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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민우 Jul 04. 2018

나는 말수가 적다

세상엔 말 잘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넌 원래 말이 좀 적니?


대체로 나를 처음 보거나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와 처음 시간을 보낼 때면 말없이 조용히 있는 내게 이렇게 묻곤 한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은 특히나 더 그렇다. 실제로 나는 말수가 적긴 하다. 나는 내향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항상 말없이 가만히 있는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말하는 걸 좋아한다.



세상에는 말 잘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닌데

얘네는 말 한마디 안하고 잘만 살더라


내가 어릴 적엔 말 수가 적은 내 성격 탓인지 어른들은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어른들은 말없이 가만히 있는 나를 볼 때마다 답답해하곤 하셨는데 당시 내게 있어서 이 사실은 꽤나 슬픈 일이었다. 몇몇 어른들은 그렇게 소심해서 나중에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겠냐며 어린 나에게 있어 과분한 조언(?)까지 아끼지 않으셨다. 심지어 내가 학교에서 친구는 제대로 사귀고 다니는지를 걱정하시기까지 했으니 그들 눈엔 내가 어떤 아이로 보였는진 굳이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진 않다. 다행인진 몰라도 나는 그들의 걱정처럼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걱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긴 하지만. 말이 적은 게 누군가에게 미움받을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있을 리가 없다. 말 안 한다고 따돌리면 오히려 걔네가 나쁜 놈 아닌가?


여하튼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어릴 때부터 말이 없는 나를 향한 어른들의 지적은 내게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나는 항상 왠지 모를 불편함을 감내해야만 했다. 나는 매번 별 이유 없이 어른들의 눈치를 살폈고 혹여나 내게 무언가를 물어볼 때면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최대한 열심히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그들이 나를 싫어할 것만 같았다.


그들 중 한 분이 내게 말하길 나는 '재미없는 아이'였다. 한 번은 다른 사람들에게 날 소개해야 할 때가 있었는데 어색해서 쭈뼛거리는 나를 보곤 그 사람들에게 '걔는 원래 재미없는 아이니까 이해하세요.(정확하진 않다.)'라고 했다. 별 거 아닌 거 같아 보여도 나한테는 꽤나 상처가 되는 말이었는데, '나'라는 사람을 단정해버리는 말투는 둘째치고 가족으로서 나를 어떤 치부처럼 여기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런 기억들을 가끔씩 회상할 때마다 그 당시 미련하게 듣고만 있던 나 자신과 별생각 없이 그런 말들을 내뱉었을 그들에게 조금은 화가 난다. 그들이 정말 나에게 어떤 악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그런 말들을 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툭 내뱉은 거겠지.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 어떤 깊이 있는 사고 과정이 있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이 내겐 상처로 남았고 그 기억들이 내가 스스로의 자존감을 갉아먹는데 일조했다는 사실이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은 격이다.



애써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밖에서 말이 없는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말 수가 적다는 사실을 별로 문제 삼지 않았다. 아무도 나에게 '넌 원래 말이 좀 적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그들이 내게 말을 걸어줬다. 고등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같은 반에 아는 친구가 하나도 없어 거의 두 달 동안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던 때가 있다. 주변에 하나둘씩 친해지며 어울리는 친구들을 보면서 이대로 진짜 외톨이가 되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걱정했었다. 그런 나에게 말을 걸어줬던 친구들이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내게 인사를 하고 말을 걸어왔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자연스레 멀어져 지금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그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그 친구들이 내게 말을 걸게 만들었던 건 단순한 호기심이었을 수도 있고 혼자 있는 나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별 탈 없이 그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냈으니 우리의 관계가 단순히 일방적인 호의에 의한 관계는 아니었던 건 분명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괜찮은 친구였다. 비록 내가 말 수가 적었을지언정 말이다.


어릴 적에 내게 있어 '말 수 적음'이라는 꼬리표는 마치 '나'라는 한 사람을 완전히 규정해버리는 한 마디였다. 사회적인 통념과 주변 어른들의 분위기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싫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내게는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수많은 단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말 수 적음'은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내게는 눈에 잘 띄지 않을 뿐 좋은 점들이 충분히 존재했다. 생각해보면 말 수가 적다는 이유 하나로 스스로를 미워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었다.


만약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과거의 나에게 찾아가 "애써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다.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고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말을 지어내는 건 미련한 짓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말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좋다. 그게 다른 사람이든 나 자신이든 말이다.


나는 말 수가 적을지언정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고민할 줄 아는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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