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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전달자 정경수 Nov 25. 2024

세상의 속도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느리게’ 생각한다.



인내심의 한계에 도전하게 만드는 연주곡이 있다고 해서 들어봤다. 

에릭 사티의 <벡사시옹(Vexations)>이라는 연주곡이다. 

음악가이자 편집자인 올리버 콘디는 에릭 사티의 <벡사시옹>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연주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도 지쳐 쓰러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어 줘야 한다.”



난 클래식을 잘 모르지만, 좋다고 하는 노래를 찾아 듣는다. 

그리고 인내심, 근성, 끈기, 이런 것들은 평균 이상이라고 자부한다. 그래서 들어봤다. 

유튜브에 있는 이 곡은 재생 시간이 7분 42초라서 충분히 들을 만하다. 하지만 원곡은 들을 자신은 없다. 

1890년대에 만든 이 곡은 짧은 반음계 선율을 840번 반복하는 피아노곡으로 전체를 연주하는 데는 28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 단조로운 연주를 28시간 들으면 짜증이 날만 하다.

정확히 계산해 본 것은 아니지만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는 7분 42초 버전이 수백 번 반복 연주하는 게 28시간 분량의 원곡일 것이다.


음악가 혹은 음악 애호가들은 연주곡을 추천하면서, 온전히 감상하려면 오프닝부터 피날레까지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오로지 듣기만 하라고 권한다. 연주곡을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연주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다른 일을 하면서 음악을 들으면 시각 또는 여러 가지 감각으로 전해지는 신호 때문에 연주에 침잠하지 못한다. 


몇 년 전에 예술의 전당에서 피아니스트와 조향 전문가의 ‘협연’이 열린 적이 있다. 예술의 전당에서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것은 특별하지 않다. 그런데 ‘조향사가 함께 한다’에는 호기심이 생겼다. 당시에 피아노 공연 관람객은 듣는 감각과 향을 맡는 감각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했다. 공연을 관람하지 않았지만, 발랄한 곡을 연주를 하면 그와 생동감 있는 향으로 공연장을 채우고 묵직한 곡을 연주를 하면 그 느낌에 어울리는 향으로 공연장을 채웠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음식물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 연주장은 저마다 독특한 향이 있다.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는 방향제를 뿌려도 고소한 팝콘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다. 

실내 공연장은 공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다른 감각을 자극하는 요소는 배제한다. 

관람객이 공연에만 집중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든다.


공연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도 2~3시간을 넘는 공연은 집중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긴 공연은 ‘인터미션’을 갖는다. 잠시 휴식한 뒤에 관람객은 다시 공연에 집중한다. 

하지만 2~3분 정도의 단조로운 연주가 840번 반복되는 음악은 집중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꽤 오래전에 작고한 존 케이지의 <Organ2/ASLSP, As SLow aS Possible)>는 제목처럼 최대한 느리게 연주하는 곡이다. 《모든 순간의 클래식》에는 이 곡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독일 할버슈타트의 성 부르하르디 성당에 있는 구식 파이프 오르간이 지금 이 순간에도 <Organ2/ASLSP>를 연주하고 있다. 실제로 얼마나 느리게 연주해야 하는지 작곡가가 명시하지 않았으므로, 이 곡은 단 몇 분 만에 끝낼 수도 있고 거의 영원에 걸쳐 연주될 수도 있다. 성 부르하르디 성당에서는 거의 매년파이프 오르간 바람통의 관을 더하거나 빼서 음을 몇 개 바꾸는 식으로 연주를 지속하고 있다. 2640년에 끝날 예정인 이 공연 중간에 휴식시간을 둘지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올리버 콘디, 모든 순간의 클래식, 앤의서재, 2022, 43쪽


앞으로 600여 년이 지나야 <Organ2/ASLSP>의 연주가 끝난다. 연주자에 따라서 연주하는 속도는 다르다는 언급이 있지만 부르하르디 성당에서는 2640년에 끝날 예정이라고 하니 몇 세대가 지나야 이 곡의 엔딩을 들을 수 있다. 세대 후에나 곡의 엔딩을 들을 있다. 


'느림'과 적정한 속도에 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연주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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