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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뮤 Dec 24. 2023

마법의 크리스마스 장식

-단편소설-

일 년 중 거리가 가장 화려해지는 계절,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사만다는 사계절이 아니라 오계절이 있다고 믿는 쪽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크리스마스. 한 해가 끝날 무렵에 시작되는 크리스마스라는 계절은 사만다에게 희망과 기쁨을 안겨 주었다. 그런 ‘크리스마스 정신(Christmas Spirit)’으로 사만다는 한 해를 마무리하곤 했다. 힘들었던 해에는 ‘다 괜찮다, 열심히 했다, 잘했다’라는 금빛 위로를, 즐거웠던 해에는 행복했던 날들에 빨강과 초록빛의 기쁨을 느꼈다.


크리스마스 정신을 한껏 즐기기 위해서는 크리스마스트리와 다양한 장식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12월이 되면 여기저기서 예쁜 장식을 구하러 다니는 게 그녀의 취미였다. 그녀는 특히 공장에서 찍어내는 깔끔하고 일률적인 장식보다 어설프지만 거리의 예술가들이 손수 만든 장식들을 찾아다녔다. 예술가들이 하나하나 직접 그림을 그린 장식들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는 특별함을 주기 때문이었다. 작년에는 하드먼 아트센터 거리에서 좋은 물건들을 많이 건졌는데, 올해는 친구가 귀띔해준 트리버 거리에 가보기로 했다. 트리버 거리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구시가지였지만 최근 값싼 임대료 덕을 보기 위해 젊은 사장님들이 새로 오픈한 예쁜 상점들이 많다고 들었다. 설레는 마음에 사만다는 서둘러 네이비색 더플코트를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집 앞 버스정류장에 다다랐을 때, 깜빡하고 머플러를 두고 나왔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407번 버스의 불빛이 보였고 집에 다시 다녀올 생각은 포기하기로 했다. 이 정도 추위쯤이야, 그리고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군, 하며 그녀는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햇빛이 창가로 쏟아지는 늦은 오후, 버스 안에서 보는 창밖의 크리스마스 풍경은 마치 느긋한 재즈 음악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여유와 낭만을 주었다. 그리고 이십 여 분이 지났을까, 창밖은 금세 핑크빛 노을로 물들고 있었고 버스는 트리버 거리에 다다랐다. 버스 안의 그 많은 사람들 중 아무도 내리지 않는 정류장에 혼자 내렸을 때 그녀는 조금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지만, 코너를 돌아 상점가로 들어서자 그래도 사람들이 제법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만다는 자신이 찾는 크리스마스의 보물이 어느 상점에 있을까 기대에 부풀어 두리번거렸다. 그때 상점가의 중간쯤에 작은 가판대를 펼치고 있는 산타모자를 쓴 소년 이 보였다. 그녀는 이 거리의 모든 상점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둘러볼 계획이긴 했지만 왠지 저 작은 가판대에 자신이 찾는 물건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가보니 산타 모자를 쓴 점원은 소년이라기보단 작은 체구의 성인 남자인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추우시겠어요. 고생이 많으시네요!”

“안녕하세요! 괜찮아요. 저는 추위를 잘 타지 않거든요. 추위에 익숙하달까요. 크리스마스 장식 한 번 보시겠어요? 여기 있는 건 다 제가 직접 만든 거랍니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마법이 깃든 장식들이에요!”

‘마법’이라는 단어는 사만다를 그 가판대의 모든 물건을 사게 만들 수도 있는 그야말로 마법의 단어였다. 그녀는 마법과 산타와 엘프 같은 것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한다고 믿고 싶어 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와, 마법이요? 멋진데요! 이 장식들에 어떤 마법이 깃들어있나요?”

“장식마다 다 다른 마법을 걸어 놓았어요. 이 빨강 반짝이 볼장식은, 보세요, 기쁨(JOY)이라고 쓰여있죠? 당신이 한 해를 지내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을 떠올리게 해 줄 거예요. 또 이 눈이 하얗게 덮인 집 모양 장식도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이 장식은 가족들이 크리스마스날 모두 모일 수 있게 해 줄 거예요. 이 장식 바닥에 보면 ‘I’ll be home for christmas’라고 적어놓았어요. 크리스마스 캐럴처럼 그리운 가족이 집에 오게 될 거예요!”

“와, 정말 멋져요! 그럼 이 성게같이 생긴 별 장식은 어떤 마법이 들어있나요?”

“오,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저는 이 장식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이건 한 해동안 당신이 가장 아름답게 빛났던 순간으로 당신을 데려다줄 거예요. 이 장식을 구매하시면 감히 후회하지 않으실 거라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정말로요. 특히 당신의 마음.. 아, 아니 눈! 눈을 보니 알 수 있겠어요. 이걸로 가져가세요!”


사만다는 남자가 장식에 마법을 걸어놓았다는 이야기가 손님을 홀리는 영업용 멘트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장식들을 보면서 한 해를 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장식의 디자인이나 색감이 빈티지하면서도 고급스러워 보였고, 어딘가 마음을 사로잡는 신비한 느낌이 드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 사람은 예술 전공자가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며 사만다는 남자가 만든 장식을 종류별로 하나씩 다 사기로 했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다 하나씩 주세요! 정말 멋지네요. 이렇게 예쁜데 마법까지 들어있다니! 그만큼 가격도 비싸려나요? 하지만 상관없어요. 어디 가서 이런 아이들을 구하겠어요! 오늘 제가 참 운이 좋네요.”

“와, 하나씩 다 사는 분은 처음이에요! 그럼 덤으로 장식 하나 더 드릴게요. 이건 막대사탕 장식인데, 한 해의 가장 맛있었던 음식을 다시 맛볼 수 있게 해 줄 거예요. 제가 정말 정말 아끼는 건데 손님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올해 크리스마스트리가 정말 기대되네요. 많이 파세요!”

“단언컨대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크리스마스가 될 거예요. 안녕히 가세요!”


사만다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른 상점을 향해 몇 걸음 옮겼을 때, 남자가 무언가를 잊었다는 듯이 뒤에서 그녀를 불러 세웠다. 남자는 누구라도 들을세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마법 장식 사용법을 깜빡하고 알려드리지 않았네요! 손님처럼 순수한 눈빛을 가진 사람들한테만 사용법을 알려드리게 되어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흔치 않아서, 또 오랜만에 매출을 올렸더니 제가 흥분해서 깜빡했어요. 이 마법장식을 크리스마스 트리에 매달고, 아니, 어디든지 걸어놓기만 하면 돼요. 그 상태에서 빤히 쳐다봐요. 시간은 한 10초에서 30초 정도? 장식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당신 마음에 달렸어요. 그러니까 가능한 다른 사람들이 없을 때 하시는 걸 추천할게요. 마법이 쓰였는지는 그 순간 당신이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거예요. 그럼 행운을 빌어요! 메리 크리스마스!”

사만다는 이 남자가 마법에 참 진심이구나, 엘프라도 되는 건가 생각하며 싱긋 웃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환하게 웃으며 화답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돌아선 사만다는 마법장식이 들은 쇼핑백을 한 번 쳐다보고는 남자가 말한 마법이 설마 진짜일까 생각하며 쇼핑백을 든 손에 힘을 한 번 꽉 쥐었다. 그리고 이내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거리의 불빛 사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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