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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mian Jun 11. 2021

엄마

사랑을 잊는 법

지금은 그 산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10살이 되던 해의 한여름, 동네 형과 함께 캠핑을 떠났다.  지금의 캠핑과는 사뭇 다른 텐트와 버너, 그릇 몇 개가 전부인 아날로그 시대의 캠핑이다. 사실 그렇게 산속 깊이 들어가서 단 하루라도 생활을 한다는 생각은 언감생심 꿈에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어느 날 대략 서너 살 많은 동네 "형"의 손에 이끌려 어딘지도 모르게 산을 넘는 모험을 하게 된 것이다. 불행하게도 난 집을 나서며 엄마에게 나의 행선에 대해 일언반구 하지 않고 조용히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무모한 짓이었다. 10살짜리 소년이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으니 이를 알게 된 부모의 심정은 눈을 감고도 헤아릴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길을 떠난 우리는 깊은 산중의 계곡에 텐트를 쳤고, 형들은 올챙이 알을 찾으러 간다며 길을 나섰다. 나와 또 다른 내 나이의 친구는 텐트 안에 앉아 뒤늦게, 걱정하실 부모님과, 우리의 과실에 대한 대가로 내려질 "혼남"에 대한 고민으로 혼돈의 순간에 놓여있었다.


한 여름의 날씨는 아침과 점심과 저녁이 모두 달랐다. 길을 떠난 아침나절은, 찬란한 여름 햇빛 사이를 새들은 표로롱 날아다녔고, 사선으로 나는 새의 날개 위에선 아침햇살이 찬란히 빛나더니, 정오를 지나자 검은 구름과 회색 구름이 섞여 하늘은 점차 어두워졌다. 우리가 선택한 일탈의 날자가 장마의 한 중심에 있었다는 건 그 후에야 알게 됐다.

한차례 소나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곡 옆에 설치된 텐트는 순식간에 물살에 휩싸일 듯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동네 형의 지시에 따라 텐트를 포기하고 열 걸음이나 스무 걸음,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많이 위쪽으로 피신했지만 계곡물은 빠르게 불기 시작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제발 비가 그치고 어서 햇살이 나와 주기를 바라는 일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하늘이 한풀이라도 하듯 쏟아붓던 비가 그쳐주었다. 지금 기억에도 비가 내린 후의 숲 속은 참으로 아름다워, 깨끗한 햇살이 나무 사이를 뒹굴고, 비를 피해 둥지에 깃들었던 새들은 다시 날기 시작했으며, 풀잎에 맺혔던 물방울이 찬란히 빛나 주었던 것 같다. 다시 비추기 시작한 여름 햇살은 물을 먹은 숲에 뿌연 수증기를 더해 주어 우리는 잠시 걱정을 놓고 돌더미 위에 앉아, 이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거나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추억을 위해 온전히 캠핑에 전념할 것인가에 대해.


그 휴식 중에 엄마가 나타났다. 홀연히, 돌연, 뜬금없이 엄마가 그곳에 나타났다. 엄마의 옆에는 또 다른 동네 형이 함께였고, 엄마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있었다. 오로지 아들을 찾기 위해 샌들 하나로 산을 오르던 엄마는 오는 중에 몸으로 비를 맞아냈고, 나를 만났을 때는 산을 오르며 생긴 열기와 빗물을 덮어쓴 엄마의 머리에서 김이 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나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내 머리를 쓰다듬곤 내 손을 감싸 쥔 채 길을 돌아 나섰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은 산속의 습기와 비에 젖은 내 몸을 따뜻하게 감싸 주웠고, 동시에 나는 허락 없이 집을 떠났던 두려움과 계곡에서 느낀 공포를 깨끗이 지우고 있었다. 엄마의 손이 움켜쥔 내 손에서는 여름날의 끈적한 땀이 솟구치고 있었다.

엄마는 꽃을 좋아했다. 나도 그 엄마를 닮아 꽃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날의 기억은 아찔함과 더불어 엄마의 사랑을 느끼는 따뜻함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엄마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엄마의 사랑을 잊어가는 이 시간이, 추억으로 아파하는 내가 엄마를 놓아, 피곤한 몸 뉘고 온전히 엄마만을 위해 쓰고 계실, 그 어느 시간 너머의 엄마를 잊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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