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하지 않아도 좋아하고 있음은
어느 날 한 노부부와 함께 올레길을 걸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행은 아니었다. 그저 걷는 속도가 비슷해 우연찮게 서로를 곁에 두고 걸었다. 내가 잠시 쉬고 있으면 노부부가 나를 앞질러가고 노부부가 잠시 쉬고 있으면 내가 노부부를 앞지르는 식으로 우리는 미묘하게 서로를 의식하며(노부부의 안중에는 내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올레길을 걸어나갔다.
처음에는 올레길을 걷는 노년의 두 사람이 부부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나와 마주치고 올레길을 완주하기까지 서로 남인 듯이 멀찍이 떨어져서 걸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항상 할머니의 느린 걸음을 기다려주지 않고 한참을 먼저 앞으로 걸어 나갔다. 가끔씩 벤치에 앉아 휴식을 청할 때도 두 사람 사이에는 항상 사람 한 명 만큼의 공간이 떨어져 있었다. 두 사람 사이의 떨어진 거리가 의미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할머니에 대한 할아버지의 무심함이었을까?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한다는 말 사이
사회심리와 관련된 설문 중 동양인과 서양인이 중요시하는 마음의 차이에 관한 흥미로운 설문 결과가 있다. 설문의 질문은 대충 이렇다.
A 부부와 B 부부가 있다. A 부부는 그들의 부모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자주 전화를 드리거나 방문하진 않는다. 반대로 B 부부는 그들의 부모님에게 연락도 자주 드리고 찾아뵙기도 하지만 형식적인 겉치레일 뿐 마음 깊이는 그들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이때 A 부부와 B 부부 중 누가 더 바람직한가?
설문 결과 동양인의 경우 B 부부가 바람직하다고 답변한 비율이 더 높았고 서양인의 경우 A 부부가 바람직하다고 답변한 비율이 높았다. 즉, 서양인의 경우 실제로 마음에 갖고 있는 진심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동양인의 경우는 직접적으로 보이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설문의 결과를 곱씹으며 실제로 우리들은 어떤지 생각해봤다. 우리는 종종 상대에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마음만을 갈구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매일같이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야 하고, 기념일엔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케이크를 자르고 선물을 주고받아야 한다. 우리는 그래야 비로소 그곳에 사랑이 있고 그 사람의 진심이 있다고 믿는다. 마음을 직접 밖으로 꺼내 보여주지 않으면 우리는 이를 의심하고 결국 "넌 날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구나!"하고 실망하게 된다. 다분히 합리적인 이야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 누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그 사람은 정말 날 사랑하지 않는 걸까?
마음을 표현하는 일은 분명 중요하다.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고싶음은 자연스러운 욕구다. 하지만 단순히 이를 기준으로 모든 사람의 사랑을 재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군가는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지만 진심으로 상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갈림길을 마주칠 때마다 그 앞에서 우두커니 할머니를 기다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잠시 앉아서 쉴 때마다 할머니 쪽으로 조심스레 밀어놓은 과자봉지에서 전해지는 할머니에 대한 할아버지의 마음처럼 말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살아 온 환경도 살아가는 방식도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도. 누군가는 화려한 반면 누군가는 조금 서툴고 투박하다. 하지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때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를지언정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그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상대방을 올 곧게 향하고 있는 진심이다. 결국 사랑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노부부는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이를 알고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기에 멀리 떨어져 말 없이 걸으면서도 그 긴 올레길을 끝까지 완주해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