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6.
걸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처럼 집 밖에 나서는 것이 조심스러운 시기에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몰라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겠다는.
태풍이 한차례 몰아쳤다. 거센 바람 탓에 잠까지 설쳤던 것이 언제였던가. 아니다 다를까 섬진강이 뉴스에 나왔다. 정확하게는 섬진강이 범람해서 물에 떠있는 마을들이었다. 흙탕물 위에 점점이 보이는 지붕들과 거기 올라가 멈출 것 같지 않은 탁류를 두려움에 응시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과 함께 화면에 나타난 것들은 뜻밖에도 소들이었다.
내 몸의 통증도 반복되면 그마저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고 슬픔이 학습되면 눈물에서도 짠기가 빠진다. 오기도 아니고 체념도 아닌 어떤 무감각이 삶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있다. 나는 그것을 맨 얼굴이라고 부른다. 그런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거기를 공수네 다리라고 했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그 이름이 어쩐지 가난했고 그 다리 주변 완산칠봉이 보이고 전주천으로 이어지는 천변 풍경은 늘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어떻게 내 유년의 바탕이 되었을까. 미안하다,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들아. 그것은 오줌이 말라가는 지린내였다. 비가 내리면 흑석골에서 물이 불어나 공수네 다리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어느 해는 다리도 떨어져 나갈 듯이 세차게 물 부딪히는 소리가 진동한다.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모든 것이 떠내려갔다. 현기증이 날 때까지 그 물을 바라보면서 냄새도 다 씻겨 날아가기를 바랐다. 그때는 산다는 것이 냄새나는 일인 줄 몰랐다. 다 삼 겨버릴 것처럼 넘실거리는 물살은 두려울만치 힘이 셌지만 그 얼굴은 악의적이지 않았다. 착하지만 만만치 않아 보이는 얼굴처럼 보였다. 잊었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음성, 눈빛, 표정이었다. 그 얼굴은 오래, 공수네 다리는 없어지고 거기는 복개覆蓋가 되어 이제 차가 달리는 도로가 됐어도, 그 여름날을 떠올리게 한다.
자연스럽게 우러나야 힘이 되는 것들, 이를테면 깊은 숲 속 옹달샘, 이른 아침 맑은 공기, 그 마음이 이 마음인가 싶은 공감, 이런 것들을 잃어가고 있다는 진단이 내려질 것 같다. 쯧쯧거리면서 혀를 찼지만 어디까지나 내 앞에 있는 것은 TV 화면일 뿐이다. 딱딱하고 차가운 유리로 만들어진 브라운관을 통해 바라보는 슬픔이나 격정, 분노와 안타까움은 하나의 영상으로밖에 처리되지 않는다. 삶의 냄새가 나지 않는 공간에서 우리는 혹시라도 다정한 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는 현실보다 드라마를 좋아하고 연속극 주인공들에게 자기 속을 다 내보이면서 눈물을 훔치고 미소를 지어 보인다. 영상이나 화면, 사진이 되지 못하는 현실은 피곤하고 거부감이 일고 성가시고 게다가 불편하다.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볼만하다고 여기면서도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간곡히 사양한다. 겸양의 아름다움을 발휘한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도 인생을 짧지 않냐고 입바른 소리를 해댄다. 어떻게 '한 장'으로 해결될 수는 없는 것인지 '실질적인' 도움을 운운하면서 어딘가를 검색하고 있을지 모른다.
얼마면 돼? 하는 식으로 말이다.
순창 적성면에 섬진강 미술관이 있다. 강가에 있는 미술관, 발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홀릴 이름이다. 거기 가서 시골 마을 입구에 차를 세웠다. 미술관으로는 향하지는 않는다. 나를 위하고 사람들을 위해 공간이 되는 자리는 피할 것이다. 지금은 그래야 하는 것이 맞다. 어쩌면 미술관도 채계산 출렁다리와 같이 당분간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
우리 넷은 섬진강변을 그저 두 시간만 걷기로 한다. 꽃이 피는 계절이었다면 운치 있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이 시절에 이게 어디냐 싶은 마음으로 한 술 고맙게 뜨기로 한다.
걸음은 밥이다. 내가 좋아하는 아니 나를 좀 좋아해 줄 수는 없겠냐며 직접 지어 내놓고 싶은 밥이다.
퍼가도 퍼가도 마르지 않을 섬진강이라고 했던가.
언제나 섬진강을 찍은 모습은 맑았고 갯버들이 흔들렸고 파릇했으며 아이들이 뛰어놀면 좋을 풍경이었다.
실개천이 휘돌기도 하고 이상하게 생긴 바위도, 드문드문 만발한 벚나무나 백일홍과 어울려 수묵화나 수채화가 되어 어떤 이의 안방에서 오래 간직되어도 좋을 풍경을 나는 섬진강이란 이름에서 찾아다녔다. 깊이 호흡하며 산과 천이 내뿜는 기운을, 그 내음을 다 들이켰다.
시가 되는 강, 섬진강 아니던가.
어은정 앞을 흐르는 물은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지 일주일이 되었어도 거침이 없었다. 어릴 적 그 물이 떠올랐다. 다 삼키고 토해낸 것들이 곳곳에 쌓여있었다. 평소 같으면 저기 보이는 작은 다리로 사람들이 오갔을 텐데 어은정 앞은 깊은 물에 잠겨 있었다. 한 걸음 섬진강의 품속으로 들어섰다.
어은漁隱은 그 뜻이었을 것이다. 숨어서 물고기나 잡자. 그것은 탄식이었을까, 고집이었을까, 자조였을까.
오늘 섬진강은 물고기를 잡기에도 길을 따라 걷기에도 그다지 유쾌해 보이지 않았다.
거칠게 흐르는 강물을 백 년 넘게 보아온 백일홍 나무들이 여름 뜨거운 볕을 쬐며 세월이겠거니, 그러고서 서 있었다.
흘러라, 물이었으며 세월이었을 그대는 다 흘러라.
사납게 울던 물살을 가까이에서 지켰을 꽃나무들에게도 전한다. 물살이 가라앉고 대지가 차분해지면 여기 약속같이 다시 찾아와 그때는 우리 같이 흐르기로 하자.
우리 널찍한 바위에 앉아서 쉬었다 가자. 두 시간만 걷기로 했는데 지금 여기에서 돌아가더라도 그 시간은 훌쩍 넘어가겠다. 그런데 배가 부르지 않은 밥처럼 모든 것이 아직이다.
조금 더 먹고 싶다.
"너희들 심심할 줄 알아야 해."
몸이 아프면 죽粥을 먹는다. 다른 것은 먹고 싶지도 않고 먹으려야 삼켜지지 않아서 못 먹는다.
죽, 아무 힘도 없는 죽이 아픈 몸을 달래는 것이다. 많이 아프면 아플수록 아무것도 넣지 않고 물과 쌀로만 끓인 죽을 먹는다. 그것이 사람을 살린다. 심심한 죽 맛을 봐야 아픈 사람이 낫는다.
우리가 오늘 지금 이렇게 걷는 시간을 나는 심심한 죽 같은 시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는 죽 한 사발씩 맛있게 먹어가며 걷고 있다. '심심해' 해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심심하게 우리는 시간을 끓여 먹기로 하자.
아무것도 넣지 않은 것을 입에 오래 물고서 그 순간 우러나오는 맛 하나를 황홀하게 감각하기, 그것을 배우기로 하자.
자, 저 위에 보이는 다리까지 갔다가 돌아오자. 끝날 데가 다가오는 것은 어떤 감정인가. 그것은 아쉬움이며 반가움이다. 우리는 늘 끝이 난다. 길은 끝이 나는 곳에 서 있다가 저 혼자서라도 간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든다.
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서로의 가슴에 새겨둔다.
나를 믿지 말라고 속삭이는 존재, 그게 길이야.
그래서 다음 날이라는 말이 내 안에는 예쁜 팻말처럼 단정하게 꽂혀있다. 사람이 하는 말, 사람의 거룩한 말,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우리는 길에서 배운다. 그래서 이렇게 우연히 걷게 되는 날도 많이 그리운 것이다.
섬진강은 그리운 것들이 많은 곳이겠거니, 물 따라 흘렀을 심심했던 삶들에게 인사를 했다.
산이와 강이가 터벅터벅 걸어간다. 아빠가 재미없는 재미라고 그랬는데 정말 재미없었느냐? 묻고 싶다. 제법 잘 걷는 산이도 엄마가 있으니까 걷는 것일 테고, 살짝 힘들어하는 강이도 엄마만 믿고 걷는다.
감나무 둘레에 심은 토란이 시원한 병풍 같아 보였다. 그 모습을 사진에 담기로 했다. 산이와 강이, 엄마 세 사람은 그렇게 살아갈 수 있어 보인다.
나?
나는 이쪽으로 가자, 저쪽이 좋겠다. 이런 거 할 수 있으면 족하다.
오늘 너희들은 순창에 가서 섬진강을 아주 조금 둘러봤다. 물이 많아서 그리고 홍수 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것들의 생채기를 보고 돌아온 걸음이었지만 좋은 여행이었다.
아빠는 믿는다.
섬진강은 너희가 찾을 때마다 너희를 살찌울 거라고.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하나씩 다 보여줄 것이라고. 그리고 그 냄새들이 그리울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