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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류작가지망생 Dec 15. 2020

시-세이 ; 상처 입은 사람에 대하여

딱지

딱지




장난스런 돌팔매질에
깊게 패인 생채기

찢기고 아물고
벌어지길 수 차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딱지가 눋기 시작했다

누덕누덕 기워진 옷마냥
눌은 살점뿐일 줄 알았더니
여문 상처에서 떨어진
작은 딱지 한 조각

고이 집어 들고서는
자서전에 붙여 놓으련다


- 삼류작가지망생






 상처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찢어진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몸에 생채기 하나 없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서로 다른 생각을 서로 다른 언어로 서로 다르게 표현하며, 상대의 언행에 대한 이해도와 수용도가 다르다. 그러나 그 말이 곧 '나도 상처가 있으니 만 아프다고 투정 부리지 마라. 참고 견디고 이겨내라'라는 것은 아니다. 고통의 크기는 상처가 난 당사자만 가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일부 사람들은 '내가 겪어봤는데 그거 별 거 아니다'라며 위로라는 신문지를 덧댄 칼로 다시 한번 찌른다. 표면으로만 확인한 괴로움의 근원을 예리하게 간파한 척 해결책이라며 제시한 말로 상처가 더 크게 벌어진 당사자는 상처의 원인을 '내가 재주껏 피하지 못해서', '내가 엄살이 심해서'라는 이유에서 찾는다. 찔린 사람이 아니라 찌른 사람이 근본적인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상처 중에는 쉽게 치료할 수 없는 상처가 있다.

 날카롭고 깊은 것에 찔렸다면 단순히 표피, 인대가 찢긴 것과는 달리 육체의 주요 내장기관이 관통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치료를 받는 대상도, 치료를 하는 사람도 어쭙잖은 마음으로 박혀있는 것을 뽑았다가는 과다출혈이 일어난다. 깊은 상처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외과의 집도 하에 큰 수술이 필요하지만 '엄살이다', '정신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수술대에 들어서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시선들 때문에 쉽사리 수술동의서에 사인하지 못하고 치료시기를 놓친다. '큰 상처는 섣불리 만지면 안 된다는 것'이 화두조차 꺼내면 안 되는 것처럼 금기시되고 상처는 점점 심각해진다. 작은 외부 자극에도 큰 고통이 찾아오는 탓에 갈수록 예민하고 날카로워진다.

 모든 상처가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저히 제 손이 닿지 않는, 관절을 부러뜨려야만 간신히 건드릴 수만 있는 부분의 상처도 있다. 이런 상처는 타인에 의해 쉽게 치료되는 경우가 많지만 드러내기 쉽지 않다. 상처를 마주했을 때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어설픈 치료법으로 섣불리 상처를 건드리지 않고, 온몸에 피가 묻어나도 묵묵히 상처를 살피며 지속적으로 거즈를 갈아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운 탓에 '그럴 거면 그냥 그대로 놔두자'라며 상처를 무시하거나 상처가 났다는 사실마저 부정하기도 한다. 잊었다, 이제는 아프지 않다고 말하며 별 일 아닌 듯 바쁘게 지내다가도 잠시라도 고통을 인지할 수 있는 틈이 생기면 쓰러져버린다. 한 차례 지나가면 이내 나아지지만 아픔이 다시 찾아오는 주기가 짧아지는 사실을 모른 채로.

 아물지 않은 상처는 완치되지 않고 후유증을 남긴다.

 환부를 섣불리 만지거나 방치해서, 감당할 수 없는 큰 상해를 입었거나 혹은 잘못 치료받아서 골든타임을 놓친 상처는 어떤 식으로든 후유증이 남는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고통에 괴로워하며 상처를 입힌 특정 상대의 성질을 분류하고 일반화하기도 한다. 여자라서, 남자라서, 고졸이라서, 대졸이라서, 연봉이 낮아서, 나이가 어려서, 사치스러워서, 몸이 불편해서, 몸이 멀쩡해서 등등 도식화된 편견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한다. 인간 분석표에 따라 타인의 괴로움에 대한 크기를 가늠하고 자신의 것과 비교하고 평가한 뒤 위로를 한다. '내가 아는데 그거 별 거 아니야'라고. 그렇게 피해자는 또 다른 이의 가해자가 된다.

 그러나 상처는 언젠가 아물고 딱지가 진다.

 세포가 쉴 새 없이 움직이면 노쇄한 세포의 빈자리는 새롭게 만들어진 세포에 의해 채워진다. 찢긴 부분에 살갗이 붙고 새로운 새포들이 끊임없이 죽은 세포들을 밀어내면서 딱지가 생긴다. 자연스럽게 딱지가 떨어지면서 접합부에 연분홍빛 살갗이 도드라지게 된다. 그제야 나았다고 말할 수 있다. 나았다는 것은 흉터가 남지 않았다거나 흉터가 작다는 뜻이 아니다. 다친 것을 알고 적절히 치료해서 살이 덮였다는 것이다. 흉터의 유무나 크기는 상관없다. 아무리 큰 상처라도 적은 흉터로 끝날 수 있고,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큰 흉터가 남을 수 있다. 흉터는 흉터일 뿐이며, 흉터가 크다고 해서 상처 또한 컸을 거라는 반증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며 딱지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잊지 않아야 한다.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된다.

 삶은 믿음과 불신 사이의 애석한 확률 장난이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상처를 입고, 다음에 만난 사람에게도 상처를 입고, 그다음에 만난 사람도 상처를 입었을 수 있다. 원래의 상처가 계속 벌어지고, 아물기도 전에 새로운 상처들이 생겨나면 당연히 모든 사람이 부정적으로 느껴지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 상황을 선택의 실수와 잘못된 대처의 결과물로 치부하겠지만, 사회학적으로 봤을 때 한 사람이 평생 만나는 사람의 수는 평균 17,500명으로 모수의 0.0003%가 채 안 되는 표본집단도 만나지 못하고 끝나는 짧은 삶인데 개인의 경험을 표준 정규분포표로 설명할 수가 있을까.

 누군가는 호구라고 말하며 바보 같은 믿음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애석한 확률 장난으로 죽을 때까지 상처를 주는 사람만 만나다가 세상을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나의 상처와 흉터를 마주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내가 누군가의 상처와 흉터를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상처와 흉터를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세상의 모든 상처들이 흉터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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