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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민우 Jun 08. 2018

우리는 '나'를 사랑할 시간이 필요하다

어쨌든 나이기에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스물다섯 살 정도가 되면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찌질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스스로를 조금은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어른으로 자라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스물다섯이 된 지금 나는 여전히 어리고, 어리석고, 찌질하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은 깨달았다.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으로 이전보다 나은 내가 될 수는 없겠구나. 이를 깨닫는 건 나약한 나에게 좋은 약이 되었다. 딱히 변한 건 없지만 적어도 막연한 기대는 접어둘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내가 언제부터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됐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은 다르다는 사실을 실감했을 때부터 나는 나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 불편함을 느꼈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눈물이 나오지 않았을 때, 집안 어른들에게 너는 애가 왜 그러냐고 핀잔을 들었을 때 나는 스스로가 비주류의 사람임을 깨달았다.


세상에서 비주류로 살아간다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어떻게든 타인과 관계하면서 살아야 하는 삶 안에서 나 이외의 그것도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사실은 생각 이상으로 끔찍하다. 나는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과 비교하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비교당하면서 살아야 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개의치 않게 넘기는 일들이 나 같은 사람들에겐 비수처럼 날아와 꽂힌다. 그렇게 여기저기 비수가 꽂힌 몸뚱이를 보고 있자면 나도 내가 싫어지기 시작한다. 남들은 당연한 듯이 하는 걸 따라 하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스스로가 병신처럼 보인다. "병신, 넌 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야?"


이런 생각이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쯤은 진작에 깨달았다. 사실 나는 말도 안 되는 허상 속에서 혼자 허우적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혼자 애써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는 걸지도.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무도 나를 비주류라 규정하지도, 내가 틀렸다고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실은 난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멀쩡한 사람인데 괜히 중2병 걸린 사춘기 청소년 마냥 비운의 주인공인 척하고 있는지 모른다. 근데 이렇게 마음을 다잡다가도 막상 밖으로 나가서 학교를 가고 알바를 가고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거짓말처럼 다시 실감하게 된다. 내가 비주류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아무도 내게 직접적으로 '넌 비주류야!'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은연중에 그들은 내게 그렇게 이야야기하고 있었다. '걘 원래 재미없는 애예요.', '넌 어떻게 울지도 않니?', '넌 원래 그렇게 말이 없냐?'같은 말들이 철저히 나를 그들과 분리해냈다. 한 번은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털어놓았을 때 한 친구에게서 '그건 니가 인생을 헛살아서 그래.'라는 말을 들었다. 그다지 친한 친구가 아니었음에도 친구의 그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 팠다. 진짜로 아프게. 그렇게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나를 실컷 부정당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세상을 원망하든가, 나를 원망하든가. 난 둘 다 했다. 세상도 싫었고 나도 싫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 좋든 싫든 나는 계속해서 삶을 살아나가야 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괜찮은 어른으로 자라나고 싶은 작은 바람이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주류든 비주류든 어쨌든 나이기에 사랑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막연히 잘 될 거란 기대는 버리고 어떻게든 움직여야 한다. 나를 사랑할 수 있도록. 그래서 나는 지금 글을 쓴다.


우리에겐 스스로를 사랑할 시간이 필요하다. 스스로의 못난 점을 외면하거나 혹은 그런 부분까지 어떻게든 사랑하고 보라는 무책임한 말을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하루가 24시간이듯이 우리에게 우리를 사랑하거나 미워할 수 있는 일정량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스스로를 사랑하는데 쓸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괜찮다는 말이다. 사람에겐 누구나 사랑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빈말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스스로를 예외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움직여야 한다. 뭐라도 찾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직은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도 나를 사랑할 시간이 필요하다. 일단은 내게서 사랑받을 수 있는 뭔가를 찾기로 했다. 찾은 다음에 이곳에 적어놓기로. 생각해보면 이미 휘발되어 공기 중으로 흩뿌려진 나의 기억들 어딘가엔 분명 나를 사랑할만한 기억들도 섞여있을 거다. 내가 나를 실컷 미워하는 탓에 외면해버리고 말았지만. 그래서 앞으로 이어지는 글들에서는 일상에서 느끼는 나 스스로에 대한 감상들을 늘어놓고자 한다. 글은 생각과 달리 휘발되어 사라지지 않으니까. 언젠가 늘어놓은 글들을 되돌아봤을 때 "나 그래도 괜찮은 놈이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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