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적 없는 것은 자랑일까요, 흉일까요.
자랑은 사랑만큼이나 흔해서 익숙할 것입니다.
단맛에 빠진 사람들은 달지 않은 ´단것´을 찾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을 구하고, 자랑하느라 바쁜 사람들이 자랑거리를 모으느라 바쁩니다.
편리는 흔한 것을 지향하고 흔해지면 귀중한 줄 잊습니다.
관계가 그렇고 사람이 그렇게 전락합니다. 다이아몬드라고 피해 갈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이 매달려 돌아가신 십자가나 그 십자가가 세워졌던 골고다 언덕은 흉입니다.
흉은 보기 싫습니다. 누구나 꺼립니다.
상처가 아물고 남은 자리가 흉이며 남에게 비웃음을 살 만한 것들은 모두 흉이 됩니다.
얼마 전에 일본의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의 수필을 소개하면서 십자가야말로 기적의 표시 아니냐는 말을 적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나 십자가를 세우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원래 사형대입니다. 사형대를 좋아할 사람은 없겠으나 사람을 죽이는 사형대가 지금은 구원의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다른 사람의 다른 책에서 한 말씀을 더 인용하겠습니다.
¶예수가 묻힌 곳도 마찬가지였다. 모순적이게도 그런 공간이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지로 탈바꿈했다. 사도 베드로가 묻힌 곳도 그렇다. 그는 로마의 처형장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하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 위에 로마 교황청이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이 세워졌다. 누구나 꺼리는 장소, 부정 타는 공간, 그런 장소들이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성지가 됐다. 여기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코드가 녹아 있다. - 백성호, 예수를 만나다.
실패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러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불안한 고백이고 가느다란 희망이지만 그 뒤에는 무수한 별이 숨어 있습니다.
어쩌면 그 습지의 광활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다시 못 볼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내가 어쩌면 네가 나를 용서하겠느냐?
내 보잘것없는 일상을 이루는 십자가 같은 말은 ´어쩌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은 ´모르겠다´를 친구처럼 자식처럼 끌고 다닙니다.
모르는 것 투성이로 살아갑니다. 내 무지를 저 언덕까지 지고 갈 것입니다.
거기 매달려 여기를 바라볼 것입니다.
천국 같은 여기, 바쁜 여기, 단것이 넘쳐나는 여기를 바라볼 것입니다.
쓸개즙에 적신 해면을 입에 대고 내가 했던 실패를 바라볼 것입니다.
그리고 빚을 졌다는 말을 남길까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 요한 21:12
어쩌면 예수님은 오늘 아침밥입니다.
내가 먹는 밥.
바람이 주인입니까, 사람이 주인입니까.
어쩌면 밥이 나를 살리느라 애쓰고 있는 줄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