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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소로 Nov 16. 2018

가끔은 산보

배 불뚝 산보를 만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여요.


지난봄부터 조금씩

배가 나왔습니다.

뱃속에 작고 깊은 세계가

시작되었거든요.

열 달을 채우고 나올 우주가

스스로 자라날 동안

근육 하나 없던 내 배는

단단한 수조가 되었습니다.


그대로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수조의 역할을 하기란   

쉽지 않았어요.

나는 더욱

조심스러워졌고  

배가 나올수록

움츠러들었어요.  


자주 입던 바지가

더는 맞지 않을 때   

강을 건너는 지하철 풍경 속

숨이 차오를 때  

아직도 수건 한 장

깔끔히 개지 못하는 나를 볼 때

아낌없이 받았던 사랑이

그만큼의 무게로 다가올 때  


그럴 때마다

 뚝한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이전 달라지는 나와

달라져야 할 나를

만나는 것이 두려워졌어요.

변화 앞에서 숨고만 싶은

복잡한 심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 안에 쌓여있던

마음이었어요.   

앞으로 걸어가기보다

뒤돌아 뛰고 싶은 나  

커다래진 배를 보고서야  

새삼 알아차리게

되었을 뿐인 걸요.  


낙엽이 진 길을 걷다

산보를 만났습니다.

배가 나와 뒤뚱거리고

망설이느라 늦고   

어색한 웃음을 짓고

무엇을 해도 어설프고

겁이 많아 털로 된 수영복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이 계절의 산보를요.

이 친구를 만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여

부족하지만

모자라지 않은 자유

두렵지만

걸어갈 수 있는 이유가

떠오릅니다.    


지난 계절의

줄어든 바지를

아쉬워하는 대신

산보의 여유를

한 뼘 입고서      

어느 날의 나도   

어떤 날의 너도

마주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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