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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rulean blue Feb 04. 2022

온 정성과 힘을 다하는 삶

임솔아 <최선의 삶>







나는 최선을 다했다. 소영도 그랬다. 아람도 그랬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나는 이제 읍내동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읍내동을 벗어나고 싶었던 나의 소원도 이상한 방식으로 도래해 있었다. 언제 그칠지는 알 수 없지만, 쉽게 녹아 사라지진 않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상하고, 무섭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좋은, 함박눈이었다. (174)



‘최선’은 무엇일까?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이렇게 정의한다.

1. 가장 좋고 훌륭함, 또는 그런 일

2. 온 정성과 힘


책을 읽은 것은 이미   전이다. 두껍지 않은 책이었고,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라 기분 좋게 집어 들었지만 책을 읽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호흡에 읽을  없을 만큼 마음이 무거워졌고 무거운 숨을 고르며 읽어야 했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최선의 삶이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았지만 충격이 제법 컸나.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읽었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었던  같다.




최선을 다하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나는 어떤 최선을 다 했던가. 그 최선이 꼭 긍정적인 의도를 지니고 시작되지도 않고 그 과정 역시 아름답지 않을 수 있으며 결과의 모양새도 장담할 수 없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나의 최선들은 어떤 것들이었나. 계속 되뇌어본다.


발가락에 피가 통하지 않아 하얗게 질리도록 발돋움을 는 것도 최선의 모습이다.  높은 곳에 닿으려고 팔을 휘휘 저어도, 목에 핏대가 서고 눈알과 이마까지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힘을 주어 당겨도 닿지 않는 곳이 있다. 그것에 닿기 위해 몸부림을 쳐보는  역시 최선이라고   있는 것이다.

몸에 물방울이 하나 남지 않을 만큼 눈물을 쥐어 짜내고 주먹  손으로 무언가를 힘껏 내리치다 빗맞아 손목이 시큰거려 웅크리고 앉아 아픈 손을 주무르며  다문 잇새로 욕을 내뱉고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엇이 무엇인지 몰라 울분에  고함을 지르는 것도 살기 위해서, 살고자 하는데 살아나갈 방법을 몰라  정성과 힘을 다하는, 최선이었던 것이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구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이 하등 쓸모없는 잉여인간처럼 느껴져 목울대가 꽉 눌려 아플 때까지 눈물을 참으며 소리 없이 울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괴로워하며 자신을 학대해도 도무지 일어설 방법을 찾지 못해 나 자신을 세상에서 지워버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에 골몰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우울증이라고 쉽게 부를 수 있지만 이제는 알겠다. 그것은 나의 몸부림이었다. 처절한 몸부림. 살고 싶다는, 살게 해 달라는. 그것이 나의 최후의 그리고 최선의 발악이었던 것이다. 기껏해야 새끼손가락만 한 빙어를 뜰채로 잡아 올려도 그렇게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대지 않던가.


나는 이제 어쩌면, 다른 방식의 최선의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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