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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n 20. 2024

손 좀 잡아보게요

300번 버스


덥다. 창을 열면 대문 앞에서 두리번거리며 집 주소를 확인하는 여름이 보일 거 같다. 6월도 스무날이 다 됐다. 9시 반, 그가 도착했다. 일부러 1분, 2분 기다렸다가 집을 나선다. 벌써 준비를 다 마치고 얼음물도 한 병을 가방에 넣고 그가 좋아하는 쿠키는 두 개만 챙겼다. 단맛을 좋아하는 그가 더 없냐고 그러는 것이 벌써 상상이 된다. 점심도 먹어야 하잖아요. 웃으면서 대꾸할 생각이다.

오래됐다. 15년쯤? 둘이서 매주 그렇게 다녔다. 그때는 지금보다 젊고 매력 있고 무엇보다 건강했겠지. 미륵산에 오르면서 힘들어도 힘든지 몰랐으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다녔지. 무슨 마음이었을까. 무엇이 서로에게 끌렸을까. 그는 잘 웃거나 진지하거나 유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를 하얀 종이 같다고 몇 번인가 소개를 한 적이 있다. 이제 그것이 무엇인지, 그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알 것 같다. 오늘 오전에도 함라산에 다녀왔다. 그리고 알아봤다. 너, 너였구나.

'검소함은 적은 것에서 많은 것을 얻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소박한 것은 없어 보인다고 멀리하는 세상이다. 순진한 것도 순수한 것도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다. 그래서 그가 특별하다. 나처럼 재미없는 사람하고 일주일에 한 번, 걸으면서 이야기 나누고 잠시 앉았다가 점심을 먹고 헤어지는 그의 순박한 일상이 꽤 헌신적이어서 좋다. 무슨 일이든 오래 하는 사람에게서 보이는 문양이 하나 있다. 작은 힘으로 더 큰 것을 옮기는 거대한 정신이 있다.

차에 올라타니까 벌써 시원하다. 에어컨을 켜놓고 기다리는 것도 고맙지만 그는 내게 소풍이다. 소풍 갈 때 사람은 시원해진다. 그게 소풍이다. 커피도 두 개, 컵 홀더에 들어 있다. 하나는 내 것, 다른 하나는 그가 좋아하는 캐러멜마키아토. 고맙다는 인사도 하기 전에 그가 던진 말이 넓게 무늬를 일으키며 호수로 퍼진다. 그를 만나면 마음이 호수다. 호수에 돌을 던진다. 그는 여전히 장난기 많은 소년이다.

'손 좀 잡아 보게요.'

처음이다. 내가 해본 적은 있어도 여태 들어본 적 없이 살았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다니. 삶은 자꾸 나를 놀래고 있다. 적당히 그리고 또 적당히 그래줄 것을 마음속으로 빈다. 어?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지금도 그렇게밖에 말 못 한 것이 아쉽다. 나도 그럴듯하게 말하고 싶었는데····.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을까.

'아침에 그냥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것을 어디 가서 누구한테 물어보나.'

그게 무슨 마음인지 알 때가 있다. 그럴 때, 말도 글도 사상이나 철학 같은 것도 가볍기만 해서, 그 너풀거리는 것을 떼어주면 멀리 날아갈 것 같은 그럴 때, 사람이 잘 보인다. 훤하게 잘생겨 보인다. 환하게 예뻐 보이든지. 그래, 그렇구나. 훤한 것은 남성적이었고 환한 것은 여성적이었어! 어제 쓴 글에서는 거기를 다루지 못했다. 오늘이 그 인연이구나. 그는 잘생겼다. 그 마음이 물결을 이룬다. 15년 동안 봐왔던 그의 눈동자에 부처가 보인다. 부처를 품은 눈이었구나.

그리고 산으로 달렸다. 거기까지 가면서  숫자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서수와 기수부터 시작해서 그가 궁금해하던 Triple을 이야기하느라 모노, 다이, 트라이 같은 그리스어 수사까지 등장했다. 반가워하는 그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펜타곤 그러는 거구나, 격투기를 좋아하는 그가 격투기 경기장을 헥사곤이라고 한다며 손뼉을 쳤다. 얼마나 좋은 사이냐. 나는 그의 검소함으로 내가 순해지는 역반응을 겪는다. 다시 순해지는 과정은 아프거나 힘들지는 않지만 옛날 생각이 떠오르게 한다. 많이 잘못했던 것들, 떠들었던 것들, 아는 척했던 것들, 더 많이 잘못했던 것들이 사이사이 떠오른다. 산에 오르면서 고해도 받는 것이다. 뜨거워지는 햇살 아래서, 나에게 고해를 주는 사람은 저 순수다.

그는 나를 신기하다고 한다.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말들을 어쩌면 그렇게 툭툭 던지냐고 말해준다. 나는 그 말이 듣기도 좋고 웃기기도 하고 그게 아니라고 변명도 한다. 그는 세계가 나눠져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공감하지는 않는 듯하다. 사람들이 그렇다니까 그런 것이지 그의 저 순수 속에서는 경계가 없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보다 더 배웠고 더 알고 더 똑똑하다고 믿는 것이다. 그의 검소는 거기에 있다. 그의 검소가 너무나 화려해서 15년 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 그가 내게 해준 말 하나를 자랑처럼 잊지 않는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

자기 아는 사람들은 뭐 하나 먹으러 가는 데도 이러네 저러네 말이 많다며 어떻게 한 번도 다른 거 먹자는 소리를 안 하냐고 나를 놀리면서 했던 말이다. 정말로 나는 다 좋으니까, 그 뒷말은 하지 않았다. 나도 영화에 나왔던 어떤 여인처럼 이렇게 쓸까 싶다.

'부끄러워서 그다음 말은 역시 쓰지 못하겠다.'

그런데, 쓴다. 나는 나니까. 나는 다 좋다. 그와 함께 하는 것들이.


나의 300번 버스 아저씨가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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