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긍지는 손바닥에 새긴 굳은살이다. 나의 보물 2호는 다목적 철봉이다. 나를 지탱하는 것은 운동하는 습관이다. 어느덧 턱걸이 십 년 차에 접어든다. 하루 최대 531회, 1회 최대 37개의 기록은 메달보다 값지다. 내 인생 최대 업적은 조카들을 업고 철봉을 당긴 일이다. 내게 턱걸이는 삶을 끌어당기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은 이가 자신이 쓴 문장이나 이야기를 자랑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니까. 간호사가 힘든 환자를 돌봤다고 자랑하던가. 농부가 뙤약볕에 나가 일했다고 공치사를 하던가. 글쓰기는 나의 직업일 뿐이고 책은 독자의 것이다. 오직 운동만이 오롯이 나를 위한 일이다.
시작은 줄넘기였다. 방구석에서 카운터 줄넘기를 발견하고는 이거라도 해볼까 싶어 뒷마당으로 들고나갔다. 절망에 뒹굴던 시절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우울해졌고 자괴감만 깊어질 뿐이었다. 하지만 90킬로그램이 넘는 몸무게, 틈만 나면 피워대는 담배, 매일 마셔대는 술, 불면증에 과로까지. 운동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데 잘 될 리가 있을까. 몇 개 넘다 발에 걸리고, 몇 개 넘다 얼굴에 맞고, 몇 개 넘다 엉키고. 그래도 성질머리 하나는 끝내 주는 편이라 꾸역꾸역 1000개를 채웠다. 1000개가 익숙해지자 2000개, 2000개가 익숙해지자 3000개, 개수를 새는 게 어려워지자 시간으로. 20분에서 30분. 30분에서 1시간, 1시간에서 2시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그때의 내겐 구원이었다. 제자리에서 뛰며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만은 평화로웠다. 땀과 함께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온갖 부정적 감정과 함께 체중도 쭉쭉 빠지기 시작했다. 몸무게 앞자리가 7이 되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건 좋은 신호였다.
식단에 과일과 채소를 추가했다. 자주 거울에 몸을 비춰 보았다. 캐주얼한 옷들을 사기 시작했다. 운동 루틴에 팔 굽혀 펴기를 추가했다. 근육이 붙기 시작하자 신이 났다. 몸이 가벼워지는 만큼 마음도 가벼워졌다. 주말마다 산을 뛰어올랐다.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가 턱걸이를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스물넷에 잠깐 타본 게 전부였지만 그래서 더 즐거웠다. 출퇴근도 자전거로, 장 보러 갈 때도 자전거로, 쉬는 날이면 동네 이곳저곳을 누볐다. 일을 그만두고는 전국 곳곳을 달렸다. 턱걸이 개수를 하나씩 늘려가는 기쁨이 있었다. 자전거 최고 속도를 높이는 즐거움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턴가 체중은 줄지 않았다. 서른 후반이 되자 이곳저곳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발목이 자주 아팠다. 걷지 못할 정도로 아픈 날도 많았다.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으면서도 줄넘기를 놓지 못했다.
허리가 작살나 응급실에 실려 가고서야 놓을 수 있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내 몸을 움직일 수 없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줄넘기는 조카들에게 주었고 자전거는 매제에게 주었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지금까지의 운동이 내 몸을 가꾸기 위함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삶을 지키기 위한 운동이어야 했다. 스쿼트를 시작했다. 브릿지 운동을 매일 했다. 자전거 대신 스텝퍼를 했다. 날이 좋으면 냉큼 달려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점핑 잭을 하지 않기로 했다. AB슬라이드도 버렸다. 영양제를 챙겨 먹고 식단을 바꿨지만 그래도 몸은 예전보다 자주 비명을 지른다. ‘예전처럼’은 불가능하다. 다시는 가파른 산을 뛰어오를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턱걸이 개수를 늘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십 대엔 밤을 새도 버틸 수 있었는데 이젠 한두 시간만 덜 자도 견디기 힘들다. 그땐 죽고 나면 영원히 잘 수 있다고 여겼지만 이젠 당장 죽을 것 같다. 몇 주 전에는 복숭아 뼈에 물이 차 주사로 빼내야 했다. 며칠 전에는 재치기를 했을 뿐인데 허리에 담이 왔다. 어처구니없지만 어쩌겠는가. 몸은 하나뿐이고 이것이 내가 살아갈 세상인데.
하루 루틴에 계단 오르기를 추가했다. 공원을 한 바퀴 걷고 온 다음 아파트 계단을 오른다. 한 계단씩 밟으며 앞으로 내가 올라야 할 길을 생각한다. 나이 드는 것에 비하면 계단 오르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않을까. 독신 남자의 삶이란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가. 물론 그렇지 않은 이도 있겠지만 내가 아는 이들은 그랬다. 일단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다. 자극적인 음식을 찾고 술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고 마는 거다. 이미 겪어본 일이기에 더욱 두렵다. 서른 남짓일 때야 젊어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 집에서 일을 하기에 더욱 위험하다. 매일 아침 출근을 한다면 그것을 위해서라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겠지만 프리랜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더욱 일상의 루틴을 지키도록 애써야 한다. 주 5회는 운동을 한다. 어지간하면 매일 나가서 걷는다. 술은 일주일에 딱 2번, 취하지 않을 만큼만 마신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너지고 말 것이다.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을 유지하기 위해 그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다들 겪는 일인걸. 나이 듦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시간에 밀려나지 않기 위해 철봉을 당기는 수밖에. 지금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끊임없이 찾아내는 수밖에. 하지 못하게 된 것들을 슬퍼하느니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며 그곳에서 기쁨을 찾아야 한다. 며칠간 내린 비에 나뭇가지에 물이 올라 통통해졌다. 조만간 벚꽃이 피겠구나. 날이 따뜻해지면 다시 뛰어야겠다. 조금 느릴지라도 조급해하지 않으며, 멀리 가지 못할지라도 서글퍼하지 않으며. 나만의 달리기를 계속해야지.