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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보다

某也視善

by 강물처럼


홈런이 가장 많이 나오는 구장? 홈런을 가장 많이 치는 구단, 인천에 있는 문학 구장을 홈으로 두고 있는 프로야구단 SSG. 어제 화요일, 주중 첫 경기가 열렸다. 구단 이름도 바뀌고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 이름도 해마다 바뀌지만 프로야구가 시작한 82년부터 지금까지 내가 응원하는 팀은 타이거즈다. 오죽했으면 일본에서 지낼 때도 그 많은 도쿄 팬들 사이에서 한신 타이거즈를 편들었을까.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도쿄에서 그런 밉상은 없다. 야구팬들은 꽤나 진심이어서 진짜로 좋아하고 진짜로 미워한다. 응원하는 마음은 어떤 메커니즘을 거쳐 생겨나는 것인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신기하고 궁금하다. 좋아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도 변하던데 왜 한화 팬들은 내리 꼴찌를 맡아서 하는데도 그들을 보기 위해서 구장을 찾았을까. 어째서 저렇게 지고 있는 경기를 자리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지키고 서 있는가 말이다.

어제 SSG와 기아 경기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불쾌하고 언짢고 텁텁하다. 근래 보기 드문 명승부였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기아가 7연승으로 그 경기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 약 오른다. 나는 타이거즈를 좋아했지, 야구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던가 싶어서 이 글을 반성문처럼 쓴다.

4:3, 한 점 차이로 기아가 앞서가던 9회 말, 거짓말처럼 투아웃이었다. 마침 타석에 등장한 선수는 프로야구 역대 최다 홈런 기록에 하나 부족한 SSG 최정. 기아 마무리 정해영의 구위도 상당했다. 앞선 두 타자를 윽박지르듯이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고 헛스윙 삼진을 시켰다. 그러나 최정 선수에게 던진 볼 3개가 모두 높았다. 저것은 상대를 의식한다는 뜻이야, 의식하지 않으려는 흔적이다. 저 흔적을 타자는 쫓는다.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거기를 힘껏 휘두르는 것이다. KBO 최고의 타자는 어제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에서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동점, 야구는 말 그대로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두 팀을 응원하던 관중들도 서로 다른 의미에서 이성을 잃고 함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그 열광의 도가니, 오래 기억될 듯하다. 정해영도 젊고 포수를 맡았던 한준수는 더 어렸다. 템포, 속도, 관성이 발휘하는 힘은 강력해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만다. 순식간에 역전 홈런까지 맞고 어제 경기는 끝났다. 불꽃같았다. 모두가 뜨거웠고 긴장했으며 의로웠다. 승부였다. 모든 승부에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지만 그것은 한낱 바람 같은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제는 늘 사라진다. 그것이 어제다. 내일은 항상 없다. 그것이 내일이다. 언제나 오늘인 오늘, 어제의 화려함도 내일의 신비도 오늘이 가진다. 그것은 우리의 시간이며 우리의 시합, 우리의 승부다.

투수가 공을 던지는 메커니즘도 오묘해서 정작 투수 자신도 자신의 공을 설명하지 못한다. 어떤 때는 잘 들어가고 어떤 때는 영 딴판이 되기도 한다. 그 간격과 차이를 최대한 좁히는 투수가 좋은 투수가 되는 것이다. 노력으로 아니면 타고난 기량으로 그 미세한 차이를 이겨내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안정이 요구되고 루틴이라든지 투수가 신경 쓰는 것들은 가능한 건들지 않는다. 날씨도 바람도 주변의 공기까지도 모두 투구에 영향을 미친다. 보기보다 외로운 영역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마운드 mound, 투수가 서 있는 곳은 마운드다. 마운드는 높다. 실제로도 높고 누가 봐도 영광스러운 자리다. 그 자리에 선 사람들은 김수영의 '풀'을 닮았다.

-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열 번 타석에 나와서 세 번을 치면 3할 타자가 되고 타격이 3할이면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된다. 어떤 투수한테는 강하고 어떤 투수한테는 약점을 보이기도 한다. 야구 배트로 날아오는 공을 맞받이 치는 타자들의 메커니즘 또한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도박판에서 벌어지는 확률 게임 같을 때도 있고 저거야말로 확실한 실력이라며 흡족해할 때도 있다. 타자들은 실투를 놓치지 않고 때려낸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다. 그러니까 실투가 없는 투수에게는 절대로 불리한 입장이다. 실투를 던지지 않으려는 투수와 실투를 놓치지 않으려는 타자와의 싸움이 야구의 바탕을 이룬다. 마치 아프리카 초원 같고 사각의 링 같고 정치판 같고 세상 같다.

"유리한 볼 카운트가 돼서 정해영이 자신 있어하는 공을 던져 나와 대결할 거라 생각했다. 홈런을 노리진 않았고 직구와 높은 쪽으로 승부를 겨룰 것 같았는데 그게 딱 맞아떨어졌다. 타이밍만 맞춰서 쳤는데 결과가 좋았다." - 경기 후 최정 선수.

어제 아침, 아이들 일기를 쓰면서 '무승부다'라는 말로 맺었던 것이 떠올랐다. 과연 여기에, 우리에게 승부는 무엇일까. 무승부無勝負, 이기고 지는 사람이 없는 승부. 팽팽하게 서로 당기는 경기, Drawn game. 내가 당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승부일까.

멋진 경기를 봤다. 홈런을 칠 수도 있고 홈런을 맞을지도 모르는 순간들이 있다. 벌써 몇 번이나 그런 날들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졌던가. 그래서 우리는 이겼던가. 오늘 밤에도 경기는 있다. 그라운드에 나서는 선수들에게 고맙다. 날마다 뛰어줘서 고맙다. 정해영 선수를 더 유심히 살펴볼 것 같다. 그에게 풀 한 포기 건네주면 어떨까 싶다.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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