전하면서 주차 자리를 보고 있는데, 조수석에 앉은 남자 상급자가 기어봉에 손을 올려두었다가 후진을 하려고 기어봉을 잡는 여자 하급자와 3초 정도 손이 접촉되었다. 이와 유사한 두 번의 행위가 추가되어 남자 상급자는 강제추행으로 기소되었는데 법원에서는 무죄가 선고되었다. 징계를 받았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아마 징계절차도 진행될 것이다. 남자는 뒷자석에 다른 동료가 타고 있었고 성적 의도 없이 장난이었다고 진술했다.
3. 남자 상급자가 여자 하급자에게 "확찐자"라고 놀리면서 손가락으로 겨드랑이쪽 등을 찌른다. 감봉 1월로 징계처분을 받고, 법원에서도 그 판단이 유지되었다.
징계에서는 성희롱이 인정되었다가 행정소송에서는 인정되지 않기도 하고, 검사는 유죄라고 보아 기소하지만 재판에서는 무죄가 나오기도 한다. 우리 각자가 이 사례들의 당사자라고 생각해보자.
1번 사례에서 목덜미에 손을 댄 사람은 성적 의도보다는 그 사람은 춥지 않은지 몸의 온도를 체크해보려는 의도가 커 보인다. 하지만 목덜미 주인은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성적 굴육감이었을지는 글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동성간 스킨쉽에 대해 세대별로 차이를 보인다는 통계도 있다. 2030세대는 4050세대에 비해 동성간 스킨쉽을 친밀감의 표시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2번 사례에서는 여성들이 운전강습을 받을 때에도 자주 겪는 일이다. 성적 의도도 없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짖궃은 장난이었다고 볼 여지도 있다. 여전히 기어봉 주인은 기분이 나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분이 성적 굴육감일지는 글쎄.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3번 사례는 코로나 때 유행한 표현이다. 확 살이 쪘다는 뜻인데, 외모에 대한 평가이므로 성희롱에 해당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웃고 넘길 수도 있는 표현이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영역을 설정해두고, 사람마다 타인과의 거리감이 다르다. 그 타인이 누구인지에 따라서도 그 영역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가까이 다가서서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은 멀찍이 떨어져서 이야기하는 것이 편한 것이다. 성희롱은 그런 면이 크다.
이렇게 성희롱은 판단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상대방은 성희롱이라고 느끼더라도 행위자는 장난이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고, 외모에 대해서도 일상적인 관심 표명이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변명이 아니라 정말 누군가의 어깨 위에 붙은 머리카락을 모른척 하지 못하고 떼줘야 되는 사람이 있다. 오늘따라 얼굴이 화사한 그 사람의 외모를 진심으로 칭찬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칭찬이 누군가에게는 과도한 관심이 되고 심하면 불쾌감이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적 관심이 누군가에게는 성적 불쾌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성희롱은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성희롱 예방교육은 그 점을 대전제로 하고 출발해야 한다. 글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
소전제는 다음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