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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전달자 정경수 Nov 27. 2024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잘 가르친다

지식의 저주

나는 요즘 두 개의 강의를 듣고 있다.

한국 문학에 관한 강의와 책 읽기와 글쓰기에 관한 강의다. 일반인 대상 강의다.


한국 문학 강의를 하는 강사는 박사 학위를 받은 평론가다. 

강사는 매시간마다 “제가 〇〇〇으로 박사 논문을 썼는데요”, “제가 〇〇일간지에 □□□로 칼럼을 여러 편 썼죠”라는 말을 한다. 공교롭게도 한국 문학 강의 시간에 질문을 자주 하는 60대 수강생은 질문 중간에 “내가 공직에 있어서 아는데”라는 말을 넣는다. 

한국 문학 강의를 들은 지 한 달쯤 지났는데 모든 수강생이 강사가 쓴 논문과 칼럼 주제인 〇〇〇과 □□□을 확실하게 인지했다.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됐다. 공직에 있었다는 수강생이 어떤 공직에 있었는지도 조만간 밝혀질 듯하다.


책 읽기와 글쓰기 강의는 일간지 기자가 강의를 한다.

기자 겸 강사는 ‘책’을 주제로 책을 썼다. 수강생들에게 자기 경험을 섞어서 여러 가지를 알려준다. 취재하면서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경험담을 이야기하면서 “현장에 가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을 접한다. 예상하지 못한 것에 핵심이 있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박사 학위를 받은 강사와 기자 경력이 10년 남짓 되는 초보 강사.

두 강사 중에서 귀에 쏙쏙 들어오게 정보를 전하는 사람은 ‘기자 겸 (초보) 강사’다.


기자 겸 강사는 더 많은 이야기를 더 쉽게 전달하려고 애쓴다. 수강생이 질문하면 ‘저도 정답은 모릅니다만 함께 해답을 찾아봅시다’라면서 정말 해답에 가까운 무언가를 찾아낸다.


박사 학위를 받은 강사도 수강생에 질문에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문학 작품을 읽고 저마다 느끼는 것에서 해답을 찾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체로 말만 이렇게 하고 자기가 가진 답을 제시한다. 수강생의 느낌을 공유하는 ‘척’ 하면서 정답에 가까운 해답의 범위를 정해준다.


두 사람의 강의를 들은 내 느낌은 이렇다.

한 사람은 열 개를 알면서 겨우 하나를 제대로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또 다른 사람은 하나만 알면서 열 개를 제대로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박사 학위를 가진 전문가, 혹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실력자가 모두 이런 것은 아닐 것이다.

모두 이렇지는 않지만 대체로 그렇기에 ‘지식의 저주’라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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