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과 따뜻한 햇살 사이에서 머무는 시간
올해는 이상하게 봄이 늦게 오는 것 같다. 시절이 그래서인지, 아니면 정말 그런 건지. 매화꽃이 피는 걸 보고서야, 아, 이제야 봄이 오는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면 작년에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서늘한 날씨가 오래 가고, 봄은 짧게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나무가 많은 곳에서 있어서 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건 다행이다.
우리나라의 겨울은 본래 길지만, 요즘 날씨는 정말 종잡을 수 없다. 오늘 새벽엔 눈이 내렸고, 낮에는 햇살이 반짝였다가 다시 비가 쏟아졌다. 그러다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이 맑게 갰다. 주말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햇살이 거실 깊숙이 들어왔다가, 다시 비가 내리치고, 또 금세 맑아진다. 마치 날씨가 심술이라도 난 듯, 자꾸 감정을 뒤흔든다.
텀블러에 담긴 아이스커피를 천천히 마시다 보면, 괜히 종이컵에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싶은 기분이 든다. 요즘처럼 춥다가 따뜻해지는 날씨엔 그런 생각이 자주 떠오른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리필도 해 마시고, 다 마신 컵을 이로 살짝 찌그러뜨리는 상상. 그러다 문득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봄 냄새가 나는 것 같다가도,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날은, 차가운 커피와 따뜻한 커피 사이 어딘가에서 마음도 같이 저울질을 한다. 봄이 오려는 이 시점, 겨울의 끝에 서 있는 지금, 우리는 불안하고 또 기대하며 다음 계절을 기다린다. 차가운 커피를 마시며 문득, 따뜻한 커피가 그리워지는 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