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닝피치 Mar 14. 2024

부산여행 3

아무 단어 시리즈 9

 몸도 마음도 가벼웠던 30대 초반까지 나는 여행을 참 열심히 다녔다. 1월이 되면 여름휴가를 위한 비행기표를 미리 예매해 놓아야 안심이 되었고, 디데이를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6개월이란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기다림의 시간도 참 설레었는데 막상 여행당일이 다가오면 짐을 챙기느라 감상을 할 여유조차 없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아이를 낳기 전 여러 나라를 가봤던 경험은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한 행운이었다. 아무리 여행을 좋아해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틈만 나면 얼굴이 시뻘게지는 아기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건 절대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각자 추구하는 방향성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데엔 나의 첫 해외여행이 큰 계기가 되었다. 지금으로선 이해가 되지 않은 일들 투성이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일들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었다. 인터넷 카페에서 인연을 맺게 된 언니들과 40일 가까이 긴 여행을 떠났었는데 서로의 취향이나 성격은 거의 몰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우린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철저히 낯선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서로를 알아가는 데엔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일주일쯤 지나서부터였을까. 서로가 꿈꿨던 여행이 다르다는 걸 우린 서서히 느끼고 있었다. 아침 메뉴부터 한 명은 계란 완숙을, 한 명은 스크램블을, 한 명은 반숙을 선택했고, 여행지를 다닐 때면 한 명은 관광명소와 쇼핑을, 한 명은 유유자적함과 체험을, 한 명은 미술관과 먹는 걸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는 각자 흩어지기도 다시 만나기도 했다. 


그동안의 여행에서 음식만큼은 그래도 꾸준히 챙겼던 것 같은데 이번 부산 여행에서의 실적은 비루하기 짝이 없다. 내가 부산을 떠올리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건 바로 '피자'였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던 사실은 2박 3일이란 시간은 생각보다 굉장히 짧다는 점이었다. 나는 마지막날까지 피자 집 근처도 닿지 못했다. 아이와의 여행에서 맛있는 음식까지 챙기기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첫날 저녁엔 이동의 피곤함 탓인지 아이는 한 발자국도 나가려 하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우리에겐 핸드폰으로 선택만 하면 집 앞까지 오는 배달이라는 편리한 방법이 있지 않은가. 나는 난생처음 여행지에서 배달을 시켰고 30분 만에 문 앞에 안전하게 돼지 국밥이 도착해 있었다. 뜨끈한 돼지국밥에 부추를 양껏 넣고 밥을 말아먹으며 생각했다. '내일은 꼭 맛집에 가겠어!하지만 전 날의 다짐과는 무관하게 나는 또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점심엔 햄버거를 포장해 와서 먹었고, 저녁엔 또다시 생선구이를 배달해서 먹었다. 그래도 그때까진 부산을 떠나기 전 피자만 먹고 가면 된다고 위로할 힘은 있었다. 


 마지막 날이 되었다. 아침부터 빗방울이 똑똑똑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린 우산을 챙기며 예약을 해둔 캡슐 열차를 타러 가기 위해 분주했다.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아이의 걸음을 더욱 느리게 했다. 결국 부산에서의 최후의 만찬은 급하게 들린 감자탕 집이었다. 비바람 속을 헤치며 해운대역으로 가던 중 아이가 급하게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요청을 했고, 아무 가게나 불쑥 들어가 버린 것이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감자탕 집이라는 걸 알게 된 나는 허탈한 심정으로 물어보았다. 

"여기 맵지 않은 음식이 뭔가요?" 

"불고기요."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한 점원분이 친절하게 대답해 주셨다.

배가 출출했던 탓에 아이와 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불고기를 한점 집으며 생각했다. 

'이것 또한 추억이겠지.'  

다음엔 부산에서 열흘 머물기로 약속하며 아이와 새끼손가락을 꼭 걸었다.



작가의 이전글 부산여행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