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불뚝 산보를 만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여요.
지난봄부터 조금씩
배가 나왔습니다.
뱃속에 작고 깊은 세계가
시작되었거든요.
열 달을 채우고 나올 우주가
스스로 자라날 동안
근육 하나 없던 내 배는
단단한 수조가 되었습니다.
그대로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수조의 역할을 하기란
쉽지 않았어요.
나는 더욱
조심스러워졌고
배가 나올수록
움츠러들었어요.
자주 입던 바지가
더는 맞지 않을 때
강을 건너는 지하철 풍경 속
숨이 차오를 때
아직도 수건 한 장
깔끔히 개지 못하는 나를 볼 때
아낌없이 받았던 사랑이
그만큼의 무게로 다가올 때
그럴 때마다
배 불뚝한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이전과 달라지는 나와
달라져야 할 나를
만나는 것이 두려워졌어요.
변화 앞에서 숨고만 싶은
복잡한 심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 안에 쌓여있던
마음이었어요.
앞으로 걸어가기보다
뒤돌아 뛰고 싶은 나
커다래진 배를 보고서야
새삼 알아차리게
되었을 뿐인 걸요.
낙엽이 진 길을 걷다
산보를 만났습니다.
배가 나와 뒤뚱거리고
망설이느라 늦고
어색한 웃음을 짓고
무엇을 해도 어설프고
겁이 많아 털로 된 수영복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이 계절의 산보를요.
이 친구를 만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여
부족하지만
모자라지 않은 자유
두렵지만
걸어갈 수 있는 이유가
떠오릅니다.
지난 계절의
줄어든 바지를
아쉬워하는 대신
산보의 여유를
한 뼘 입고서
어느 날의 나도
어떤 날의 너도
마주해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