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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류작가지망생 Dec 12. 2020

시-세이 ; 서로 사랑을 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법

서로 다른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법




서로 다른 너와 나

오른쪽을 바라볼 때 네가 왼쪽을 바라보면
마주 보고 서서는 서로 다른 방향의 시선이
같은 방향의 시선이 되도록 다가서는 것

오른발을 내딛을 때 네가 왼발을 내딛으면
너의 왼발과 나의 오른발을 서로 묶고서
서로 다른 발을 같은 방향으로 내딛는 것

앞으로 걸어갈 때 네가 뒤쪽으로 걸어가면
돌아보지 않는 길을 걸어 시간이 흘렀을 때
지구의 반대편에서 서로를 향해 걸어오는 것

서로 다른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법


- 삼류작가지망생






 사랑은 늘 어렵다. 인스타그램 피드나 카카오톡 프로필을 보면 다들 잘만 연애하고 다니는데 나만 왜 혼자인가 싶다. 좋아하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거나 서로의 패딩 사이로 팔을 끼어 포옹하고 바라만 봐도 웃음이 나오던 것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떠올려보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당시에는 나도 외로운 누군가의 질투 대상이었겠구나 싶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27살, 그러니까 2014년 12월 처음으로 시작한 연애가 3년 2개월이라는 시간 끝에 상대방의 카톡 한 마디로 막 종지부를 찍었을 무렵이 떠올랐다. 학기 중에는 주말로, 방학중에는 평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났던 그 사람과는 365일에 300일 이상을 함께 보냈다. 매일같이 했던 데이트가 자의적에서 의무적으로 변질되어가던 권태기 와중에 몇 글자 되지 않는 텍스트 한 문장으로 이별을 통보받았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작은 해방감을 느꼈다. 식사 후 담배를 태워도, 밤늦게까지 술을 마셔도, 일이 바빠서 핸드폰을 보지 못 했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혼자 여행을 가서 몇 시간씩 걸어 다닐 수 있었고 먹고 싶은 식사메뉴를 고민 없이 고를 수 있었다. 오래된 민박집의 시설에 불만을 가지거나 늦잠으로 일정이 꼬이는 일도 없었다. 마치 원래 이랬어야 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수월했다.


 어느 토요일 오전,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서 고속버스를 타고 주문진에 갔다. 터미널에서 나와 해안을 따라 세 시간 정도 걷다가 배가 고파져서 생생정보통에 나왔었다는 문구가 대문짝만 하게 적힌 원조 알탕 집에 들어갔다. 술이 가득 담긴 소주잔을 집어 들고 단숨에 들이켠 뒤 국물을 한 술 뜨려는데 수저가 보이질 않았다. 가게에 들어와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고 소주를 따른 뒤 한 잔을 마실 때까지 관심 한 번 없었던 수저통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나는 소주잔을 손에 쥔 채로 멍하니 수저통을 바라봤다.


 내 삶의 많은 부분들에 빈 행동들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오랜 시간 동안 그 공백을 습관으로 채워나갔다. 그제야 그것이 그 사람의 자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보하고 배려했던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불만하기 전에 내가 당연시했던 것들을 먼저 돌아봤어야 했는데. 어떤 것이든 아는 만큼 보이는 것뿐인데 제대로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그 사람의 흔적들을 모두 닦아내고 나서 후회가 몰려왔다.


 밤늦게 몇 번이나 연락했던 그 사람에게 취한 상태로 다신 연락하지 말라고, 맨 정신에 만나서 직접 말하라며 끊었던 것. 앞으로도 계속 연락할 거니까 싫으면 차단을 하라고 그 사람은 말했지만 매몰찬 사람이 되기 싫은 위선적인 마음에 차단하지 않았던 것. 맨 정신으로 카페에 마주 앉아 '속상해서 홧김에 헤어지자 했는데 그렇게 바로 알겠다 대답할 줄은 몰랐다'는 그 사람의 말에 '문자 하나 달랑 보내면서 할 말은 당연히 아니지 않느냐. 그 행동에 실망했고 다시 만날 생각이 없다'며 카페를 나왔던 것.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집 앞에 찾아와 '빈자리가 너무 크고 허전하다. 우리 다시 시작하면 안 되겠냐'는 질문에 '이제는 다시 사랑할 수가 없다. 동생 그 이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너는 좋은 사람이니까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다'라고 선을 그었던 것. 알겠다며, 마지막 소원이라며 한 번만 안아달라는 말에 안아줬던 것. 그 사람이 긴 시간을 우는 와중에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


 우리는 그 누구도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서로 다른 사람이었을 뿐이고, 내가 너무 늦게 깨달았던 것뿐이다. 서로 같은 부분을 다르게 바라보고 서로 다른 부분도 다르게 바라보았던 첫 연애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서른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사랑은 여전히 어렵다. 나만 그런 건가 싶고 다른 사람들은 잘만 지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언젠가 사랑이 찾아오면,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채워주는 사람이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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