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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n 21. 2024

新  밥상머리 교육 40

말하지 않아도



"생선을 먹는 일은 없다. 라다크 사람들은 살생을 해야 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큰 짐승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생선을 먹는다면 더 많은 살생을 해야 하는데 이곳 사람들은 그런 것을 꺼리고 있는 것이다. 동물을 죽이는 것을 사람들은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을 모아 기도를 드리며 신에게 용서를 구하고 난 다음에야 동물을 죽이는 이들이 이곳 사람들이다."

나를 등에 태워주고 내 짐을 실어주던 짐승이

이제 나를 위해 죽임을 당했으니,

내게 먹을 고기를 주는 이 짐승이

어서 빨리 부처님의 세계에 갈 수 있도록 하소서.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85p.

길은 길로 책은 책으로 사람은 사람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이어진 것들이 무엇을 따라 돌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것들이 자전하며 공전하는 것을 안다. 어제 먹은 밥이 오늘 먹는 밥으로 이어지며 사람을 살리는 것도 안다. 밥은 사람을 따라 공전한다. 그 밥을 먹은 힘으로 사람은 세상을 공전한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쉼 없이 도는 일이다. 옴마니반메훔 - 온 우주의 충만한 지혜와 자비가 지상의 모든 존재에게 그대로 실현될지어다. - 무수히 반복하면 '연꽃 속의 보석'인 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 오체투지도 마니차*도 끊어지지 않고 가장 오래 이어질 수 있는 형태의 기도 같은 것이 아닌가. 하나의 점 같았던 사람이 공球이 되어 가는 길이 이 땅이 베푸는 물음 아닐는지.

아침밥을 준비하다 말고 아내가 밖을 나갔다 온다. 등 뒤로 들리는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낯설었지만 마침 삶은 견디는 일이라고 쓰던 문장을 응시하던 중이라서 뒤통수로만 궁금해하고 말았다. 그리고 평소처럼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었다. 시험공부하느라 반쯤 감긴 눈으로 밥을 먹던 산이가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아내는 산이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출근 준비를 하느라 안쪽 방에서 서두르고 있을 것이다. 강이와 내가 대신 산이를 쳐다봤다. 왜 그러느냐는 듯이.

"나 오늘은 엄마 차 타고 학교 가야 하는데."

죽순을 잘 볶은 것인지, 연한 죽순을 구했던 것인지 입안에서 살살 녹고 있었다. 순간 자리에서 일어날까 말까 0.0003초, 망설이는데 강이가 나를 살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강이가 던지는 말들은 가끔 그렇게 우리를 살린다.

"엄마 알고 있어."

그 말을 듣고 산이도 바로 따라 나온다.

"어떻게 알았지?"

그랬구나, 아내가 밖에 나갔다 온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산이 자전거를 확인하고 들어온 것이다. 자전거가 집 앞에 있으면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고 그렇지 않으면 학교까지 차를 태워줘야 하니까 출근 준비를 그만큼 서둘러야 한다는 것까지!

나도 한마디 하고 싶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날들이 행복이었다는 노래를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그 노래를 오래간만에 들어봐야겠다. 심심한 바람이 열린 창문으로 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이 '엄마'야."

산이와 강이는 끄덕이면서 별로 먹히지 않는 밥을 그래도 다 비웠다. 아이들은 죽순 맛을 모른다. 그 맛을 알 때쯤이면 나만큼 나이가 들어있겠지. 그때는 오늘 아침 식탁도 그리운 줄도 모르고 그리워하겠지. 그러겠지···



* 마니차 - 불교 경전을 넣어 돌릴 수 있도록 둥글게 만든 통으로 티베트 민중의 신앙도구 중 하나, 한 번 돌릴 때마다 경문을 한 번 읽은 것과 같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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