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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n 14. 2024

꿩이 그렇게 도망친다

某也視善


유리 테이블이 흔들렸다. 잠시,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동작을 멈추고 흔들림을 느꼈다. 그리고 손가락 열 개가 키보드 위에서 서둘러 움직였다. 그 문장까지는 써야 할 것 같았다. 2024년 6월 12일 08시 26분, 부안에서 지진이 났다.

'서쪽 바다를 걸었다. 그것은 운명이었을까. 선택이었을까.'

아이들과 걸었던 부안 마실길 이야기를 고쳐 쓰던 중이었다. 5년 전 풍경 속을 거닐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모차르트 교회 소나타에 한 번씩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행복하다고도 느끼던 순간이었다. 어떤 순간은 물리법칙을 가볍게 무시한다. 중력도 시간도 말뿐일 뿐, 다른 조건들과 상관없이 홀로 존재하는 순간들이 있다. 무중력의 순간, 무감각의 순간, 무한처럼 여겨지는 순간이 있다. 다르게 흐르는 1초, 2초가 있다.

어? 흔들리는데? 흔들리는 것이 테이블이 아니라 건물인 것을 알았을 때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늦었다. 낯설지 않은 그 느낌이 오래간만에 나를 훑고 지나갔다.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을 바라보고 서 있는 사람을 망연자실이란 말로 설명한다. 아득하고 흐릿한 것이 망茫이다. 벼랑 끝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망茫이 된다. 갈 곳을 모르는 것이 망망茫茫이다. 진실로 망연하면 저절로 다 잃고 만다. 막을 수 없고 도울 수 없는 현실이 바로 망연한, 그것이다. 사람이 견뎌야 할 것이 너무 크고 깊어서 감당이 안 될 때가 있다. 그 망망한 심정까지 다 갈아 넣어 만든 것이 삶이라면 놀라고 말 것이다.

어제도 나는 가만있었다. 늦었을 때 내 선택은 없다. 나는 없음을 선택한다. 그것은 포기 같은 것일까 스스로 묻곤 한다. 시험지를 앞에 놓고 시험을 포기한 적이 있다. 이름과 번호를 적어놓고 가만히 10분을 앉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던 적이 있다. 마음이 헛헛하고 쓸쓸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나한테 그러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막연했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없다'를 선택하는 나는 슬픔을 느낀다. 바람이 불 때, 해가 질 때 문득 슬플 때가 있다. 스르르 눈을 뜨는 슬픔이 있다. 근원적인,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이라고 부르는 그 슬픔. 잠깐 사이에 나는 그 슬픔을 마주쳤다. 선택이 없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서쪽 바다를 걸었다. 그것은 운명이었을까. 선택이었을까.'

한때 동경에서 몇 해 살았다. 외국인들도 원하면 지진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데 실제로 거실을 하나 만들어 놓고 진도에 따라 시뮬레이션을 한다. 그때도 사람이 테이블 앞에 앉아 있고 진도 5부터 7까지 각각의 상황을 경험했다. 물건들이 흔들렸다가 무너지는 것을 밖에서는 목격하고 안에서는 실감한다. 잘 알다시피 피할 수 없을 때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숨기라고 알려준다. 제일 좋은 곳은 화장실이며 그때도 꼭 문을 반쯤 열어두라고 한다. 왜냐하면 물이 있는 곳이 생존에 유리하고 또 문이 닫힌 채로 붕괴되면 구조가 그만큼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역 앞 광장에서 친구를 기다리다 생전 처음으로 지진을 경험했었다. 가만, 지금 바닥이 흔들리는 거 맞지? 그 뒤로 지진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모습을 드러냈다. 자다가도 침대가 흔들리면 진도 3, 아냐 진도 3.5는 되겠다며 자가 측정을 하게 됐다. 지진 왔네, 그러면서 지진에 무심해질 때쯤 동경을 떠났다. 어디로 갈까, 망설였던 그날 오후가 눈이 부셨다. 내 젊은 날은 멀리 떠나는 여행이었다. 나는 나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거기는 어디였을까. 운명 같은 선택을 한다. 비어있는 상자를 열어보는, 아무것도 없는 선택을 찾아다닌다.

아파트도 쓰러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다만 내가 사는 아파트는 아닐 거라고 믿는다. 행운은 늘 나에게 불 것만 같은 바람을 키운다. 우리의 믿음은 순진하고 이기적이며 엉터리 같은 구석이 있다. 바다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무엇이든 바다에 쏟아버린다. 여차하면 하늘도 나누고 거기에 거대한 벽이라도 세울 것처럼 오늘을 산다. 비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불어도 자기는 날아가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지진은 일본 같이 식민지 지배했던 나라에나 있는 거라며 애써 태연하다. 어쩌면 우리가 믿는 것은 '나만 괜찮으면' 신앙인지도 모른다.

한때는 경주 근방에서 지진이 잦았었다. 그때도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불안했고 그 밖에 다른 데 사는 사람들은 안심했다. 지도상에 경주와 부안은 일직선에 가까웠다. 파란색 끈을 대충 그 위에 놓고 찬찬히 들여다봤다. 지진이 나를 찾아왔다.

꿩이 그렇게 도망간다고 그런다. 머리만 땅에 처박고 몸뚱이는 나 몰라라 그런단다. 옆에서 지진이 나고 땅이 갈라져도 여기는 아무 일이 없을 거라고 장담한다. 사람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어렵다. 그 믿음의 눈높이는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입맛이나 기호에 맞추고 아니면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메커니즘이 성행한다. 그러면 안 된다고 부당하게 인식되던 시대에서 그것도 하나의 능력이 되어 가고 있다.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정의와 공정도 선택적으로 그때그때 달라진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자유로운 것이 우리의 진리가 되는 새 시대의 출현이다. 그 자유는 과연 우리가 알던 자유인지 그마저도 자신이 없다. 누가 자유로운가. 자유를 물어볼 사람이 없고 자유를 배울 사람이 없다. 부실시공에 부실 투자, 부실 의료, 부실 교육, 부실 먹거리, 온통 부실 천국이다.

이 시대에 믿음은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할지 미래학자에게 물어야 하는지 종교학자에게 물어야 하는지 그마저도 헷갈린다.

경주 남산에는 수많은 불상과 탑이 있다. 지붕 없는 자연사 박물관이라고도 부르는 곳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 교수가 격찬하는 곳이다. 남산의 금오산 정상에 세상에서 제일 큰 석탑, 보물 제186호 용장사곡 삼층석탑이 있다. 신라의 석탑 양식은 2성 기단에 3층 석탑을 올린다. 두 개를 만들어야 할 기단을 하나만 만들고 금오산 정상에 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금오산 자체가 삼층석탑의 제일 밑 기단이 된다는 이야기는 어째서 틈이 없이 완벽하게 들릴까. 더구나 탑신의 비례가 1층, 2층, 3층의 4 : 3 : 2로 단아하지만 석탑의 높이는 4 : 2 : 2로 2층과 3층 같다고 그런다. 그래야 탑 앞에서는 3층이 좁아 보인다는 것이다. 도면으로써 비례가 맞는 것보다 탑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는 비례가 거기 있다는 말에 미소가 지어졌다. 탑 아래 산을 볼 줄 알고, 탑 앞에 서 있는 천 년 뒤에 있을 사람을 놓치지 않았던 우리였는데.... 우리는 공학적이고 수학적인 세상에 빠지고 만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의 공학을 강조하는 정치가들은 믿음이 가지 않는다. 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생각을 하며 사는 리더에게 어떻게 존경이 우러나겠는가. 받을 것은 받고 줄 것은 주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믿는 것은 그야말로 가볍고 얕은 수가 아닌가. 그것이 대충 아닐까. 계산배려의 차이 정도는 누구나 안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 여기에 건물을 짓고 정치를 쌓고 역사를 만드는가. 도면에도 사람에도 집중하지 못하면 결국 도면도 잃고 사람도 잃고 탑도 잃을 것이다.

지진이 지나간 조용한 날 아침에 경주 남산에 있는 불상과 탑은 잘 있는지, 부안의 너른 들판은 많이 놀라지 않았는지 그리고 다른 곳에 건물들은 정말 괜찮은 것인지 골고루 안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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