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고 당연하며 쉽기만 한 글자들이 즐비하여 채 껍질을 까지도 않은 과일바구니는 물론이요
고풍스런 플레이팅에 윤기가 흐르는 소스를 곁들인 모형돈가스를 요리랍시고 내놓고 있으니 팔리지 않아야 함이 당연한 이치겠지만
혀가 퇴행하여 씹는 맛을 배우지 못한 자들의 주머니가 먹여 살리고 있으니 지금의 이치가 그러한데 내가 너무 옛날의 사람인 것을
사람도 사랑도 내겐 세상 모든 것들이 요즘 시 같아서
내 머릿살의 주름이 더 깊게 느껴진다
- 삼류작가지망생
최근에 들어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내가 쓰는 글은 과연 팔릴 수 있는 글일까. 그동안 써왔던 모든 글들을 지금에 와 다시 읽어보면서 결론을 내렸다. 팔리기 힘든 글이라고. 뒤이어 이런 생각이 따라왔다. 능력과 노력은 둘째 치고, 팔리는 글에 대한 편협한 시선과 쓸데없는 아집 때문에 애초에 쓰고 싶지가 않은 것은 아닐까 하고.
과거부터 순문학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대체 순문학이 뭔데? 하고 누군가 꼬투리를 잡으면 마치 종교적 절대자에 대한 모욕이라도 들은 독실한 신자처럼 순문학의 아름다움, 순결함과 숭고함을 예찬했다. 서점에 가도 다른 사람들이 취미 서적이나 그저 그런 짜집기식의 자전적 책들을 읽는 것에 탄식을 하며 근현대 문학코너 한 귀퉁이에서 혀를 차곤 했다.
글을 써 내려가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나는 내가 느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과하게 빨라졌다며 한탄했다. 요즘 너무 쉽게 글이 써지고 가볍게 소비된다는 생각에, 문장과 단어 하나하나마다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길어짐에 따라 글이 늘어나는 속도는 점점 더 늦어졌다. 깊은 고민이 결여된 겉핥기식 위로와 유머에 쉽게 눈물을 떨구고 웃음을 흘리는 세상과의 거리도 점점 더 멀어졌다.
편의점 인스턴트식품 같은 글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또 이제는 인스턴트 제품들도 싸구려의 이미지에서 대세를 이루는 주류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구시대적인 마인드에 사로잡혀 현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글이 그렇게 느껴지니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현시대에서 나누는 사랑들도, 현시대의 세상 모든 것들이 그렇게 느껴졌다. 세상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저 잘못된 것은 시대에 뒤쳐진 내 생각밖에 없는데.
글 쓰는 것이 너무 어렵다. 사람과 사랑이 어렵고 함께 웃고 지내는 무리들 속에서 이런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끝없이 치미는 고독을 수면 아래로 밀어 내린다. 모두가 잠든 새벽, 오롯이 내 숨소리만이 가득한 방 안에서 빽빽하게 늘어난 짙은 덩어리들을 수면 위로 꺼내 낡은 표현과 생각으로 다듬어 자기위로적인 글의 형태로 만든다. 그러면 다시 머리는 굳어지고 세상과 멀어지고 덩어리는 비대해지고 또다시 녹슨 문장이 되어 스스로를 위로하고 일련의 과정은 계속 반복된다.
반복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다부져진 근육질 몸매의 수영복들이 가득한 곳에서 앙상한 갈비뼈에 툭 튀어나온 날갯죽지 가운데로 흉측하게 굽어진 척추뼈를 따라 내려오면 육안으로 느껴지는 두툼한 내장지방과 대비되는 볼품없는 사지의 나체를 누가 기꺼이 돈을 내고 보겠냐마는 글이란 모름지기 그런 것이어야 한다는 내 의견은 바뀌지 않는다. 추악한 아름다움과 불편한 진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별을 보면서 하늘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깨닫고 땅을 딛고 발을 내밀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쉽게 써진 글에는 나체가 없다. 나체가 있는 글에는 어려움이 있고 애틋함과 망설임, 서투름과 두려움이 있다. 사람도, 사랑도, 세상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