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ㅁㅁㅁ' 한테 꽃 선물 받아봤다
이 따뜻한 선물을 받은 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고등학생 때였는지, 대학생 때였는지 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걸 왜 어딘가에 기록해놓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당시 나는 무슨 일 때문인지 아빠에게 삐져있었다. 우리 아빠는 내가 뭘 하든 오냐오냐 해주는 분이어서 도대체 내가 아빠에게 삐질 일이 뭐가 있었을까 싶지만, 하여튼 나는 아빠한테 삐져서 대화를 거부하던 상황이었다. 아빠도 그런 냉전 상황이 당황스럽고 어떻게든 풀고 싶으셨는지, 어느 날 배달을 다녀오는 길에 벚꽃 가지를 꺾어와서 나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건네주셨다. 그리고 내 마음은 눈 녹듯 따뜻함에 녹아내렸다. 지금까지 살면서 받은 선물 중 가장 순수하고 따뜻하고 감동적인 선물이었다.
아빠가 그 벚꽃가지를 꺾어 내게 주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하니 감동을 넘어 애틋하고 눈물이 나기까지 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때가 완연한 따뜻한 봄은 아니었고 약간 쌀쌀한 공기가 서려있는 봄이었던 것 같다. 아빠는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갔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길가에 있는 벚꽃 나무를 보고 내가 좋아할 것이라 생각해서 멈춰 섰을 것이다. 그리곤 오토바이에서 내려 벚꽃나무로 가서 가장 예뻐 보이는 꽃들이 있는 가지를 찾아 꺾어서, 망가질세라 조심스레 들고 와 오토바이에 달린 바스켓에 넣고는, ‘ㅇㅇ이가 좋아하겠지’, ‘이걸 주면 ㅇㅇ이 기분이 풀리겠지’ 생각하며 집으로 슝슝 달려왔을 것이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 꽃가지를 집어 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장난스럽게 "ㅇㅇ아~" 하고 부르며 와서는 그 해사한 미소와 함께 ‘꽃이 폈어’ 하며 예쁜 분홍빛 벚꽃을 건넨 것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아빠의 그 마음과 선물이 감동적이다. 아빠에게 다시 물어보아야겠다. 나에게 벚꽃가지를 꺾어다 준 그날을 기억하는지, 그때 우리에게 무슨 사소한 다툼이 있었던 건지, 꽃은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꺾어온 건지 물어봐야겠다. 우리 아빠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어서 아마 나보다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감동을 받은 일이 한 번 더 있었다. 이번엔 엄마다. 우리 엄마는 감성보다 이성이 앞서는 사람이어서 엄마에게 낭만적인 선물이나 멘트를 기대한 적은 없는데, 엄마도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이란 것을 깨달았다.
나는 생일날 부모님께 선물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다. 원하는 선물을 사라고 해서 산 적은 있어도 부모님이 직접 준비하거나 직접 사 온 선물을 받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생일날 오후에 엄마가 갑자기 나를 부르며 ‘이것 봐!’ 하시길래 가봤더니 꽃다발을 내미셨다. 분홍색 장미와 보라색 안개꽃이 예쁘게 어우러진 작은 꽃다발이었다. ‘설마 엄마가 이걸 준비했다고? 도대체 이걸 어디서 언제 사 왔지?’하는 생각에 어버버 하고 있는 나에게 엄마는 ‘우리 딸 생일 축하해’라며 감동 멘트를 또 한 번 날리셨다. 엄마의 꽃다발은 그 누구로부터 받은 꽃다발보다 더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알고 보니 옆집에 꽃집 하는 아주머니가 사는데, 아침에 차에 꽃다발을 싣는 것을 보고 ‘그거 저한테 파세요’를 시전 했다고 한다. 역시 우리 엄마는 거침이 없는 K-아줌마. 들이대면 안 될 것은 없다. 이것도 아빠의 꽃가지 선물처럼 엄마가 나에게 이 꽃다발을 줄 생각을 했을 그 과정이 감동적이었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차에 싣는 꽃다발을 보면서 ‘우리 딸 생일에 꽃다발 주면 감동 먹겠지’하고 생각했을 그 순간이 정말 참 따스하다. 곱씹을수록 애틋한 감동이 전해지는, 그 감동이 선물이 되는 선물.
이렇듯 나는 '부모님'한테 꽃 선물 받아봤다. 꽃 선물은 남자한테나 받아보는 건 줄 알았는데, 부모님한테 꽃 선물을 받으니까 그 누구한테 받는 것보다 더 낭만적이고 애틋하고 행복하다. 나도 나중에 자식이 생기면 꼭 이렇게 감동적인 꽃 선물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