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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rulean blue Mar 17. 2021

땀을 흘리는 아이는 사랑스럽다.

-하원 후 집으로 곧장 갈 수 없는 엄마의 기록

놀이터에서 땀을 흘리며 노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일을 즐겁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놀이터 주변을 걸으며 스트레칭도 해보고 따뜻한 햇빛에 광합성도 해본다. 주근깨가 생길까 봐 걱정하는 마음은 5초면 금세 잊힌다. 마음은 평온하고 눈을 아이를 쫓느라 바쁘다.


또래보다 키도 작고 몸무게도 적었던 아이. 지금도 영유아 검진을 하면 백분위에서 반에도 못 미치는 순위를 받아오지만 그건 단순히 숫자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하지만 아이가 네 살이 되기 이전에는 입 짧은 아이의 입맛을 돋워줄 다양한 요리를 못하는 나의 탓이라고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언어 발달이 뛰어난 만큼 아이의 신체발달은 반비례했다. 모든 대화가 가능했고 어휘력도 뛰어났으며 어딜 가도 말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숨겨진 의미까지 파악할 수 있었지만 두 발 모둠 뛰기가 되지 않았던 네 살의 아이는, 놀이터에서 또래랑 놀아도 늘 뒤처졌다. 줄지어 달리며 놀다가 선두에 있는 아이가 반환점을 찍고 돌아올 때 겨우 절반을 달려가다 그마저도 넘어져 울기를 반복하게 되자 아이는 놀이터에 가면 늘 그네만 탔다. 그네를 타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리는 아이들이 많은 날에는 20분을 기다려 3분도 못 타고 눈치 보며 내려온 적도 많았다. 


가정보육을 하는 동안, 미세먼지가 아주 심하거나 비바람이 부는 날이 아니면 거의 놀이터에 나갔다. 오전 시간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어린이집, 유치원을 가기 때문에 또래를 만나 체력을 비교당해 좌절할 일이 없었다. 마음껏 그네를 탔다. 앉아서 타다가 서서도 타보고 배를 깔고 엎드려서도 타보고 그네를 힘차게 밀고 당겨보기도 했다. 점점 체력이 좋아지고 익숙해진 아이는 놀이터를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를 하기 시작했다. 경사진 나무판을 줄 잡고 올라가는 것을 엄두도 못 내는 아이에게 넌 할 수 있다고 엉덩이를 받쳐주며 수 십 번 오르락내리락하게 해 주었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올 때 가속도 붙는 게 무서워 출발지점에 앉아있다가 결국 계단으로 내려오는 아이를 위해 늘 미끄럼틀 아랫부분에서 쭈그리고 앉아 아이를 받아주었다. 많이 뛰고 온 날은 다리가 아프다며 주물러 달라고 하기도 했고 그때마다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여느 때처럼 아이의 다리를 주물러주는데 허벅지가 평소랑 다르다고 느꼈던 일이 있다. 다리가 점점 탄탄해지고 -덩달아 엉덩이도 볼록해지고. 아 이건 정말이지 사랑스러운 부분이다- 어느 날인가 드디어 모둠 뛰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달리기도 제법 빨라져 자신이 '갈리미무스'같다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서 수긍하는 는 리액션을 보이는 것은 엄마의 기본이자 필수 자질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어제 놀이터에서 바라본 내 아이의 모습은 한마디로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어디에 장애물이 있는지 알고 있고 어느 구간에서는 속도를 마음껏 내어도 괜찮은지 다 체득하고 있었다. 땀으로 젖어 이마에 붙은 앞 머리카락과 뒤로 길게 흩날리는 머리카락, 땅을 힘차게 딛고 차오르는 발, 마스크로 얼굴의 반 이상이 가려져있지만 한껏 상기된 얼굴. 놀이터에서 자주 만나던 친구를 우연히 만나게 되어 너무 신이 난 아이는 그 친구와 함께 소리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뛰어다녔다. 잠시 음료를 마시려고 벤치에 앉는 순간에도 아이는 나에게 등을 보이고 친구와 숨을 헉헉대면서도 웃었다. 


기분이 좋으냐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아이는 건강하고 행복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의 차갑고 따뜻한 볼과 달큰한 땀 냄새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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