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도 좋은데 혼자가 편해서

by 김민


동호회에 가입한 적 없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은 몇 번 했었고 주변 사람들도 강력하게 추천했었다. 유일한 취미라고는 읽기, 그러면 독서 모임에라도 들어가 보면 어떻겠냐고 했지만 애초에 ‘같이 읽기’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독서는 오롯이 이야기라는 세계를 여행하는 휴식 시간이다. 그러면 운동을 좋아하니 라이딩 모임이나 러닝 크루에 가입해 보면 어떻겠냐. 자전거 동호회에 대한 사회적 인식 따위는 상관없지만 조금 알아보니 동호회는 ‘취미’보다 ‘경쟁’(자전거 가격, 실력, 외모 등등) 혹은 이성을 만나기 위한 모임의 성격이 강했다. (물론 편견이다. 건전하고 멋진 동호회도 얼마든지 있을 거다.) 하지만 애초에 왜? 같이 달려야 한단 말인가? 자전거란 본디 자신의 두 발을 놀려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고 달리기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사람들을 모아 해야 한단 말인가? 물론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사교 활동도 하면 좋을 것이다. ‘함께’ 라야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도 분명 있을 거다.

하지만 그 즐거움이 과연 ‘혼자’서 누리는 기쁨보다 클까? 적어도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내키는 대로 나가 달리면 그만이지. 왜 시간을 정하고, 회비를 걷고, 겉치레 인사를 건네고, 돈 자랑에 자식 자랑을 듣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이렇게 말하고 보니 무지막지하게 삐뚤어진 인간 같지만, 사람 대하는 일을 오래 해서 그렇다. 질릴 정도로 많은 사람을 대했다. 직원을 관리하고 고객을 대하는 일을 너무나 오래 했다. 세넓똘만,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았다. 나 역시 누군가에겐 진상이고 악당이었겠지만 사람에 지쳐 있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너무 오래 살았다. 리더십 따위 갖고 싶은 적 없었다. 멘토 따위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 대하는 것이 능수능란하단 소리를 들었지만 속으로는 숨 막혀 죽을 것 같았다. 후천적으로 필요에 의해 키운 능력치일 뿐 잘한다고 해서 그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를 위해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썼다. 운동하는 순간만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이길 바랐다. 땀을 흘린다는 것, 오롯이 나를 위해 에너지를 쓰는 쓸모없는 시간이 좋았다. 그 순간만은 제대로 숨을 쉬는 것 같았다.

타고난 성향이 그러했다. 어렸을 때부터 책만 쥐어주면 질리지도 않고 보고 있던 아이였다. 온 동네 아이들이 친구가 되던 시절이었다. 그때도 나는 친구를 사귀면 새로 읽을 책이 생긴다는 사실이 훨씬 기뻤다. 고등학교 때 이리저리 어울려 다니며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사고 치던 친구들은 많았지만 친구라 여긴 이는 하나뿐이었다. 혈기왕성한 이십 대에도 나이트클럽보다 찌개 하나 놓고 술이나 마시는 편이 좋았다. 직장을 그만두며 관계를 정리했다.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던 천 개가 넘는 전화번호를 모조리 지웠다. 카카오톡 친구들도 모두 숨기거나 차단했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고 아침은 평화로웠다. 오롯이 글을 쓰기 위해 먹고 잠을 잤다. 길을 걸으면서도 문장을 다듬었고 꿈속에서도 쓰는 꿈을 꾸었다. 나에게로 들어가, 나를 속삭이는 밤들이 있었다. 사람들 속에 있었지만 산속에 들어가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던 날들이었다. 보름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아무 불편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즐겁다고 느꼈다. 어색한 침묵 대신 평화로운 고요 속을 거니는 기쁨이란.

책을 일곱 권쯤 출간하고 나서야, 다시 세상 속으로 나갈 필요를 느꼈다. 혼자 문장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그것을 읽어줄 사람이 있어야 했다.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렸고 출판사 대표님이 ‘작가의 밤’ 행사를 열어주셨다. 같은 출판사에서 책을 낸 이들과 와인을 마시고 음식을 먹었다. 큰 용기가 필요한 외출이었지만 생각보다 즐거웠다.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듣는 기쁨이 있었다. 그러나 숙소에 들어가서 나를 위해 술을 따르는 순간 비로소 평온함을 느꼈다. 사람을 만나야 충전이 되는 이가 있다면 혼자 있어야 에너지가 차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나는 명백히 후자다. 좁고 깊은 관계가 내게는 맞다. 일주일에 한 번 엄마와 함께 밥을 먹고 한 달에 한두 번 친구를 만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오히려 차고 넘친 달까. 함께도 좋지만 혼자가 편하다. 가까운 이들을 정답게 대하기에도 에너지가 부족하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내어주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앞으로도 나는 콘서트 무료 티켓이 생겨도 가지 않을 것이다. 축제가 열리는 지역을 피해 여행할 것이며 카페를 가는 대신에 공원을 걸을 것이다.

다만 소명이라 믿는 일을 위해서는 기꺼이 달려갈 것이다. 그래서 하동까지 달려가 어르신들과 시 쓰기 수업을 했다. 경기도 고양까지 올라가 북토크를 했다. 강연이든 뭐든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얼마든지 응할 것이다. 다정한 말을 건넬 수 있다면, 도움이 될 지식을 전할 수 있다면, 그들의 하루를 온기로 채울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기쁨이고 보람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인 시간이 필요하다. 오롯이 나를 채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내어줄 수 있을 테니까. 오늘도 홀로 창문 너머 밤을 바라보며 글을 쓴다. 이 글에 마침표를 찍고 나면 전자레인지에 냉동 피자를 돌려놓고 책을 펼칠 것이다. 내가 해야 할 말은 이곳에 다했다. 나를 위해 필요한 말은 책 속에 모두 있다. 아,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오로지 나를 위한 축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이 밤의 향연을 즐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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