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cerulean blue
Aug 23. 2019
월요일에 지원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공고가 뜨지 않을 시기여서 이게 웬 행운이지, 하며 떨어지더라도 지원해보자 싶었다. 이력서를 보내고 묘한 설렘과 불안함이 느껴졌는데 그 불안함의 원인을 몰랐다. 아니,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그리고 오후에 울어서 눈이 짓무른 아이를 만난 순간 -왜 그게 스쳤는지 모르겠지만- 머릿속에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떠올랐더랬다.
교과서에 실린 단편 소설이기 때문에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난하고 무뚝뚝한 김첨지가 아픈 아내를 두고 일을 나가 유난히 일이 잘 풀려 돈을 많이 벌게 된 어느 날, 친구와 술자리까지 마치고 아내가 먹고 싶다고 하던 설렁탕을 사들고 집에 왔는데 아내는 이미 죽어 싸늘하게 식어있더라는 내용이다.
그 당시에는 시험용으로 접근하느라 시대적 배경이 어떠하고 제목이 내용과 반대라서 반어적인 효과를 준다... 등등으로 배웠던 것 같은데 이번에 내 머리를 스친 건 김첨지가 돈을 많이 벌면서 느낀 '불안함'이었다.
선생님의 이력서가 마음에 든다, 면접을 보고 싶다 라는 전화를 받고 다시 한번 김첨지가 떠올랐다. 저녁 식사를 마친 직후였는데 나는 면접을 거절해야만 하는 상황에 화가 났고 그 화가 향할 방향을 잃어서 나에게 향했다.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이 바보 같다고 느꼈다.
지온이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일자리를 놓친 것을 아쉬워하는 내가 이중인격자처럼 느껴졌다. 그것도 바로 어제 그제의 일이었는데 말이다. 이력서를 보내면서 느낀 불안함이, 아 이것이 나에게 행운으로 돌아와도 내가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마음에서 출발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 결국 저녁 먹은 게 체했다. 그냥 인정해도 된다는 거 안다. 아니 인정해야 한다.
엄마도 사람이고 욕구가 있고 엄마가 되기 전에 결정과 선택을 할 수 있는 멀쩡한 사회인이었는데 다른 사람이 나처럼 생각한다면 진심으로 그래도 괜찮다고 위로할 거면서 왜 유독 나는 '내가 되어야 하는 좋은 엄마'의 기준을 높이 잡아놓고 있는지 왜 엄마의 희생을 디폴트로 잡아놓고 있는지 의아하다.
...... 이렇게 머릿속이 복잡해서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싶어서 조용히 커피 한 잔이 간절했지만 저녁 먹은 걸 대충 치우고 신랑은 다시 일하러 가고 나는 아이와 놀이터를 다녀왔고 씻겼고 밥을 다시 찾길래 또 차려주었고 동화책을 읽어주고 재웠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알리 없는 딸아이는 잠들기 전까지 틈만 나면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리고 눈을 마주치면 "난 엄마가 정말 조아"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아이에 눈에 비친 나를, 아이의 입으로 말해주는 엄마의 모습을, 그 마음을 그냥 그대로 다 믿어도 될까. 그리고... 언젠가 선생님, 이라는 호칭을 다시 들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